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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형준 May 11. 2017

자연과 예술의 섬, 나오시마

3박 4일 일본 '나오시마' 여행기


예술에 대한 선망이 우리 곁으로 다가올 때 가장 먼저 나타나는 심리적 반응은 '설렘'이다.
느긋하고 여유롭게 예술을 감상할 때의 감정은 '설렘'이 아니다. 유럽 미술관 벽에 가득히 걸려 있는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을 주의 깊게 보는 이들이 많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금방 지루해진다. 하지만 예기치 않게 우리에게 감동과 설렘을 주는 작품들이 있다. 어느 골목길 귀퉁이를 돌다가 발견한 의미 있는 그래피티나 할머니들의 열정이 느껴지는 자수 옷에서 우리는 설렘을 발견할 수 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설렘이 함께 한다면 그 시간은 참으로 가치 있는 시간이 된다.



자연과 인간, 예술이 함께 하는 문화의 섬, 나오시마


인구 3000여 명, 면적 약 8 km². 서울 여의도와 크기가 비슷한 작은 섬이다.

나오시마는 과거 해상교통의 요지로 유명했으며, 1917년 미쓰비시 중공업이 금속제련소를 세우면서 크게 발전했다. 그러나 중금속 폐기물 등으로 환경이 파괴되고 제련업마저 쇠락하자 나오시마는 버려진 섬이 되었다.

이 섬이 다시 각광받기까지에는 한 기업인의 노력이 숨어 있다. 1987년 출판업계에 몸담고 있던 후쿠다케 소이치로는 인간에 의해 피폐해진 섬을 되살리고자 10억 엔을 들여 나오시마 섬의 절반을 사들였다. 섬 전체를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나오시마 프로젝트’가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그 후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와 운명같은 만남을 계기로, 본격적인 예술의 섬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1990년 후반 베네세 하우스와 지추미술관이 생겨나고 섬 곳곳에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이 들어섰다. 자연과 예술이 경계를 허물며 매혹적인 마을로 재탄생한 것이다.



< 나오시마 중요 장소 및 교통정보  >

나오시마 간이 지도

미야노우라 항구, 혼무라, 베네세 하우스 세 곳을 기준으로 주거, 편의시설이 밀집해 있다. 마을버스가 정기적으로 다니긴 하지만 오후 5시 이후에는 배차간격이 길어져 불편하기 때문에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좁은 해안 지역이나 골목길을 누비며 여유로운 감상을 하기엔 자전거가 적합한다. 트레킹을 즐기는 사람들은 도보로 다니는 것도 좋겠다.

( 자전거 1일 렌트 비용 : 700엔 ~ 1000엔 )


게스트하우스나 민박을 이용하려면, 미야노우라 항구보다는 혼무라 지역이 다음날 관광을 위해 편할 듯하다.


한산한 우노역


나오시마는 우노항이나 다카마츠항에서 배를 타고 가야 한다(한국 관광객들은 대부분은 인천-다카마츠 직항을 타고 와서 나오시마로 간다). 30분 간격으로 배차되어 있는 페리를 타고 20분 정도 가면 나오시마에 도착할 수 있다. 통계를 보면 인구 3000명 정도 되는 작은 섬마을에 매년 5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한다고 한다. 매주 8000~9000명의 인원이 이 작은 섬을 들린다는 사실이 쉽사리 믿기지 않는다.



< 미야노우라 항구 근교 >

섬에 도착하면 쿠사마 야요이의 빨간 호박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등교하는 학생들, 일터로 향하는 직장인들의 모습은 여느 도시와 다를 바 없다.



< 혼무라 근교 >

버스 정류장 앞 가게
흔한 가정집
혼무라 해안가



< 이에 프로젝트'(Art House Projec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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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 : 1030엔

평일 입장 10:00 - 16:30

월요일 휴무 / 사진 촬영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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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시마 부활의 신호탄은 미술관이 아닌 '집(家) 프로젝트'가 이끌었다. 집 프로젝트는 혼무라 지역에 버려져 있던 빈집과 신사들을 새로운 개념의 예술 건축물로 복원하는 작업이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건축가 '미야지마 다쓰오'는 이 작품을 만드는 주인공으로 100여 명의 마을 주민을 모집했고, 그들로 하여금 직접 복원에 뛰어들 수 있도록 지원해줬다.

미야지마 다쓰오의 이 프로젝트는 두 가지 점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첫째로 전통과 현대미술의 조화라는 새로운 컨셉의 브랜드 디자인에 의문을 가지고 있던 섬 주민들을 자연스럽게 이해시키며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 냈다. 전문예술가가 아닌 섬 주민들을 예술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시켜 이들이 예술의 소비주체가 아닌 지속적인 생산주체가 될 수 있도록 했다.

두 번째로 낡고 버려진 것에서 예술사적 의미를 가지는 온고이지신의 정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장소의 역사와 추억들이 예술 소재로 적극 활용되었다. 낡은 빈 집들을 추억의 창고로 전환시켰고, 오래된 신사, 절터를 복원해 새로운 브랜드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마을의 추억을 복원하는 과정이 예술 그 자체이자 진화한 것이다.

혼무라 지역을 구석구석 다니다 보면 다양한 아트하우스들을 만날 수 있다. 제임스 터렐의 작품이 있는 집부터 갖가지 진기한 예술품으로 가득한 각양각색의 집들이 많으니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다녀보면 좋을 듯하다.



< 안도 다다오 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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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 : 500엔

평일 입장 10:00 - 16:30

월요일 휴무 / 사진 촬영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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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다다오의 소개와 연역, 작품 활동과 미니어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물론 작품들 중 최고의 전시품은 미술관 그 자체이다. 건축에 일생을 바치며 고민한 흔적들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그의 작업은 단순화된 조형과 빛이 어우러진 조경, 콘크리트를 주로 사용한다. 그래서 ‘빛과 물의 건축가’라고도 불린다.

안도에게 건축가로써 가장 중요한 덕목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그는 건축이 외적인 조건을 다루거나 기능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들었을 때처럼 감각이 깨어나고 지적인 자극과 설렘을 줄 수 있어야 비로소 건축물 본연의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 것이다.

(일본어를 읽을줄 안다면 더욱 의미있는 전시가 될 수 있다ㅜ)

안도 다다오 미술관 입구



<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 근교 >

나오시마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쿠사마 야요이의 노란 호박이 베네세 하우스 해안가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 베네세하우스 뮤지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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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 : 1030엔

평일 입장 08:00 - 21:00

휴무 없음 / 사진 촬영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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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틀버스에서 내려 해안가로 조금 걸어가면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을 만날 수 있다. 건물 안팎에는 앤디 워홀 등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베네세 하우스에서 숙박할 경우 1박에 35만원~45만 원 정도이고, 베네세 전용 셔틀버스와 베네세 뮤지엄 관람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4~5달 전부터 예약이 꽉 차있기 때문에 항공권보다 먼저 예약하는 것을 추천한다.

베네세 하우스는 해안가를 마주보며 길게 이어져 있다. 해변을 따라(내부시설 관람은 투숙객에게만 허용된다) 걸어가다 보면 산등선과 절묘하게 어우러진 호텔의 유려함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해안가에서 바라본 베네세 하우스
베네세뮤지엄 안에서 바라본 노을
Bruce Nauman '100 Live and Die'



< 지중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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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 : 2060엔

평일 입장 10:00 - 18:00

월요일 휴무 / 사진 촬영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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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미술관(地中美術館)은 이름 그대로 땅속에 지어졌지만 안도 다다오 특유의 빛과 풍경, 조형물을 한 곳에 담아낸 경이로운 건축물이다. 모네, 월터 드 마리아, 제임스 터렐의 작품들이 다다오의 건축물과 조화롭게  전시되어 있는 모습은 세계 어딜 가도 볼 수 없을 진풍경을 자아낸다. 관람객들의 탄식이 끊이질 않는다.

매표소에서 미술관을 가는 길에 모네가 좋아했던 꽃과 나무를 심어둔 '지추 정원'이 보인다. 건물 내부는 기하학적으로 분리된 여러 공간들이 마치 영화 속 신전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준다. 작품마다 관람인원이 제한되어 있어 여유롭게 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다.



< 이우환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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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 : 1030엔

평일 입장 10:00 - 18:00

월요일 휴무 / 사진 촬영 불가(야외 조형물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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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환 미술관은 지중미술관과 베네세하우스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 섬을 최초로 기획하고 투자한 '후쿠다케 회장'은 이우환 작가의 작품이 들어설 장소가 나오시마 전 지역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명당이라고 했다.

이우환의 세계는 우리에게 '만드는 것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날 것을 촉구한다. 서구의 미니멀리즘이나 개념미술과 차별화되는 우리 고유의 동양정신을 추구하고자 했고, 시각적 결과물보다는 제작 과정에 내재된 조형의 본질적 의미를 찾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세계와 사물, 인간 간의 관계와 접점을 찾으려는 시도가 그의 작품세계를 구축해 준다.




  #TIP :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나오시마 맛집


01. 이자카야 'Cinnamon'

미야노우라 항구에서 북쪽으로 50m 정도 걸어가면 나온다. 저녁 7시 이후에는 대기손님이 줄지어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섬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메뉴들이 있다. 흡연석이 대부분이고 자리가 붙어있어 비흡연자들은 조금 힘들 수 있다.

미야노우라 항구 근처 식당 'Cinnamon'



02. 채식 전문 식당 'Aisunao'

신선하고 담백한 식재료와 정갈한 구성이 매력적인 곳이다. 채식주의자가 아니라도 재료 특유의 향과 소스의 감칠맛이 입맛을 돋운다. 가격도 저렴한 편.

혼무라 근처 식당 'Aisunao'



03. 일본 가정식 'Cafe salon Nakaoku'

평일 11시~2시, 5시~8시까지만 영업하고 식재료가 다 떨어지면 손님을 받지 않아, 저녁은 필히 사전예약을 하고 찾아가야 한다. 관광객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도 즐겨 찾을 만큼 담백하고 깔끔한 일본 가정식을 맛볼 수 있다.

혼무라 근처 식당 'Cafe salon Nakaoku'




나오시마처럼 삶과 자연, 예술이 한 곳에 공존하면서 완성도 높은 브랜드 가치까지 갖춘 곳은 흔하지 않다. 기획자에 대한 신뢰, 투자자들의 지속적인 후원, 마을 주민들의 능동적 참여 3박자가 오랜 기간 유지되며 발전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도 소외된 지역이나 소규모 공동체를 살리기 위한 시도들이 예전에 비해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나오시마를 염두에 두고 진행했던 국내 프로젝트도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단순히 예술작품 몇 개 들여놓고 예술적 가치를 지닌 공동체라고 급조한 수준에 그쳤다. 관료주의 전시 행정의 참담한 결과다. 지자체와 시민단체가 조급해하지 않고 장기투자와 체계적인 계획을 수립해서 한국형 나오시마가 등장할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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