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8일
7:40 A.M.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꽈배기의 맛> 북 트레일러 편집을 끝냈다. "이거 최민석 홍보 영상 맞아? 정성은 홍보 영상 아니야?" 연수의 피드백은 유의미했다. 1분 30초 정도의 분량을 추가했다. 이제 좀 최민석 작가 홍보영상 같다.
내가 영상 만드는 걸 좋아하는 이유는 8할이 편집인데, 편집을 하다 보면 사랑에 빠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미운 사람도 영상으로 찍어 놓고 그걸 자꾸 재생하다 보면 귀엽게 느껴지고 마음의 문이 열린다. 감독이 배우와 사랑에 빠지는 이유도 잘 알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엔 내가 나를 편집해야 했다. 늘 스노우로 미모 포텐 터지는 셀카에 익숙해 있다가 남이 찍어준 내 모습을 보니 못나 보여서 모니터 보기가 민망했다. 하지만 아무리 마음에 안 든다 해도, 편집의 제 1법칙 - '큐피트의 화살' 을 피해가진 못했다.
예쁜 나와 사랑에 빠지는 건 쉽다. 예쁜 나는 예쁘기 때문이다. 자꾸 눈길이 가고, 눈길이 가다 보면 마음도 간다. 하지만 못생긴 나를 좋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콩깍지가 씌이면 수월해! 하지만 이번엔 콩깍지가 씌이지 않았는데도, 못나 보이는데도 동시에 그런 내가 마음에 드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 아주 완벽히 한 것은 아닌데 약간 물꼬를 텃달까? 새롭다.
11:45 A.M.
미팅이란 것을 했다. 비디오편의점을 차리고 처음으로 지인이 아닌 사람이 의뢰를 했다. 만나기 10분 전 프로듀스 101의 '픽미'와 '나야 나'를 번갈아 들으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밀크티가 맛있는 한남동의 한 카페였다. 멋있는 사람이 약속시간보다 일찍 와서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다.
"성은님 본다고 하니까 다들 한 마디씩 하더라고요"
"?"
"A는 이틀 전, 책바 들린 김에 보낸 카톡을 왜 씹었는지! B는 작년에 보내 준 추천곡 리스트에 왜 피드백이 없는지! C는 몇일 전 키라라 공연에 노쇼하고 잘 살아있는지 궁금하다고!"
아니... 내가 먼저 들이댔다(?) 까먹은(!) 존재들과 어떻게 이렇게 다 연락을 하고 있지 했더니 단톡방 멤버라고 했다. 공수표만 남발하는 인간임을 반성. 던진 것에 책임을 지거나, 던지지 않는 인간이 되거나. 노력하자
지금껏 내게 영상을 부탁한 사람들은 거의 모두 트레바리를 통해서였다. 오늘 만난 사람도 그랬다. 트레바리 성은이 망극해. 하지만 그 분이 내게 원한 영상은... 요즘 대세인... 짜치는 영상...
"저도 이런 깔로 하기 정말 싫었지만 시대가 원하니 어쩔 수 없죠... 정말 브랜드의 곤조가 무너지는 것 같지만... 그래도 잘 해 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소위 우리들이 멋있다고 느끼는 것과 실제 세상에서 먹히는 것의 괴리는 때때로 아주 크다. 공포지만 자꾸 보게 되는 '피지 짜는 영상' 같은 것도 만드는 비디오편의점의... 윽... 앙대... 혐 자제 할래... 하지만 의뢰인의 회사에 돈을 벌어다 주는 것이 나의 임무인 것을 잊지 말자구!
4:30 P.M.
아하! (영화 패터슨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현재상영중. 하지만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였다.)
7:30 P.M.
랜선 친구가 새해를 맞아 만남을 제안했다. SNS 눈팅만 한 지 언 3년... 단 둘이 보기는 처음이었다! 나는 이 귀한 사람을 혼자 만나긴 아깝다 생각해 그녀와 어울릴만한 또 다른 비밀 친구를 데리고 갔다. 우리가 접선한 곳은 광화문의 한 죽집. 아니, 맛집이라고 보낸 링크가 죽집이라니... good... 그렇게 우리는 눈 오는 날 초원죽집에서 죽을 먹었다.
오늘 있었던 일 중에 가장 이상했던 순간은 기분이 up 되서 언제 나를 집에 초대해달라고 랜선 친구에게 요청한 거다. 순간 정적... 10년 가까이 서울 살이 하면서 자신의 집에 온 사람은 몇 없다고... (자, 이제 프로그래밍 하자... '집은 개방된 공간이 아니다'...) 하지만 난 집에서 노는 게 좋다. 아마도 어릴 적 엄마가 친구 집에 못 가게 해서 그런 것 같다. 또래집단과 행복도모를 못했던 나의 유년기여... 하지만 2018년도에 그것들이 발현되다니... 인생은 알 수 없고 어른이 되어도 삶은 재밌다. 이 시점에 다시 들어보는 권나무의 '어릴 때'
이 때만 해도 권나무가 팬인 내게 서천 김도 보내주고 그랬는데!
권나무도 용호행님도 다들 잘 지내는지!
모두 다 꿈만 같던 어린 시절이다.
하지만 삶은 현재진행형.
모두의 안녕을 빌어요.
<그 외에 기록>
- 세희가 브런치 글을 열심히 쓰고 있다.
- 연수가 나 없는 우리집에 와서 우리 엄마를 도와줬다.
- 봉수가 영진위에 들어가기 위해 NCS 및 중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다.
- 사진을 잘 찍는 다은에게 너는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있다고 말하니 다은이
"언니랑 통화하면 기분이 좋아~ 언니는 인생을 좁밥취급하거든~" 이라고 했다.
지지난밤에는 사랑을 나눴고
지난밤에는 눈물을 흘렸던 것으로 볼 때
어제까지 나는 무서웠던 게 확실했으나
오늘은 좁밥이어따
내일도 좁밥이기를
심보선 <오늘은 모르겠어> 중 일부 각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