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3.9보다 3.11이 더 크다

수학) 수학과 대학원 일기

by 비자반

발단은 다음과 같다. 수학과 대학원 친구에게서 온 카톡 메세지이다.

'챗 gpt에 3.9랑 3.11 이랑 대소비교 하면 3.11이 더 크다고 말한대. 진짜일까? '

나는 친구와 함께 챗 gpt를 결제하여 사용하고 있기에, 정말로 물어봤다.

3.11.PNG


그리고 그간 나의 논문 자료 서치, 모르는 부분에 대한 질문과 대답, 막막하던 그래프 코딩을 책임지던 멋있는 해결사 챗 지피티는 그날부로 대소비교도 못하는 똥멍청이로 전락해버렸다.


이 사건을 접하고 나서 처음 든 감정은 당황스러움과 어이없음이었고, 그 다음은 다소 공포에 기반한 찌릿함이 느껴졌다.

이 감정이란 gpt의 코드를 받아 복사-붙여넣기 하고, 나오는 에러 코드를 다시 gpt에게 복사-붙여넣기 하고, 3초도 안 되는 찰나의 시간 안에 gpt가 새로 써준 코드를 다시 복사-붙여넣기 했을 때의 감정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원하는 그림이 나올 때까지 복사-붙여넣기를 반복하는 것은 마치 내가 gpt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이 사건은 gpt에 문제가 있다기보다, gpt를 이용하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런 이견 없이 gpt의 말을 받아 적는 나와, 그렇게 gpt를 이용하는 또 다른 사람들이 절대 다수가 되고

그 절대 다수가 "3.11이 3.9 보다 크다" 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그것은 과연 사실이 될 것인가.

누구나 명백히 "아는 사실"인 "3.9는 3.11보다 크다" 가 아니라 이것보다 다소 복잡하고, 또 모호한 질문을 던지고 chat gpt가 그것에 대해 대답했을 때, 생각보다 사람들은 그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고, 그러므로 그것이 사실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과 참은 과연 어디에 기반하는가?




세상에는 많은 비 상식적인 일들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어른이 된 아직도 무언가 "다수의 정서"를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즐겨보는 일부 tv프로그램들 중에 왜 이런것들을 방영하는 건지 잘 모르겠는 것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고민하는 것들이 사실 왜 고민인지 이해가 안될 때도 있다. (주로 인간관계에 대한 것들)

그 외에도 이해할 수 없고, 싫고,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지만

다수가 그것을 좋아하고 따르니 계속 이질감이 든 채로 살 뿐이다.

어쩌면 3.11과 3.9 의 대소비교 문제도 이렇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몇몇 수학과 학우들은 이 gpt 사건에 큰 분노를 드러냈지만, 사실 나는 이 일 자체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집중해야 하는 것은 절대 다수, 그리고 그 절대 다수가 불러올 반향이다.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그리고 통찰력을 갖춘 사람들이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사회는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일반적으로는 현실 문제는 수학과 달리 정답이 없고, 그래서 각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향해 목소리를 내기 때문에 그렇다고들 하지만

만약 거의 모든 사람들이 3.11이 3.9보다 크다고 말하면 수학적 진실 또한 무슨 소용인가 싶다.


중고등학교 시절 그러한 이질감을 참을 수 없어 '그래도 지구는 돈다' 라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인 적이 있었다.

그로부터 거진 10년이 지난 나는 회의감이 든다.

어른이 된 지금의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다수가 지구가 돌지 않는다 믿으면 지구는 돌지 않을 것이고,

지구가 돌던 돌지 않던 다수에게는 그 명제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랬다면 어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