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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제인 Sep 07. 2023

사기 당한지도 모르게 사기 당할 수 있으니 조심할 것

03. 튀르키예 이스탄불

눈 뜨고 코 베인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조심해도 알고도 피해를 당할 수 있다는 말인데,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피부로 느끼고 싶다면 이스탄불로 가면 된다. 사실 이스탄불에서는 눈 뜨고 코가 베여도 코가 없어진지도 모를 수도 있다. 이스탄불 관광객이 맞이하는 퀘스트 중의 하나는 여기저기서 관광객을 향해 끊임없이 뻗쳐오는 사기의 마수를 피하는 일이다.


‘탁’, 내 눈 앞에서 구둣솔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이다. 고개를 들어보니 앞에 구두닦이가 여러 도구들로 가득 찬 작업 가방을 들고 구두솔이 떨어진지도 모른채 걸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구두솔을 주워주거나 아니면 적어도 구두닦이를 불러세우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본능적으로 걸어가는 구두닦이를 불러세우고 싶었으나 말이 통하지 않는 해외에서는 조심해야 하는 법이기에 무시하고 걸어갔다.


‘탁’,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구두솔이 내 앞에 떨어졌다. 이제는 분명 이 행동에 무슨 의미가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검색왕 남편이 옆에서 빠르게 검색해보더니 웃고 있었다. 아예 튀르키예 사기 수법에 대해 정리한 게시글이 있다고 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구두솔 떨어뜨리기였다. 구두솔을 사람 앞에 떨어뜨리고 가면 이걸 줏어주거나 아니면 떨어뜨렸다고 말을 거는 사람이 바로 그 사기의 표적이 된다. 구두닦이는 고마움의 표시로 신발을 닦아주겠다고 하고, 닦아주고 나서는 돈을 청구하게 되는 것이다.


알고 나니 뭔가 재미있었다. 물론 사기를 직접 당하면 재미가 없지만 이런 사기 수법을 눈 앞에서 본다는 것이 진정으로 이스탄불의 여행객으로 환영받는 기분이었다. 빠르게 검색한 덕분에 구두닦이 사기를 당하지 않았지만, 사실 구두솔을 떨어뜨렸다고 불러세운다고 해서 그쪽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싶기는 했다. 우리는 닦을 수 없는 운동화를 신고 있었는데 말이다. 심지어 내 운동화는 밝은 베이지색이었다.


사실 이 정도의 사기는 귀엽게 느껴진다. 오히려 문화 체험 같은 기분도 든다. 하지만 이 외에도 여러 사기 수법이 존재한다. 이스탄불에는 큰 재래시장이 곳곳에 있다. 그 중에서도 그랜드 바자르는 관광객이 꼭 찾는 최대 규모의 전통 시장이다. 이런 재래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는 흥정을 반드시 해야 한다. 이 규칙은 사실 관광객 뿐 아니라 튀르키예 현지인에게도 적용되는 규칙이다. 처음에 가격을 물어보면 제 값보다 높게 부르는 것이 이 곳에서의 규칙이라고 한다. 깎고 깎아야 드디어 원래 측정된 가격까지 내려가는 법이다. 사실 대체 무엇이 적정 가격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한 번은 깎고 가야한다.


향신료 냄새가 따뜻하게 감싸오는 이스탄불의 재래시장


이런 사기 수법 중에서 가장 귀찮고 기분이 안좋았던 사기는 ‘식당 결제 사기’이다. 이스탄불의 대부분의 식당과 카페는 식사를 하고 계산하기 전에 영수증을 먼저 요청하게 되어 있다. 우리나라처럼 계산대로 직진해서 바로 결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영수증을 요청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영수증이 내게 오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영수증이 오면 금액을 확인하고 카드나 현금으로 결제를 하게 되는데 여기서 크게 2가지의 사기 수법이 쓰인다.


첫 번째는 내가 먹지 않은 음식의 가격이 청구되거나 무료로 제공되는 빵이나 물에 가격이 측정되어 있는 것이다. 특히 튀르키예에서는 많은 식당들이 빵을 무료로 제공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밑반찬과 같은 개념인데 간혹 가다가 여기에 슬쩍 가격을 매겨서 금액을 부풀리는 식당들이 있다. 그리고 서빙되지 않은 음식인데 영수증에 찍혀서 나오는 경우도 있다. 기분 나쁜 사기를 당하기 싫다면 결제 전에 영수증을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 사실 가격이 부풀려졌다는 것을 알고도 소액이거나 소통이 번거로워서 포기하고 그냥 결제하는 관광객들도 많다. 이러한 사실을 이용하는 나쁜 사람들 때문에 좋았던 식사를 망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두 번째는 현금으로 결제했을 때 잔돈을 가져다주지 않는 것이다. 이게 사기 수법이었다는 것은 여행이 다 끝나고서야 알았다. 영수증을 받고나서 카드로 결제하는 경우는 깔끔하다. 하지만 현금으로 결제할 경우 딱 그 금액만큼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면 좋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잔돈을 기대하며 현금을 먼저 드린다. 그러고 나면 잔돈을 가져다 주시는데 대부분의 경우 잔돈을 빠르게 잘 가져다 주시지만 어떤 식당의 경우 시간이 한참 지나도 잔돈을 가져다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역시나 소통이 번거롭기도 하고 소액이라서 그냥 가는 관광객도 많다. 이를 노린 사기 수법이다. 이럴 때는 직접 카운터로 찾아가서 잔돈을 요청하면 빠르게 해결될 수 있다. 사실 이들도 알고도 잔돈을 주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빠르게 잔돈을 준비해서 준다.


400리라를 내고 50리라 잔돈이 한참동안 오지 않아서 결국 찾아가서 달라고 했던 카페


여러 사기가 있지만 ‘식당 결제 사기’ 중 잔돈 사기는 이스탄불에서 내가 당했던 사기 중 가장 기분이 나빴다. 당연히 잔돈을 기대하면서 자리에 계속 앉아있다가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잔돈이 오지 않으면 그제서야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잔돈을 요청하게 된다. 문제를 눈치채고 정당한 권리를 요청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이 돈도 돈이지만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 기분 나쁜 사기였다.


구두닦이 사기, 재래시장 바가지 사기, 식당 결제 사기에 이어서 마지막으로 주의해야 할 사기는 ‘택시 사기’이다. 택시 사기는 세계 어디를 가도 존재하는 것 같다. 이스탄불도 그 예외는 아닌데, 택시를 타게 되면 반드시 미터기가 잘 켜져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미터기가 잘 켜져 있다고 해도 내릴 때 미터기 요금에 추가 금액을 요청하는 사람도 있다. 이건 아직까지도 사기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는 부분이다. 고속도로 통행료를 추가해서 요청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모르는 것이 약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사기는 금액의 크기를 막론하고 당하게 되면 오랫동안 기분을 나쁘게 한다. 어떤 사기는 알고도 당하게 되고, 어떤 사기는 당하고도 끝까지 모를 때도 있다. 차라리 이왕 사기를 당했다면 모르는 것이 정신 건강에는 더 이로울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스탄불에서 당했던 사기는 다행히 소소해서 내 기분을 나쁘게 했다기 보다는 이런 사기 수법도 있구나 하면서 흥미를 유발하기는 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사기가 정당화 될 수는 없는 법이다.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갔을 때 내 앞에 구두솔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왠지 아쉬울 것 같지만 그래도 모두가 기분 좋게 여행을 할 수 있도록 관광객 사기가 점점 없어지기를 바란다.


그래도 사기를 당하지 않으면 이스탄불에 갔다오지 않은 느낌이 들 것 같은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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