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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씨일기 Jan 30. 2024

외할머니와 엄마, 엄마와 나

매일 쓰는 짧은 글: 2401130




내 기억 속의 엄마와 외할머니의 관계는 그렇게 살갑지도 가깝지도 않았다. 일 년에 몇 번 있는 명절에나 얼굴을 뵙고, 종종 전화를 드리는 게 전부인 그런 평범한 관계.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래서 얼마 전,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화두로 올라 모두가 두런두런 할머니와의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새로운 얘기를 듣게 되었을 때는 조금 충격을 받았다. 엄마는 외할머니와 생각보다 매우 각별한 사이였다.






장녀였던 엄마는 밑으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두 남동생들과는 적당한 거리감을 지니며 살아왔다. 나이차도, 성별차도 그 적당한 어색함에 기여를 했겠지. 그래서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는 외할머니였다. 둘은 언제 어디서나 팔짱을 끼고 장을 보거나 옷을 사는 등 쇼핑을 즐겨했다고 했다. 곱디고왔던 외할머니와 딱 붙어 쌍둥이처럼 어딜 가나 한 몸같이 다녔다고. 오죽했으면 시장 아주머니도 우리 엄마를 보고 "너는 엄마랑만 그렇게 다니고 나중에 시집가면 엄마가 보고 싶어서 어째!"라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충격이었다. 그렇게 가까웠던 사이였다니, 뭔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엄마가 엄마가 아닌 딸의 모습이었을 때를 떠올리는 것도 뭔가 이미 지나가버린 엄마의 젊은 청춘의 한 자락을 몰래 펄럭여본 것 같아 기분이 이상했다. 그리고 그 한편에 그동안 엄마가 나에게서 느꼈을 결핍과 외로움에 가슴이 시큰시큰 아파왔다.   


나는 아빠딸, 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외모부터 많은 것들이 아빠를 닮았다. 외모를 가꾸는 것을 좋아하는 엄마와 외할머니와는 정 반대로 옷은 손에 잡히는 대로 입고, 오빠가 입다 질려서 버리려는 옷을 적당히 골라 새 옷이 생겼다고 즐거워할 정도로 무신경하다. 같이 손톱손질을 받으러 가거나하는 것등은 고사하고, 필요한 옷을 사러 구경을 가는 것도 쇼핑 자체가 스트레스인 나는 빨리빨리, 대충대충을 외치며 예민해진 감정을 숨길 마음도 없이 표출하며 돌아다녔다. 아마 본인이 그러했듯, 딸이랑은 으레 같이 꼭 붙어 팔짱을 끼고 같이 쇼핑하고 노는 것이 당연했을 것이라 기대한 엄마의 예상을 무참히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처절히 짓밟아왔을 테지. 그동안 부모님과 많은 시간을 보내려 노력을 해왔지만 그 속의 숨겨진 엄마의 마음은 미처 보지 못해 왔던 것 같아 너무 슬프고 미안해졌다.






오늘은 새로 연 쇼핑몰이 있다고 해서 엄마와 아빠와 다 함께 구경을 갔다. 공구나 뭔가 알 수 없는 잡동사니를 보러 간 아빠를 팽개치고 엄마와 둘이 팔짱을 끼고 여기저기 아무 의미 없는 이쁜 쓰레기들을 파는 가게들을 돌면서 구경을 다녔다. 별 볼일 없는 물건들을 서로 이것 좀봐, 하면서 호들갑 떨며 보여주며 의미 없이 웃고 떠들며 돌아다녔다. 즐겁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딸이었을 시절의 엄마를 떠올리며 조금은 과장해서 엄마를 기쁘게 해 주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조금 늦었지만, 엄마가 만족한 수준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종종 이렇게 팔 곁을 내어주며 이렇게 의미 없이 웃으며 돌아다니는 시간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늦었지만 너무 늦지 않게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되뇌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에그타르트를 파는 가게를 향해 걸어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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