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승달은 지구의 공전이 깎아 놓은 손톱
할아버지는 매해 굴속에서 자식들을 낳았다
그의 핏줄을 따라 가계의 불행은 대물림되었다
갑상선암이나 탈모 같은 불안한 의혹들이
쑥쑥, 나의 안쪽에서 자란다
볼록한 허물은 누군가 잠시 머물다간 집
나는 긴 장화 속에 새알을 숨기고 입구를 나뭇가지로 덮어 놓는다
알 속에 구겨진 부리는 바깥을 여는 열쇠
아비의 출신은 자식에겐 신분증이었다
지구에도 이상한 상속이 있다
붉은 사막에 내리는 하얀 폭설
代가 끊기지 않는 지진, 전쟁
떠도는 계절의 종자들은 어느 기후의 혈통을 잇고 있다
아프리카의 겨울이 추울까, 시베리아의 여름이 더울까
나는 지구의 공전 방향과 반대로 도는 사람
죽은 할아버지는 내게 땅꾼인 아버지를 물려주었다
부어오른 목에서 부화한 새의 울음
1월에 낙엽이 지는 적도의 나무들
깨진 유리창을 X자 청테이프가 붙들고 있는데,
알 껍질만 버려져 있는 불안한 그늘
삐-익, 나는 손가락 휘파람으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뱀들을 불러 모은다
조창규 시인 프로필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 박사
2015 동아일보 신춘문예 '쌈' 으로 시 당선
시논문집 '한국현대시의 공간연구 2' 공동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