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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기 Oct 08. 2021

마의산, 그산에 가고 싶다

마의산, 그 산에 가고 싶다


  이 글은 최근에 읽은 토마스 만의 소설 “마의산”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과 감상을 두서없이 써 본 글이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의견은 개인적인 견해이므로 생각이 다르더라도 오해 없으시길...


  한스 카스토르프는 소설의 주인공으로서 선박 제조회사 입사를 앞두고  다보스 요양원에 폐결핵으로 요양 중인 사촌 요아힘 찜센을 문병하는 3주간의 여행을 떠난다. 독일의 저명한 집안의 자손인 한스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죽은 아버지로부터 재산을 상속받지만 사회적 지위와 풍족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선박 엔지니어가 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폐결핵 요양원인 베르크호프에서 한스의 운명은 180도 바뀌게 되는 데... 스위스 다보스에 위치한 이 요양원은 악마적 매력으로 젊은 엔지니어의 삶을 일상으로부터 괴리시켜버린다. 아내를 잃고 방황하던 중 폐결핵 초기 증상으로 다보스에 온 것을 계기로 폐병 전문의가 된 베렌스 원장과 그의 조수 크로코브스키는 한스를 처음 본 순간 병문안 온 사람이 아닌 병원의 환자로 대하고 요양원이 위치한 도르프 역에 도착한 첫날부터 오르기 시작한 한스의 체온은 의사들의 진단을 사실로 드러나게 만든다.


  한스를 사로잡은 건 요양원의 분위기만은 아니었다. 하루 다섯 번 푸짐하게 차려지는 식사시간마다 출입문을 소리 내어 쾅 닫고 들어오는 제멋대로의 클라브디아 쇼샤 부인은 사춘기 시절 은밀한 짝사랑이었던 프리브슬라브 히페를 연상시키며 그를 매혹시킨다. 또한 자유주의적 계몽주의자 세템브리니는 자기의 교육자적 자질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백지상태의 한스에게 인문적 교양을 과시하여 우리의 주인공을 학문적 매력에 빠지게 한다.


  감기 증상으로 몸의 상태를 오해한 한스는 수간호사 밀렌동크로부터 체온계를 구입하는 의식을 통하여 베르크호프의 일원이 되고 산 밑의 일상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간다. 이런 한스를 걱정하는 사촌 찜센은 군인이 되고자 하는 열망으로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하여 군대에 복귀하고자 요양생활에 성실히 임한다. 풍만한 가슴을 가진 마루샤에 대한 연정도 억누르고 성실히 투병생활을 하지만 한스는 오히려 요양생활보다는 쇼샤 부인의 아름다움과 크로코브스키의 정신분석의 매력에 마음껏 빠져든다.


  발푸르기스의 밤이라는 제목으로 묘사된 사육제 축제일의 밤에 한스는 학창 시절 히페에게 했듯이 쇼샤 부인에게 돼지 그림을 빨리 그리는 게임을 위하여 연필을 빌리며 “너”라고 호칭하며 특별한 감정을 드러낸다. 이런 한스를 파우스트를 말리는 메피스토펠레스처럼 세템브리니는 만류하지만 스승의 이런 태도를 한스는 취기를 빌려 손풍금장이라고 비아냥거리며 쇼샤 부인에게 계속 구애를 한다. 세템브리니도 “인생의 걱정거리 자식”이라며 더 이상 한스를 말리지 못하고 방으로 돌아가자 쇼샤 부인은 한스에게 연필을 돌려주기 위하여 방으로 오라며 유혹한다.


  그 이후 자세한 묘사는 없지만 한스와 쇼샤 부인은 특별한 관계를 맺은 것으로 암시된다. 쇼샤 부인은 다음날 여행을 떠나며 한스와의 특별한 하룻밤은 꿈처럼 지나간다. 쇼사 부인이 떠난 후 요아힘도 베렌스의 만류를 뿌리치고 군대를 가기 위하여 베르크호프 요양원을 떠난다. 한스는 쇼샤 부인을 통하여 요아힘의 병세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꿈을 위하여 마지막 도전을 하는 사촌을 적극적으로 막지는 못한다.


  쇼사와 요아힘이 떠난 베르크호프에 레오 나프타라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여 한스는 세템브리니와 나프타와 함께 하는 산책을 통하여 새로운 인문적 교양을 흡수한다. 세템브리니가 베렌스로부터 다보스에서의 종신형을 선고받고 체제비 부담을 덜기 위하여 얻은 하숙집에서 만난 나프타는 예수회에 소속된 선교사로 금욕주의적 허무주의를 주변에 퍼뜨리며 세템브리니의 논객으로 묘사된다. 이런 논쟁을 통하여 작가는 앞으로 유럽을 관통하며 다가올 나치즘과 파시즘 등의 음울한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


  삶의 의미를 생활의 직접적 경험을 통하여 얻으려는 주인공의 학습자적 경향은 눈 속에서 스키를 타다가 죽음을 경험하게 되는 이야기에서 절정에 이른다. 혼자 스키를 타다가 모험적인 스릴을 즐기려는 욕심에 무리한 코스로 이동을 하다 길을 잃고 만다. 같은 코스를 계속 반복하여 도는 길 잃은 사람의 전형적인 행태를 보이며 눈보라 속에서 죽음을 예감하게 되지만 다행히 조그만 오두막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눈보라를 피할 시간을 갖게 되어 구사일생으로 생명을 구하게 된 한스는 세템브리니의 하숙집에서 차를 마시며 모험담을 이야기하지만 스승은 그의 무모함을 꾸짖고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결말 부분에서 다시 무모한 도전을 함으로써 스승의 기우가 현실이 되게 한다.


  군인생활을 재개한 요아힘은 초반에는 그럭저럭 지내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폐병이 악화되어 다보스로 돌아온다. 다보스로 돌아와서도 회복하여 군대로 돌아가기를 희망하지만 그 희망은 끝내 물거품이 되고 만다. 전에 한스와 함께 문병을 했던 수평 생활자, 즉 중환자들의 생활로 본인이 들어가고 만 것이다. 한스는 이모에게 전보를 치고 다보스로 온 요아힘의 어머니, 루이제 찜센은 한눈에 자식의 병세를 파악한다.


  어머니의 극진한 간병에도 불구하고 요아힘은 눈을 감는다. 그를 아는 모든 이들은 안타까워 하지만 시체가 되어 썰매에 묶이어 베르크호프를 떠나는 요아힘. 그렇게 질병과 죽음은 청춘의 꿈을 앗아갔지만 남은 자들은 계속 요양원에 남아 요양생활을 이어나간다. 요아힘이 평지에 있을 때 기차에서 쇼샤 부인을 만났고 조만간 다보스로 돌아올 예정이라는 소식을 한스는 죽기 전 요아힘으로부터 듣게 된다. 요아힘은 수평 생활에 돌입하기 전에 연정을 품고 있던 마루샤에게 마지막 고백을 한다. 좀 더 빨리 건강할 때 고백하지 못한 요아힘의 우유부단함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도 건강을 회복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한 그의 군인적 태도에 경외감이 들기도 한다.


  쇼샤 부인은 돌아오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은퇴한 커피왕 피터 민헤서 페퍼코른과 함께였다. 물론 새로운 연인으로서... 한스는 실망하지만 동행자 페퍼코른의 남성미와 카리스마는 논객 세템브리니와 나프타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한스를 사로잡는다. 산책 멤버에 동참하게 된 페퍼코른과 쇼샤 부인은 기존 멤버들에게 갈등과 긴장을 유발하지만 페퍼코른은 독특한 매력으로 자연스럽게 동료들과 동화되어 간다. 페퍼코른은 쇼샤 부인과 한스가 한때 연인 사이임을 눈치채지만 쿨하게 과거를 잊고 현재의 우정을 유지하는 쪽을 선택한다. 하지만 점점 노화되어가는 육체와 정신의 쇠락을 이겨내지 못하고 독극물을 자기 몸에 주입하여 자살하고 만다. 이 충격으로 쇼샤 부인은 베르크호프를 떠나고 요아힘과 쇼샤 부인이 떠난 마의산에 한스는 더 이상 호기심을 갖지 못하지만 떠날 용기도 내지 못하는 애매한 상태가 된다.


  병원 측은 한스의 이런 심리 변화를 눈치채고 그가 지루해하지 않을 새로운 취미생활을 제공한다. 고급 전축을 사교모임 장소에 설치하여 준다. 음악을 좋아하는 한스가 자연스럽게 레코드판과 전축 관리를 담당한다. 한동안 음악에 심취한 한스는 일상의 무료함을 잊는다. 또 크로코브스키 교수의 정신 분석실에서는 최면요법을 이용한 영혼 불러내기 열풍이 분다. 영매를 통해 환자들이 보고 싶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내는 의식이었다. 이에 참여한 한스는 자기 차례가 되자 요아힘을 불러달라고 영매에게 요청한다. 군복을 입고 흐릿한 영상으로 등장한 요아힘은 원망하는 듯한 눈으로 한스를 쳐다본다. 한스는 죄책감에 “그만!”하고 소리치며 자리를 뛰쳐나온다.


  전쟁의 유령이 유럽의 전역을 돌아다니던 시절, 베르크호프에서도 사람들 사이에 긴장과 갈등이 자주 발생하게 된다. 페퍼코른이 죽고 쇼샤 부인이 떠난 후 산책 모임은 잠시 중단됐지만 시간이 지나자 다시 일상처럼 시작된다. 세템브리니와 나프타의 논쟁은 점점 과격해지더니 서로의 인격과 조국을 멸시하는 발언까지 나오게 된다. 모욕을 받은 나프타는 세템브리니에게 권총 결투를 신청하고 이를 세템브리니가 받아들임으로써 산책 모임은 결정적인 파탄의 순간으로 치닫게 된다. 결투 당일 세템브리니는 권총을 하늘로 발사함으로써 마지막 화해를 시도하지만 나프타는 “비겁자!”라고 소리치며 권총을 자기 머리에 겨누고 발사를 하여 자살을 하고 만다. 죽은 나프타를 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세템브리니는 “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이런 행동을 한단 말인가.”하고 오열하지만 그의 죽음을 되돌릴 수 없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한스는 더 이상 현실을 외면하지 못하고 군인이 되어 전쟁에 참가한다. 이런 한스를 배웅하며 세템브리니는 “요아힘이 아닌 당신이 군인이 되어 전쟁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게 되다니... 내가 원한 이별의 모습은 아니지만 마의산을 내려가는 당신의 모습을 보게 되어 다행이야.”하며 그를 도르프 역에서 배웅한다. 가곡 보리수를 부르며 전쟁에 참가하는 한스. 그 앞의 전우들이 하나하나 포탄에 죽어 가고 이윽고 그도 죽음의 그림자를 옆에 두게 되면서 소설은 끝을 맺는다.


  7년간의 이야기를 12년에 걸쳐 쓴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은 이렇게 막을 내린다. “마의산”이 아닌 “부란덴부르크가족들”로 노벨상을 받았다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로 모든 사람들이 토마스 만의 대표작으로 알고 있는 마의 산은 사실 아내를 문병하기 위하여 삼 주간 다보스 요양원에 들어간 작가의 경험이 밑바탕이 된 소설이다. 심장수술을 위하여 2달간 병원생활을 했던 나로서는 폐쇄된 요양원에서의 인간군상의 모습에 동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랑, 우정, 반목, 질시 등의 사건이 나의 경험과 대비되어 흥미가 배가되는 작품이었다.


  삶의 비탈에서 육체의 질병을 안고 요양원 생활을 전전하는 환자들의 모습은 내가 병원에서 보았던 그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병이 완쾌되어 퇴원하는 환자들의 기쁨보다는 악화되어 중환자실로 옮겨지는 모습을 더 많이 보았던 경험이 베르크호프에서도 반복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사랑과 예술에 대한 열정과 관심을 잃지 않았던 그들의 모습에 경외를 느끼며 그들이 있는 그 산에 가고 싶은 열정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마의 산, 그 산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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