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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제인 Apr 16. 2024

호주 이민 온 지 벌써 1개월 반

어색한 이방인

호주로 떠나기로 했다. 그리 후련하지는 않았다.


호주인 남편을 따라서 이번에는 한국이 아닌 호주에서 함께 살아보자고 하고 호주로 왔다. 이미 2년 동안 함께 한국에서 살았었기 때문에 호주 생활도 경험해 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도 있었고, 환경적이나 일적인 측면 모두 남편에게는 한국보다는 호주가 더 살기가 좋았기 때문에 호주로의 이민을 결정했다. 나는 호주로 오기 전, 때 마침(?) 번아웃도 왔고 한국도 호주도 이도저도 아닌 중간에 끼어있는 느낌이라 얼른 호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었달까?


하지만 얼른 한국을 떠나고 싶었던 마음에 비례해서 막막했던 것도 사실이다. 30년을 넘게 살아온 한국을 떠나서 호주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가꾸어 나간다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막연함부터 새롭게 삶이 리셋되는 시점에서 나는 새로움을 받아들일 신체적이나 정신적인 에너지가 없다는 것까지 모든 것이 걱정 투성이었다. 호주로 여행을 와보기나 했지 이렇게 살러 가는 것은 또 처음이었기 때문에, 여행객이 아닌 호주 주민(?)으로서의 삶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을 만나면 일차적으로 호주로 가니까 너무 좋겠다부터 시작해서 일도 안 하고 그렇게 좋은 나라에서 산다니 정말 꿈같은 삶이라는 말까지 부러움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 부러움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나는 호주로 이민을 가는 것이 부담이기도 하거니와 한국에서의 힘든 회사 생활이 싫어서 도망가는 그런 느낌인데, 마치 마음 편하게 파라다이스로 떠나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였다.


호주의 울릉공에서 삽니다.
Austinmer, Wollongong


직장을 구하고 나보다 4개월 먼저 호주로 떠난 남편은 울릉공(Wollongong)이라는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울릉공은 시드니 아래에 있는 해변가 지역이다. 한국으로 치면 경기도 지역과 비슷할 것 같다. 도심과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너무 멀지는 않은 그런 곳 말이다. 나는 서울 토박이여서 그런지 자연과 가까운 삶을 동경해 왔다. 북적이는 사람과 차들 그리고 높은 건물들에 둘러싸인 곳보다는 이왕 자연이 좋다는 호주로 갔는데 도심하고 멀리 떨어져도 좋으니 집값도 조금 더 저렴한 울릉공에 자리 잡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남편 회사의 본사도 울릉공에 있기도 해서 회사와 멀지 않은 곳에 집을 구하자고 했다.


울릉공은 시드니보다는 확실히 렌트비는 저렴한 편이지만 괜찮은 매물을 구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호주의 부동산 시장도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한국보다는 기본적인 집의 사이즈가 크다고는 하지만, 한 달도 아니고 일주일에 5-60만 원을 렌트비로 낸다니… 이게 두 명이 살기에 괜찮은 크기의 집의 평균적인 렌트비임에도 기가 찼다. 그래도 산도 가깝고 바다도 가깝고 도시의 소음도 없는 시골 동네에 괜찮은 타운하우스에서 지낼 수 있다니 이 정도면 서울의 8평 원룸에서 복닥복닥 지내던 시절에 비하면 엄청난 업그레이드였다.


남편과의 어색한 조우, 그리고 나의 시골 동네
울릉공에서 내가 사는 동네 길거리


4개월 만에 시드니 국제공항에서 만난 남편은 정말 어색했다. 낯선 사람처럼 너무 어색했다. 연애 초창기보다 더 어색해서 너무 이상했다. 연애할 때는 이보다도 더 오래 떨어진 적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고작 4개월인데 이렇게 어색함을 느끼니 신기했다. 아무래도 결혼해서 매일같이 함께 지내다가 처음으로 장기간 떨어져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이 어색함은 생각보다 오래갔다. 한 3일 정도는 어색했던 것 같다. 떨어져 있는 동안 매일매일 영상통화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3D의 실체로 있으니 더 어색했나 보다. 너무 어색한 나머지 영상통화로 대화하는 것이 더 편할 것 같다는 얘기까지 나왔었다.


공항에서 차로 2시간이 조금 안 되게 운전해서 도착한 동네는 너무 시골이라서 걱정된다는 남편의 우려와 달리 너무 좋았다. 집 바로 앞에는 ALDI라는 호주의 가성비 마트가 자리 잡고 있었고, 집 근처에 도보로 10분 내외에 큰 마트가 2개나 있었다. 도서관도 있고 카페도 있고 좋아 보이는 식당도 많고 오히려 동네가 작으니 도보로 돌아다닐 수 있어서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호주에 온 1주일 동안 매일 같이 마트와 약국(영양제 쇼핑을 위해)을 들락날락한 결과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호주의 카페들은 아침 댓바람부터 오픈해서 빠른 곳은 오후 12시, 대부분은 오후 2시면 문을 다 닫아서 오후에는 딱히 밖에서 머물 곳도 없었다. 그나마 제일 재밌는 곳이 마트여서 마트만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왜 남편이 시골이라 걱정했는지 알 것 같았다. 운전을 하지 않고서는 동네 마트 밖에는 갈 곳이 없었다. 하지만 내 운전실력은 왕초보.. 아직도 혼자 운전하는 것은 두렵다. 안 그래도 낯선 나라에 기동력까지 떨어지니 무력한 기분이 들었다.


무기력한 어색한 이방인이 되어 버렸다.


호주에 오기 전에는 6개월은 일 안 하고 푹 쉬면서 재충전할 거다!라는 마음으로 왔는데, 아직 1개월 반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불안하다. 외국의 이 시골 마을에서 어떻게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을지 막막하다. 외국인으로서 어떻게 일자리를 잡을지 막막하다. 패기 넘치는 대학생 시절에는 외국에서 살고 싶어서 미국에서 일자리를 잡아보려고 갖은 방법을 다 찾아보고 그랬는데 그런 자신감과 포부가 어디서 나왔을지 궁금할 정도로 지금은 꽤나 무기력하다. 내가 싫어하는 일을 꾸역꾸역 하던 한국 생활이었는데, 그게 싫어서 호주로 온 것인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조차 막막하다니 차라리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서 회사에 다니고 싶은 심정이다.


최근 ‘마녀배달부 키키’를 보면서 예전에는 별생각 없이 보던 장면에서 키키에 이입해버렸다. 13살이 되어서 새로운 마을에서 환영받으며 독립된 삶을 살고자 열정에 넘쳤던 키키가 새로운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경찰에 잡혀갈 뻔하고 모두들 본인을 이상하게 보며 꺼려하니 자신감이 추락하고 막막한 기분에 휩싸여버린 것이다. 초반의 그 장면에서 지금의 나와 비슷하다는 감정을 받았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내가 속한 사회가 있었고, 내 가족과 친구들이 주변에 있었고 그들에게 나는 환영받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호주에 온 지금, 아는 사람 하나 없고(남편 제외) 모든 것이 낯설고, 여기서 소속감을 느끼면서 어떻게 자리를 잡아야 하나 막막하기만 하다. 물론 집에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저절로 내 자리가 찾아지지 않을 것이란 건 잘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당장 소셜 클럽에 가입하고 일을 시작하는 등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할 힘도 없다.


글이 위로와 힘을 주겠지. 파이팅 나 자신


이러한 고민과 걱정과 막막함도 어쩌면 해외로 이민 온 사람들이 느끼는 당연한 감정이고 언젠가는 추억이 되겠지 라는 생각을 한다. 생각이라기보다 기대라고 해야 할까? 학생일 때 해외에 정착하는 것과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다 온 성인으로 해외에 정착하는 것은 매우 많은 부분에서 다른 것 같다. 물론 나는 혼자가 아닌 남편이 있기는 하지만 나라는 사람이 어떻게 새로운 나라인 호주에서 자립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다. 일단 그런 열정과 에너지가 생길 때까지 잘 쉬어보는 것이 목표지만 쉬는 것도 그 방법을 체득하기 위해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안쓰럽기도 하다. 어떻게 하면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맘 편하게 쉴 수 있을까? 다시 한번 더 내 마음을 잘 들여다보기로 다짐해 본다. 사실 막막한 마음에 글이라도 써야지 하고 구구절절 써내려 갔는데 생각보다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 앞으로는 혼자 버티기 힘들 때, 심심할 때, 평온함을 느끼고 싶을 때 종종 글을 써야겠다.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삶을 써내려 가는 것.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할 수 있을 것 같다.


저녁 산책, 예뻤던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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