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메르스 사태를 거치며 이런 의문이 들었다. 탄저균이 유출되었을 때의 매뉴얼은 있는지, 원자력 발전소 사고에 대한 매뉴얼을 있는지, 이런 매뉴얼이 존재한다고 해도 정말 제대로 된 것인지, 국가가 우리를 지켜주지 못한다면 우리가 직접 자신을 지키는 수밖에 없다. 안타까운 결론이다. 불행 속에는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면이 있다. 그러나 추상이 우리를 죽이기 시작할 때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 추상과 대결해야 한다.
-알베르 카뮈 '페스트'-
김상욱의 과학 공부 133P
김상욱의 과학 공부 책 내용 중에 '추상이 우리를 죽이기 시작할 때'고 챕터 내용이다.
세균은 세포의 형태를 갖는 작은 생물이지만, 바이러스는 DNA나 RNA로만 이루어진 번식 기계이다.(김상욱의 과학 공부 130P)
추상적인 바이러스가 우리를 죽이기 시작할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는 인간의 몫이다.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생사가 오가고 죽음의 숫자가 달라진다. 카뮈의 페스트에서처럼 페스트 지역을 도망가지 않고 지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도망가는 사람,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 등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국가도, 정부도, 지자체도, 가족도, 개인도 모두 발 벗고 나서서 돕지 않으면 그 추상적인 바이러스에 불행을 맡기게 된다. 보이지 않는 추상을, 구체적인 모습을 갖춘 인간이 대결해서 싸워야 하는 게 현실의 모습이다. 보이지 않는 추상을 이기는 방법은 구체적인 매뉴얼과 구체적인 행동으로 습관 해두는 방법이 최고일 것 같다.
김상욱 작가의 '떨림과 울림', 김상욱의 과학 공부'를 동시에 읽고 있다. 과학 책으로 북클럽으로 운영하려고 하니 두 권을 만나게 되었고 조금 더 쉽고 생활밀착형으로 고르다 보니 '김상욱의 과학 공부'가 더 현실적이고 쉽게 보여서 북클럽 도서로 선정했다.
하지만 같이 두 권을 읽으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중복되는 내용도 있을 것이고, 다른 시선으로 본 내용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죽음에 관한 챕터를 두 권에서 만나니 새롭다. 아래의 내용은 '떨림과 울림' 책에서 원자 챕터 부분에서 나온 죽음에 관한 내용이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죽으면 시체는 먼지가 되어 사라지나, 어린 시절 죽음이 가장 두려운 상상이었던 이유다. 하지만 원자론의 입장에서 죽음은 단지 원자들이 흩어지는 일이다. 원자는 불멸하니까 인간의 탄생과 죽음은 단지 원자들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 떨림과 울림 49P -
죽으면 우리는 어디로 갈까?
종교적으로 보면 천국, 지옥, 극락, 환생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죽음은 단지 원자가 흩어지는 일에 불과하다. 우리 인간은 결국 흙으로 돌아와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이치다. 원자도 불멸하니 우리 인간도 죽지만 원자 자체는 죽지 않으니 불멸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예전 루시 영화에서 마지막 대사가 'Everywhere'였다. 우리는 죽어서 모든 곳에 존재하지 않을까? 그러니 너무 두려워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과학 책을 읽으면 삶의 통찰을 얻게 된다. 죽지만 우리는 원자로 구성되어 있는 존재라서 죽어도 흩어질 뿐이라는 말은 얼마나 위안이 되는 말인가?
흔적 없이 가루가 되어 사라진다는 것은 너무 무의미한 삶 같지만 불멸한다는 삶, 원자가 흩어질 뿐 죽지 않는다는 과학적 사실은 사람을 또 다르게 성찰하게 만든다. 그래서 과학과 철학이 연결되어 있고, 철학을 하기 위해서 과학 공부를 하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음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