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를 읽고
마흔에 등단한 박완서 작가가 마흔한 살에 쓴 수필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만일 내가 인기 작가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면, 온 세상이 부끄러워 밖에도 못 나갈 테니 딱한 일이지만, 그렇게 될 리도 만무하니 또한 딱하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거장의 일기에 웃음이 나온다. 당시 작가보다 전업주부의 정체성이 컸던 그녀는 낮에 글을 쓰는 게 민망했다. 뜨개질이나 양말 깁기보다 실용성 없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아내의 마음도 모르고 남편은 혀를 찼다. 쓸 게 있으면 낮에 쓰라고, 여자는 잠을 푹 자야 살도 찌고 덜 늙는다고.
하지만 그녀의 소설이 당선되자 남편의 태도는 달라졌다. 여전히 밤중에 뭔가를 쓰는 아내를 타박하는 대신 서재를 하나 마련해줘야겠단다. 그 말에 박완서는 폭소를 터뜨리며 생각한다. 서재에서 당당히 글을 쓰는 자신은 정말 꼴불견일 것 같다고, 요 바닥에 엎드려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쓰는 게 분수에 맞는 옷처럼 편하다고. 그 대목을 읽는데 종이에 툭 눈물이 떨어졌다. 나와 내 친구들이 생각나서.
어제는 갓난 아이를 키우는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신이 쓴 수필을 샘터문학상 공모전에 내보려고 하는데 봐줄 수 있냐고 했다. 글쓰기 모임 동료로서 솔직한 평을 보냈다.
“제목이랑 부제가 조금 재미가 없는 것 같아요. 어떤 내용인지 예측이 되어서? 뒤로 갈수록 이야기가 많아지는데 그래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에요? 마지막에 ‘미안해’ 말고 다른 걸로 끝내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이것만 봐선 왜 미안한지 잘 모르겠어서... 근데 상대를 미워해서 미안한 거라면 그 사실을 좀 더 솔직히 드러내도 좋을 것 같아요. 그거 외에 이야기 자체론 너무나 훌륭해요. 쓰느라 고생했어 정말.”
친구가 글쓰기에 이렇게 진심인지는, 함께 글쓰기 모임을 하기 전까진 몰랐다. 아이를 키우며 남는 시간에 글을 썼던 그녀는 문창과 대학원에 가고 싶다고 했다. 등단을 해야 입학이 가능했다. 마음이 급한 그녀에게 말했다.
“일단 상 받는 거 너무 생각하지 말고, 이 이야기를 처음 들을 사람을 떠올려보자. 단 한 명의 모르는 독자를 앉혀 놓고 그 사람에게 너의 진심이 전달될 수 있게, 퇴고해 보는 거야.”
그 말을 하는데 문득 며칠 전, 내 책을 내 주기로 한 출판사 편집자님이 전화로 한 말이 떠올랐다.
“아니, 작가님. 이 책으로 너무 대단한 걸 하려고 하지 마세요.”
예전에 미팅했을 땐 해외에 번역되는 것도 가능성이 이겠다 하시더니 말이 바뀌어 살짝 서운했다. 이 책으로 드라마 판권도 내고, 시나리오 작가 데뷔도 하고, 스탠드업 코미디도 만들어야 하는데 욕심을 가지지 말라니... 하지만 친구에게 그 조언을 하는 입장이 되어 보니 새삼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됐다. 상을 받기 위해, 세상의 인정을 받기 위해,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쓰는 글은 얼마나 길을 잃기 쉬운지. 많은 이들의 마음에 가 닿는 창작을 하고 싶지만, 그걸 목표로 하다 보면 한 발 한 발 내딛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결국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 외에는 할 수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나를 만족시키는, 내 안에 깊이 들어가는, 거기서 마주한 나만의 진실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는 거 아닐까. 그 과정에서 몰입하며 스스로 작업물을 아끼는 게 중요하지, 잘 보일 생각부터 하지 말자고.
“그래서 어느 정도 썼어요?”
“어... 그게요... 거의 다 쓰고 10편 정도 더 쓰면 되는데... 써 놓은 걸 직면하는 게 좀 어렵더라고요... 구릴까 겁이 나고요...”
“아니, 마무리를 지어야죠... 일단 뭐라도 끝을 내세요. 그래야 그걸로 같이 뭔가를 만들어 나가죠. 저랑 같이 하면 돼요.”
알겠다고, 2월엔 꼭 끝내겠다고 말씀드리며 전화를 끊었지만, 1월 내내 미루던 일이 2월이 되었다고 단번에 해결되진 않았다. 새사람이 되기란 왜 이렇게 어려운지. 어쩌면 친구보다 마음이 급한 건 나였다. 두 번째 책으로도 경제적 성과를 내지 못하면 내 콘텐츠를 만드는 일은 접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돈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내 마음에 드는 일인데, 그것만큼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그것마저도 못할까 무서워서 직면을 못 했다. 그러자, 미국에 음악 공부를 하러 간 친구가 조언했다.
“누나, 누나도 너무 힘들면 다시 공부해. 미국 생각보다 기회 많이 줘. 좀 가상세계 같은 느낌은 있지만... 회복하고 더 시야 넓혀서 50살에 큰 거 하면 되지!”
그러고 싶다. 하지만 돈은? 방법을 찾으면 어떻게든 장학금으로 커버가 될 수도 있다. 문제는 뭘 공부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거다. 내가 모르는 세계를 더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에 문화인류학과 대학원 들어갔다가 1학기 만에 그만둔 게 난데...
“일단 책을 잘 완성시킨 다음에 생각해 보려고. 근데 글쓰기도 그나마 내가 제일 재미있어하는 건 줄 알았는데 세상에 보여주려고 하니 어렵네. 내가 끄적거린 글이 일기 너머의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모르겠어서 직면을 못 하겠어... 내가 만든 걸 다시 보는 게 너무 어려워.”
“근데 그건 해야 돼. 누나 실력을 아는 게 중요한 거 같고, 최대한 빨리 객관성을 깨닫고, 그 뒤엔 무조건 길게 보는 거지. 지금은 좁밥인데, 지금 좁밥인 거 알았으니 10년 뒤에는 아닐 것이다. 35살에 좁밥인 거 깨달았으니 50살엔 그래도 뭐라도 할 수 있게끔 만들어 놓자. 1-2년 안으로 쇼부 보려 하면 안 되고 특히 창작은. 그 여정이, 산을 오르는 게 삶의 일부로 굳어지게끔 해야지 뭐 운동처럼. 무조건 길게 봐야 해.”
어느 시기가 넘으면 스스로를 쓸모없는 사람으로 여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30대에 커리어 전성기를 맞아야 된다는 생각에 조금 찔러 보고 아니다 싶으면 바로 포기했다. 그런 나를 직면할 힘은 없어서 과대포장하고, 현실과 이상 사이 괴리가 크다 보니 우울해지고.
“나도 한참 그랬던 거 같아. 근데 막상 직면하면 그 정도는 아닐 거야 아마.”
“그래, 고마워.”
그렇게 예전에 쓴 글들을 다시 보고 다듬고 있는 중이다. 캐롤라인 냅이나 박완서의 에세이를 보며 예전엔 ‘와... 이렇게 쓰고 싶다...’ 했지만 요즘엔 ‘어, 내 글이 더 재미있겠는데?’ 싶은 생각도 가끔은 든다. (내내 우는 소리 하다가 갑자기 거만 떠는 걸 보니 여전히 제대로 직면을 못한 게 틀림없다.) 우습지만 이 기세를 몰아 부디 봄엔 두 번째 책의 원고를 마무지을 수 있기를.
마흔한 살의 박완서는 말했다. ‘양말 깁기나 뜨개질만큼도 실용성이 없는 일, 누구를 위해 공헌하는 일도 아닌 일, 그러면서도 꼭 이 일에만은 내 전신을 던지고 싶은 일, 철저하게 이기적인 나만의 일인 소설 쓰기를 나는 꼭 한밤중 남편의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하고 싶다’고.
거기에 서른다섯 살의 내 목소리를 보태본다.
규칙으로 앓는 소리를 내지만 그래도 결국엔 해내는 내가 있고, 그런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있고, 끝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떠올라 술술 풀리기라도 할라치면 경제적 자유를 이룬 억대 자산가가 팔자를 바꾸쟤도 안 바꿀 것같이 행복해진다고.
오래 행복하고 싶다. 자신을 꾸미지 않는, 타인의 좋은 점을 봐주는 이야기꾼이고 싶다.
*본 에세이는 박완서의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책에서 인상깊게 본 수필 한 편을 오마주해서 쓴 글입니다.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박완서 오마주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