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미래에서온엄마 김보배
Jan 08. 2020
10년 차 공공기관 연구원, 이것에 도전하다.
38살 10년 차 공공기관 연구원, 배우를 꿈꾸다.
나는 10년 차 공공기관 연구원이다.
그리고 최근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내가 연기를 배우기 시작한 계기는 간단하다.
유재석이 나오는 <유 퀴즈 온 더 블록>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다가 한 질문이 내 마음에 꽂혔다.
"다시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다면 무엇을 배우고 싶나요?"
라는 질문이었다. 이 질문이 나를 무척 설레게 했다. 나는 연기를 배우고 싶었다. 단순히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나의 감정과 삶을 표현하고 연기와 노래, 춤으로 이 모든 것을 표현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질문과 답은 계속해서 나의 가슴에 남았다.
이 질문과 답은 놀랍게도 내가 연기를 배울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면 무엇을 배우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이었지만, 지금 그 일을 시작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었다. 100세 시대, 38살이라는 나이는 무엇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딱 좋은 나이가 아닌가? 게다가 30대의 장점은 어느 정도 경제적인 발판을 구축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도전을 해 볼 수 있는 심리적 안정감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우연히 좋은 기회에 인연이 닿아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삶이 뭔가 내가 바라는 방향대로 이끌리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18살에 꿈꾸었던 나의 오랜 꿈이 20년이 지난 지금 빛을 발하게 되었다. 내가 배우가 된 것도 작품에 섭외가 된 것도 아니지만 그저 배움을 시작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기쁨이 몰려왔다.
두 달간 기초적인 연기의 이론을 익히고 첫 대본을 받아 들었다. <아버지>의 지원 역이었다. 매일 같이 술을 찾으며 자신의 인생을 좀먹고 있는 아빠에게 그동안 참아왔던 울분을 터뜨리는 장면이었다. 격앙된 이 장면을 표현하기 위해서 큰 호흡을 써야 했고, 나는 호흡이 부족해서 연습하는 동안 과호흡증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약 한 달간은 이 대본을 들고 그야말로 헤맸다.
나는 헤매고 또 헤맸지만 그렇다고 이 과정이 싫거나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연기를 배우는 것이 너무나 흥미롭고 재밌었다. 배우면 배울수록 더 배우고 싶다는 열의가 생겼다. 내가 하기 싫은 공부를 하는 것과 좋아하는 분야의 공부를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나는 몰입을 했고,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나의 연기 실력이 출중했다거나, 혹은 자질을 인정받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살면서 배운 두 가지를 기억하기 위해 노력했다.
첫째, 자신감이다.
초보이기 때문에 잘 못 할 거라는 생각을 버렸다.
초보라는 생각으로 연기를 대하니 딱 초보처럼 연기가 나왔다. 쭈뼛쭈뼛 뒤로 빼게 되고 동정을 구하는 듯한 눈빛이 나온다. 초보이기 때문에 못할 거라는 생각을 버리고 나 자신의 한계를 긋지 말자고 다짐했다. 나는 삶을 통해 이미 많은 경험을 축적했고 여러 관계를 맺으면서 연기에 대한 배경을 쌓았다. 38년이라는 삶을 그냥 흘려보낸 것이 아니라고 되뇌었다. 그 삶의 과정 자체가 연기의 일부이고 내가 배우고 가르쳐온 문학 자체가 다름 아닌 대본임을 상기했다. 나에게 다양한 경험과 지식이 있기에 이미 오래전부터 배우로서의 삶을 살아왔던 사람임을 잊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 자신감을 배경으로 연기에 임하자고 되뇌었다.
둘째, 그 상황에 대한 상상력이다.
연기를 하기 전에 대본에 주어진 상황을 눈으로 또렷하게 상상해 보았다. 아빠가 엄마를 막대하는 모습이었다. 그 상황을 생각하자 호흡이 가빠지고 화가 났다. 자연스럽게 호흡이 가빠지는 상태가 생겨났고, 그 상태에 따라 연기를 했다. 처음으로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다. 다음 시간에는 대본을 바꿀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머릿속으로 뚜렷하게 상황을 그리면서 연기를 하자 연기가 한결 수월했다. 상황에 대해 상상해 보는 것은 다른 이점도 있다. 내가 소리를 내어 연습을 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대본의 상황과 대사를 구체적으로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내가 연습을 하고 있는 구체적인 모습을 제삼자의 눈으로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연기를 배우기 전 주변의 내 지인들은 하나같이 나를 만류했다. 헛된 꿈이라고, 헛된 바람이라고 말했다. 연기를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이고 여러 모로 시간을 낭비하는 꼴이라고 말이다. 단단히 늦바람이 든 아줌마 취급을 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그 말이 맞다. 연기가 하루 아침에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그런 류의 배움이 아니고, 돈도 잃고 시간도 잃고 그리고 꿈도 잃는 결과를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해 보지 않고서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백 퍼센트 인정할 수는 없었다. 물론 이 배움의 끝에 어떤 결과치가 따라오지 않는다 할지라도, 나는 내 인생에 꼭 한 번은 도전해보고 싶었던 연기라는 꿈에 도전을 해 보고 싶고, 그 과정을 즐기고 싶다. 죽을 때 눈을 감으며, 만약 내가 무언가를 다시 배울 수 있다면 연기를 배우고 싶었다는 아쉬움을 갖지 않도록.
배움에는 때가 없다. 그리고 요즘은 유튜브 등에서 양질의 강의가 많이 오픈되어 있어서 웬만한 것은 모두 다 유튜브를 통해 배울 수 있다. 만약 무엇인가를 다시 배우고 싶다면, 내 인생의 쌓아온 경험과 지식을 발판으로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도전 정신. 그 도전 정신이 우리의 삶을 윤택하고 활력 있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꿈은 꿈을 꾸는 자들의 것이기에.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시작되지 않는다는 니체의 말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