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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지 Apr 28. 2022

<파친코> 를 읽고 나눈 이야기들

전세계인이 한국인이 되었으면 한다는 이민진 작가의 한인 디아스포라 서사

서울의 한 구청 문화센터에서 주최하는 '북살롱' 에 참여자들이 <파친코> 를 읽고 나눈 이야기들.

OO북살롱은 30대 후반에서 50대 중반에 이르는 여성들이 지난 수 년 간 이어오고 있는 프로그램으로 만족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  작품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현재 애플 티비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와의 비교, 작품의 의의



드라마와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있었다.

작년에 읽을 뻔 했던 작품인데 드라마로 인해 각광을 받게 된 시기에 읽게 되어 의의가 있다.


이 작품은 오히려 미국에서 먼저 각광을 받았던 내용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이미 익숙한 대하소설의 전개이다. 그래서 그런지 다소 얄팍하게 느껴진 점도 있다. 생물학적으로는 한국인이더라도 외국인에 가까운 작가가 꼼꼼한 고증을 거쳐 집필했다는 데 의미를 둔다. 일본에 대한 도전이 아니냐, 작가에게 너무 심하게 한 거 아니냐는 대학생들의 질문이 들어온 걸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건에 대해서도 만주로 갔다 라는 표현으로 간접적으로 표현했던 것들이 눈에 띈다. 처음에는 더 직접적이고 강렬하게 썼었는데 순화시킨 것이라고 작가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유대인 홀로코스트를 다룬 <쉰들러 리스트> 문학 작품을 통해 식민지 경험이 있는 전세계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거 같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일본을 특정해서, 겨냥한 질문이 있나? 라는 어느 학생의 질문에 특별히 그런 의도를 하진 않았다. 일본에서 살면서 자이니치의 삶 — 자살한 중학생 사건을 보고 글을 쓰게 되었다 고 밝혔다.


드라마 7화에는 책에는 없는 한수의 성장배경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관동대지진을 다루고 있다. 야쿠자 가족에 대해 재발견 하게 되는 장면들이 있다.


   

선자와 아버지 훈이, 어머니 양진, 선자와 첫째 아들 노아



선자의 아빠 — 본인의 신체적 약점과 어려운 환경에서도 선자를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키워냈다는 사실이 감동적이었다. 부모의 무한적인 사랑이 자녀가 성공하는 데 기여를 하는가 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선자의 당당함은 아빠가 주신 것이고 그러한 양육 방식 덕분에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성격을 갖추게 되었다. 작품에 나오는 일본 여자들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선자는 당차고 강한 여성이다. 결정적일 때 놀라운 결단력을 발휘한다.

주변 사람들이 선자를 도와주는 거 같으면서도 선자에게 의지한다.

똑똑하고 강한 여자. 지혜롭고 용기 있다.


선자의 그러한 캐릭터는 엄마 양진으로부터 받은 것이기도 했다.

양진은 선자 윗세대로서 선자보다 더 참고 인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훈이의 사정을 알면서 ‘선택’하여 혼인했고 막상 처음으로 훈이와 대면했을 때 놀라지도 않는다. 임종을 앞두고 그동안 하지 않았던 말, 참았던 말들을 우루루 쏟아내며 마지막 순간을 맞는다.



선자에게는 자식 특히 노아가 전부이다시피 했다.

그 시절 엄마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자식을 우상 숭배, 추앙했다.

(최근 드라마 속 화제의 대사 : 부모에게서부터도 받을 수 없었던 추앙.

내가 누군가를 먼저 그렇게 하면 나부터 변하더라.)



작가는 노아의 죽음을 단 한 줄로 처리했다. 한 대 얻어맞은 듯한 멍한 느낌을 주었다. 책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불편하고 실망스러웠다.

노아는 엄마가 언젠가 오리라 기다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예 각오를 하고 있었던 듯. 집이 아니라 사무실로 찾아오리라 예상했다는 대목이 있다.


안내원이 설명해주는 걸 듣다가, ‘그런 걸 묻지 말라’고 아들에게 말하는 노아. 저주 받은 피라고 말하는 부분. 나만의 비밀이 있다. 일본인이 되고 싶다 — 이런 내용이 복선이었던 것도 같지만 어떻게 그렇게 단 한 줄로 처리할 수가.


한 번쯤 품는 마음이 아니라 내내 혼자만의 비밀로 키워갔던 것 같다. 기독교 집안이지만 하나님을 믿지도 않았다. 결국 일본인이 되어 엄마의 고향 부산 영도 까지 다녀왔는데...


문학 전공의 감성적인 노아. 일부러 문학적 인물로 그려 넣은 거 같다.

와세다에서의 첫사랑. 동급생으로부터 받은 강렬한 인상. 교수님이 실망할 정도로 노아는 그녀에게 깊은 인상을 받고 빠져들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오마주


선자와 다른 주인공들이 부유함을 묘사하기 위해 외국 브랜드 이름을 의도적으로 넣었다

현실적이라기보다는 ‘문학적’ 감수성으로 충만한 캐릭터들.

그에 대한 동경. 한수는 노아가 추천해주는 책들을 읽고 싶어했다.


여성을 성적대상화, 하는 표현들도 자주 눈에 띄었고 불편감을 주었다.

가슴이 봉긋하다  특정 신체 부분을 같은 시각에서 구체적으로 반복 묘사하고 있다.


   

이민진 작가의 집필 과정


30년 준비를 해서 쓴 작품이라고 한다.

포기하고 싶었는데 그 때마다 상을 받아 그 상금과 격려로 인해 집필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아마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느라 고생을 했으리라 추측한다.


제목이 파친코 인 것은 자이니치로서 결국은 파친코 라는 인생의 기회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인생은 운, ‘복불복’이라는 아이러니도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캐릭터 분석


책을 읽다보니 여성으로서 한수한테 반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본인의 능력으로 한 여성을 책임지려는 태도가 믿음직스럽다. 진정한 사랑의 모습이 아닐까. 끝까지 선자의 주변에서 도움을 주는 한수의 사랑이 감동적이다.


백이삭은 선자를 사랑했을까.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한, 구원을 위한 행위로서의 사랑이 아니었을까. (인생을 사는데 귀인을 만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귀인을 알아보려면 눈을 낮춰야 한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본문에 나온 문장과 표현들


선자가 한수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부분이 있다. 한수를 택하게 되면 나의 절반은 숨기고 살아야 하게 되는 거라고. 사람이 온전하게 자기 자신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겠느냐고.


선자는 또한 당장 누릴 수 있는 부의 겉모습보다 부를 축적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여성의 삶은 고생길, 이라는 구절이 반복된다. 그 당시 여성의 삶은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을 것.


윤곽, 이란 표현도 인상적이었다. 두려움이 나를 덮치게 만들면, 내 몸의 윤곽이 없어진다. 윤곽이 흐려진다. 그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삭이 사역을 하러 가서 만난 한국인이 이삭에게 하는 말이었다. 양복을 입어서 잘 모르시나본데, 라고 말하며 이삭의 순진한 사고에 도전한다. 그 날 이후 이삭은 각이 잡혀지는 양복을 입지 않는다.


정치인은 개 돼지 들이라고 한수가 말한다. 결국 한수는 부를 축적하고 조직의 장이 되어 일본인의 위에 서게 된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우리는 상관없다. 첫 문장.

기독교 색채가 많이 입혀진 작품이라고 볼 수 있지만 작품 속 노아가 하나님을 버린 것을 의미하는 작가의 선언일까?



기타 단상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자기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 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세대를 거치면서 점점 선택권을 갖게 된다는 메시지가 읽힌다. 이미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 외국인학교를 나와 미국 명문대 유학을 하고 유수의 미국 직장을 다니던 솔로몬은 본인의 선택으로 인해 파친코 사업에 합류한다. 노아는 죽음으로써 일본인이 되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비상한 두뇌를 가졌어도 역사가 던져준 굴레를 벗어나지 못 했던 것이다. 와세다에서 자퇴한 이유도도 벗어날 수 없는, 그 안에서는 도달하지 못 하는 일본인이라는 이상향 때문이 아니었을까.


모든 인물들이 굴레에 갇혀 있는 반면 에츠코의 딸 하나는 비현실적으로 다가오면서도 본질적인 물음을 던져주는 존재다 솔로몬에게 진심으로 대하는 장면들이 인상 깊다.


모자수는 일본어로 ‘모세’의 표기라고 한다. 모세와 노아, 솔로몬, 이렇게 3대가 전개되는 것이다. 모자수와 에츠코의 관계 역시 계산적이기보다는 순수함이 느껴지는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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