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바보 이모가 조카에게 배우는 성장하는 삶의 법칙
나의 첫 조카는 피해 갈 것만 같았던 조카바보라는 명표를 여지없이 달아준 아이다. 일반 여성들이 아이들을 귀여워하는 모습은 나와 거리가 조금 있다. 물론 일반 여성의 기준도 시대가 많이 변화해서 달라졌겠지만, 난 모든 아이들을 귀여워 하진 않는다. 조금 얘기가 통하고, 약간의 시크함이 있는 아이들이 좋다. 어른도, 아이도 자신의 개성이 있고, 주관이 있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다행히도 조카는 그 매력을 엄청 풍부하게 가지고 있는 내 주위의 1인이다. 그리고 내가 부족한 부분이나, 저런 부분을 가졌으면 좋겠다, 하는 부분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리고 웃기다. 이게 제일 중요하다. 사람은 유머가 있어야 한다. 나 또한 학창 시절 나름 유머가 풍부했었던 것 같은데,,, 언젠가부터 유머가 줄어든 느낌이다. 유머도 나이가 있나... 그래서 최근에는 유머를 다시 부활시키고 나름 유머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 중이다. 물론 노력으로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입체적인 면에서 변화하고 성장한다면 뭔가 다시 그 유머들이 돌아와서 혼잣말로 얘기하며 크크큭, 키 킥 대거나, 박장대소하는 일들이 자주 돌아올 것 같다.
주말에 조카를 자주 보러 간다. 뭔가 놀아주기보다는, 평일에 일이나 다른 곳에서 썼던 에너지들 외 다른 에너지들을 받기에는 조카가 딱이다. 아이들에게서 나오는 그 순수한 에너지. 물론 동생과 제부, 그리고 새로 태어난 둘째 조카에게서 타향에서 또 하나의 가족을 만나는 따뜻한 코시히카리 쌀밥 같은 작고 고소한 온화함이 있다.
1박 2일에서 2박 3일 정도는 서로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적당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한다.
첫 조카는 아주 표현력이 좋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아주 크게 표현하고 좋아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런 부분을 상대방 앞에서 아주 잘 표현을 한다. 경상도 출신의 첫째 딸을 앞세워 말하면 난 고마운 부분을 특히, 다른 이성들 앞에서 제대로 표현한 적이 없었다. 뭔가 머쓱하고, 좋은데? 좋은 건지 아닌 건지 모르는 태도로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많은 오해를 사기도 했다. 무뚝뚝함이라고 하기에는 이런 태도는 나중에 내가 쓸데없는 오해를 불러 더 큰 에너지를 소모하게 하는 것들이었다.
"아이 좋아" "이모 최고야"라는 표현을 세상 다 가진 표정으로 귀여운 말투와 함께 표현하면,
아... 이래서 마음이 녹아내릴 수 있구나 한다.
그리고 상대방과 헤어질 때는 엄청 울어서, "나를 저 정도로 좋아하나?" 하는데, 헤어지고 나면 또 바로 다른 환경에 적응해서 시크하게 눈물을 잘 그친다고 한다. 배워야 할 점이다. 특히 나는 더.
작년 이맘때쯤에는 카페도 자주 갔는데, 남성 바리스타 분들이 있는 곳 앞에서 잘 되지 않는 발음으로 멋있다, 좋다는 느낌을 엄청 표현하더니 결국 바리스타 분들이 조카에게 반하여 가끔 조카 덕분에 달달한 디저트를 맛보는 혜택도 누렸다. 그렇다고 막 앞에서 나대는 타입은 아니다.
처음 보는 낯선 환경에서는 약간의 낯도 가리지만, 적재적소에 귀엽게 표현을 잘하면서도 너무 끌려 다니지 않는, 그런 게 있다.
크기대로 블록을 쌓는 장난감 놀이를 하는데, 크기대로 올렸던 나는 크기대로 올리지 않고서 올리는 조카에게 한 수 배웠다.
얼마 전에는 둘째를 출산하고 조리원에 있는 엄마와 2주간을 떨어져 있었다. 팬데믹 시대라 면회조차 되지 않아서 어린 나이에 엄마와 떨어져 아빠와 생활하였다. 주위에서는 안쓰러운 시선도 있었지만, 아빠와 친해질 수 있는 기회라며 우리는 긍정적인 분위기로 가족 단체 창에서 응원했다. 역시나 엄마를 크게 찾지 않고 뭔가 아는 듯이 아빠와 잘 지내어냈다. 아빠 손으로 묶인 힘없는 머리 묶음 외에는 크게 엄마와 떨어져 있는 티가 나지 않았다. 그러면서 1주를 보내고 나와 남동생과 제부 조카가 근교에 잠깐 나갔다. 조카와 최대한 재미있게 놀아 주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한참을 바쁘게 신나게 보내고 있는데, 또래 아이들이 자신의 엄마와 사진을 찍는다며 엄마를 크게 불러댔다. 조카는 씩씩하게 걸어가다 "엄마 나랑 사진 찍자" 하는 다른 친구의 소리에 멈칫하며 두 손을 모으고 한참을 지켜보던 것이었다. 동영상을 찍고 있던 나는 얼른 카메라를 끄고 조카를 안아서 다른 화재로 말을 시키면서 카페로 들어갔다. 울지로 떼를 쓰지도 않는 조카가 뭔가 대견했다. 묵묵히 뭔가를 참고 있는 건지, 아니면 모르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너무 어른스러워지면 안 돼. 하는 바람이 있었다.
요새는 빨라서 미운 3세라고 했던가. 천방지축에 에너지가 뿜 뿜, 목소리도 크고 떼도 잘 쓰지만, 아주 귀여운 목소리와 말투를 가져서 페널티가 엄청난 조카가 뭔가 어른스러운 첫째의 면모를 비출 때. 뭔가 짠하면서도 그러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다행히 2주는 잘 지났고, 동생과 제부는 새로 생긴 둘째에 대해서 큰 감정 변화나 생활을 맞이 하는 첫째 조카를 위해 하나하나 행동을 살피고, 모자란 부분을 최대한 채워 주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첫째 조카는 다행히 동생에 대한 질투는 크지 않지만, 엄마 아빠가 많이 안아 주지 못해서 서운한 감정을 어린이집 선생님께 돌발 행동의 이유로 뜬금없이 소환한다고 한다.
동생이 화장실을 가고 싶어서 다리를 베베 꼬면서 초조해하는 모습을 보더니, 첫 조카가 "엄마 어디 아파?" 한다. 동생은 " 어.... 엄마 똥을 싸고 싶어서"
그러더니 첫 조카는 동생 뒤로 가서 손짓을 하면서 "응가 해 엄마" 한다.
"여기 싸면 안 돼. 엄마 똥을 치워 줄 거야?" 하면서 내가 놀렸더니, 조카가 "응, 치울게 여기에 싸아" 한다.
진심 걱정하는 표정으로 동생 뒤를 몇 번 왔다 갔다 했다. 우스갯소리로 했는데. 뭔가 이상한 감동이 몰려왔다.
츄피라는 유아용 책 시리즈가 있는데, 가끔 스티커들이 함께 있다. 조카와 책을 보면서 스티커로 떼었다 붙였다 했다. 책도 좋아하는 조카 덕분에 나도 요즘의 동화책들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조카의 스티커가 함께 따라왔다.
레깅스 무릎 정도에 스티거가 붙어 있었는데, 조카가 따라온 것처럼 깜찍했다. 그리고 스티커를 떼었는데. 그건 바로 "운"이었다.
요새 "운"을 부르는 방법, "운이 좋아서요"와 같이 운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나 태도들을 보고 있는데, 순간 나에게도 운이 온 것만 같았다.
스티거는 "공"이라고 쓰인 것이었는데, 내가 뒤로 뒤집어서 떼어내다가 "운"이라고 본 것이다.
조카는 나에게 성장하는 여러 가지 면모를 알려 주면서, 운까지 선물해 준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우리 첫 조카 파이팅. 아니 건강하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재미있게 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