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환(李正煥). 그는 평생을 걸어 단단한 부(富)의 성벽을 쌓아 올린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성벽의 마지막 관문은 언제나 국가, 즉 세금이었다. 특히, 피와 땀으로 일군 재산을 다음 세대로 넘길 때 발생하는 상속세는 그에게 단순한 의무가 아닌, 극복해야 할 지혜의 시험이었다.
여느 날처럼 서재에서 은은한 찻잎 향을 맡으며 재무제표가 아닌 《상속세 및 증여세법》 책자를 펼쳤다. 그의 시선이 꽂힌 곳은 단 두 조항이었다. ‘증여재산공제’와 ‘상속개시일 전 10년 이내 증여재산 합산 과세’.
"10년이라…."
정환은 60세였다. 건강했지만, 그는 시간을 흐름이 아닌 설계의 대상으로 보았다. 30년 가까이 사업을 해온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은퇴와 노후, 그리고 사망 시점까지의 장대한 금융 시간표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의 두 아들은 이미 성인으로, 각자의 삶을 살고 있었다. 정환은 자녀들에게 자산이 아닌 '시간'을 증여하기로 결심했다. 법이 허용하는 공제 한도 내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볼 수 있는 ‘시간의 지렛대’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정환의 나이 65세, 의사들이 정해준 기대 수명보다 20년 이상 앞선 시점이었다. 그는 두 아들에게 각각 5천만 원을 증여했다. 자녀당 5천만 원의 증여재산공제를 활용하면 증여세는 0원이었다. 금액 자체는 그의 전체 재산(약 30억 원)에 비하면 미미했지만, 중요한 것은 금액이 아니라 ‘시점’이었다.
이 증여재산들은 아들들의 이름으로 된 저수지에 담겨, 그 후 20년간 복리(複利)의 마법으로 불어났다. 만약 10년 이내에 사망했다면 이 재산은 다시 상속재산가액에 합산되어 큰 세금 폭탄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환은 시간을 견뎠다. 그는 이 재산을 10년의 ‘합산 배제 기간’ 밖으로 밀어내는 데 성공했다.
75세. 사업 일선에서 물러난 정환은 다시 법전을 펼쳤다. 첫 번째 증여가 있은 지 정확히 10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는 재차 두 아들에게 각각 5천만 원씩, 총 1억 원을 증여했다. 역시 증여재산공제 덕분에 증여세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로써 정환은 20년 동안 총 2억 원을 무세(無稅)로 자녀들에게 이전했으며, 첫 번째 증여 금액은 이제 상속세 합산 과세 대상에서 영구적으로 제외되었다. 만약 그가 지금부터 10년 이내에 사망하더라도, 두 번째 증여 재산 1억 원만 합산 대상이 될 뿐, 20년 전의 증여 재산은 오롯이 아들들의 몫으로 남게 된 것이다.
정환은 85세의 나이에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그의 남은 상속재산은 28억 원이었다.
장례를 치른 후, 아들들은 아버지의 마지막 재무 계획을 보았다. 만약 정환이 10년 전에 5억 원을 일시에 증여하고 사망했다면 (본문 자료의 예시처럼) 상속세 과세표준은 25억 원이 되어 약 8억 4천만 원의 상속세가 발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환은 20년에 걸쳐 공제 한도 내에서 체계적으로 증여를 진행했고, 그가 사망했을 때 최종 상속세 과세가액에 가산된 금액은 10년 이내 증여 재산인 1억 원뿐이었다.
아들들은 아버지의 치밀함에 감탄했다. 그는 단순히 돈을 절약한 것이 아니었다. 세법의 조항과 공제 기간, 그리고 복리의 시간을 모두 예측하고 설계하여, 최소한의 세금으로 최대한의 유산을 물려준 진정한 '시간의 설계자'였다. 그들이 상속세로 납부해야 할 금액은 아버지의 설계 덕분에 수억 원 이상 줄어들 수 있었다.
아버지의 유언장 대신 발견된 메모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세금은 법률과의 지혜 싸움이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미리 준비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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