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기사님께 전달하는 메모

안전한 배송 감사드립니다. 건강한 하루 보내세요:)

by meaningtoday

아침 라디오에서는 택배기사님들의 과로로 인한 사망 소식과 함께 국정감사가 끝을 달리고 있을 때다. 언택트 사회로 진입하면서 택배에 대한 중요성과 물량 자체도 가속도가 붙었다. 이에 따라 사회적 문제도 이슈가 되고 있었다.

며칠 전 라디오와 저널리즘을 통해서 "누군가가 편리하면, 누군가는 불편하다"라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무의식 중에 관련한 이슈들도 자리 잡고 있었지만, 아침 무의식 속에서 새벽 배송을 맞이 하러 가는 나의 이불 킥도 이미 내 신체에서 반사적으로 견고한 루틴을 잡고 있었다.

백수가 고민 끝에 알차게 고른 제품을 무려 무료배송 쿠폰으로 주문한 식재료를 새벽 배송을 통해 받는 기쁨.
잠자리에서 걸어 나온 나는 냉장고의 유산균 하나를 먹은 뒤 현관문들 빼꼼하게 연다.
손만 살짝 뻗어서 택배 박스를 현관으로 들여다 놓는다. 얼음팩은 싱크대로 가져가 가위로 일부를 뜯어 놓는다. 제품들은 냉장고와 수납장 위에 분리를 해 놓고, 박스 위의 배송 스티커를 뜯어서 찢거나, 보안을 위한 롤링 스탬프로 배송 송장 위를 신랄하게 굴린다.

작년에 화제가 된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도 좋아하는 것을 얘기하는 장면에서 택배 받는 것이 포함되었다. 물론 크게 공감한 사람 중 한 명이다. MD와 마케터라는 직업상, 물건을 구매하기 좋아하고, 좋아하는 것을 알아 가는 것, 좋아하는 제품을 사서 주변에 알려 주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의 산물을 영접하는 택배와의 MOT는 먹는 것 이상의 즐거움을 준다. 이 즐거움 때문에 물론 돈 모으는 것과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뭐 나쁘지 않다. (나쁘지 않지만, 이런 것들을 미리 또 다른 제품을 사기 위한 좋은 원동력으로 기록을 만들어 놨어야 하는데.. 하는 약간의 후회는 있다. 그래서 요새 소비를 포함한 나의 기록을 위해 노력 중이다.)


브랜드별로 택배기사님마다, 방문하는 시간대가 다르다. 조금 더 기다리거나 오전 중에 오면 더 좋은 제품이 해당 브랜드로 지정되는 문자를 받을 때는 뭔가 더 므흣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택배는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아주 소중한, 물론 다른 분들에게도 이제 이 시대에서는 필수다. 소중한만큼 뒤에 감춰진 그늘을 지나치고 있다는 약간의 부채감이 드는 2020 가을 아침, 2년 전 문득 그 장면들이 함께 오버랩되었다. 서소문에 있는 회사를 다니고 있어서 항상 출퇴근 길에 대한통운 회사를 지나쳤다. 그때 꽤 길게 파업 운동을 하셨었다. 바닥에 앉아 있으시던 조금 선하게 생기신 60대 기사 아저씨가 찐빵 같은 것을 하나 베어 드셨는데 이상하게 좀 뭉클했다. 아빠와 비슷해 보이시는 나이셔서 더 몰입이 되었다. 그때에는 시끄러운 노래와 마이크 소리보다 뭔가를 굉장히 참다가 외치는 울컥한 소리가 더 들렸던 것 같다. 퇴근 지하철에서 그 기사님의 잔상이 계속되던 중, 갑자기 울컥 눈물이 났다. 그리고는 그때 때마침 집에 도착된 택배 알림 문자를 받았다.
확인 문자를 부탁하셨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대부분을 지나쳤던 난 처음으로 택배 기사님께 회신 문자를 보냈다.


2년 그리고 10개월이 지난 지금은 세상이 너무 크게 변했다. 사회적인 변화에 따라 어떤 분야에 있어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고, 나아지는 과정이겠지만 소홀하지 않도록 더 관심을 가질 필요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일 배송조차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시대, 조금은 천천히 와도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다.

잊어버리고 있을 때쯤 도착되는 택배도 너무 기분이 좋거든요^^


오늘 아침에는 한 발짝 살짝 내밀고 중심을 잡은 체 노란색 포스트잇을 광고 스티커 위에 붙였다.
비록 삐뚤한 글씨와 '드로잉을 좀 배웠어야 했어' 하는 생각이 함께 들었지만, 조금 적극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표현을 해 드리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이 표현을 하면 나의 제품들을 더 안전하게 놓고 가 주실 것만 같아서' 하는 영민한 마음도 담았다.



그 뒤로 배달 제품과 택배들은 좀 더 차곡하게 쌓여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냥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나의 포스트잇이 바빠서 지나칠 수 있는 택배기사님들에게,

한 번쯤 눈에 띄어 한숨 돌리고 갈 수 있었으면 한다.

한 번쯤은 눈에 띄어 내가 택배로 받는 즐거움을 아주 조금이라도 느끼셨으면 한다.

지금은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어 가끔 현관 앞에 왔다 가시는 사람 발걸음 소리가 친구들보다 더 가깝게 느껴진다.





오늘도 여전히 감사합니다.
건강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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