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호모사피엔스만이 인류의 유일 종인가?
나의 모태 신앙은 천주교이다.
유아 세례를 받았고, 세례명을 갖고 있으며, 국민학교 시절에는 성당에서 복사를 했다. 청소년기를 지나며 주일 성당을 보다는 친구와 어울리는 것이 더 소중했고, 20대가 넘어서는 동양 철학의 관심으로 불교와 유교에 관심을 가지면서 냉담이 길어졌다.
내가 천주교 신자였음을 가끔 몸으로 느끼는 순간은 유럽에서 우연히 성당의 미사 시간에 방문했을 때였다. 언어는 달랐지만, 몸으로 느껴지는 익숙함에 자연스럽게 미사에 동참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을 때였다.
나에게 종교는 내 삶의 경험이고, 내가 세상의 이치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한 모티브였다.
보이지 않는 종교를 믿게 하는 종교인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사람들은 달을 말하지 않고 손가락에 대해 말한다고 한다. 나에게 종교는 종교의 본질을 말하지 않고, 종교인의 말이 곧 신의 말로 호도되는 현실이 싫었다. 그래서 종교가 때론 사회의 부분 악이 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보이지 않는 종교를 믿는 힘은 호모사피엔스의 특징이다.
보이지 않는 종교를 믿게 하는 종교인의 말을 믿는 것 또한 호모사피엔스의 특징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보이지 않는 존재나 개념을 상상하고 그것을 공동체적으로 믿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능력은 때로는 이성적 판단을 넘어 강한 신념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 부분은 호모사피엔스의 가장 큰 약정일 수도 있다.
호모사피엔스에게 종교란 무엇일까?
사랑, 정의, 국가, 법, 그리고 종교와 같은 것들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리적 실체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모 사피엔스 사회에서 이 개념들은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진다.
보이지 않는 개념을 상상하고, 그것을 서로 공유하며, 그것을 기반으로 사회를 조직하는 것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이 가진 능력이다. 종교는 이러한 호모 사피엔스의 능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종교의 기원을 보면 호모 사피엔스가 자연과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호모 사피엔스의 초기 조상들에게 자연은 이해하기 어려운 거대한 힘이었다. 번개가 치고 비가 내리며, 태풍이 불고, 갑작스러운 질병이 찾아오고, 사람은 어느 순간 죽음을 맞이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현상들을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수십만 년 전의 호모 사피엔스에게 그것들은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사건이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이러한 현상들 속에서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의 의지나 힘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자연 속에는 영혼이 존재하고, 산과 강, 바람과 번개에도 어떤 의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인류학에서 애니미즘(animism)이라고 불리는 종교의 초기 형태로 알려져 있다.
호모 사피엔스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준 사건은 죽음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언젠가 죽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몇 안 되는 생명체이다. 죽음을 인식하는 순간 호모 사피엔스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죽음 이후에도 무엇인가 존재하는가, 사라진 사람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호모 사피엔스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영혼, 사후 세계, 조상, 신과 같은 개념들은 이러한 상상력 속에서 등장했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믿었고, 그것을 위로하거나 기리기 위한 의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러한 의식들은 점차 체계화되었고, 그것이 종교의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
종교는 단순히 신을 믿는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종교는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하나의 의미 체계라고 볼 수 있다. 종교는 호모 사피엔스에게 왜 세상이 존재하는지, 왜 살아가는지, 그리고 죽음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설명하려는 시도였고, 종교를 통해 자연의 질서를 이해하려 했고, 자신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려 했다.
종교는 개인의 내면을 넘어 사회를 조직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집단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집단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규칙과 가치가 필요하다. 종교는 이러한 규칙과 가치를 제공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공동체를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를 종교는 설명했다. 많은 종교들이 도덕규범과 윤리 규칙을 포함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종교는 호모 사피엔스 사회의 도덕과 규범을 형성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왜 호모 사피엔스만이 종교를 만들 수 있었을까.
호모 사피엔스는 단순히 눈앞에 있는 사물을 인식하는 수준을 넘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고 그것을 개념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언어를 통해 이러한 상상 속의 존재들을 표현하고 공유하며, 신, 영혼, 천국과 같은 개념을 현실 속에서 작동하는 개념으로 만들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종교를 통해 집단을 조직하고 공동체를 강화할 수 있었다.
같은 신을 믿고 같은 의식을 수행하는 호모 사피엔스들은 서로를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식하게 된다. 종교는 사람들 사이에 신뢰와 결속을 만들어냈고, 이러한 결속은 더 큰 규모의 사회를 형성하는 기반이 되었다. 역사에서 거대한 문명들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공통된 신념 체계 덕분이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종교가 항상 긍정적인 역할만을 한 것은 아니다. 강력한 신념 체계는 때로는 갈등과 충돌을 낳기도 했다. 역사 속에서 종교는 전쟁과 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는 호모 사피엔스 사회의 형성과 발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 중요한 요소였다.
종교는 단순히 신을 믿는 행위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호모 사피엔스가 어떤 존재인지 보여주는 하나의 세계관이며, 호모 사피엔스가 가진 상상력과 개념적 사고가 만들어낸 문화적 산물이다. 종교를 이해하는 것은 곧 호모 사피엔스를 이해하는 것과도 연결되어 있다.
정부 과제 연구로 유럽, 미국, 아시아의 여러 박물관 미술관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어렴풋하게 알고 있던 동서양의 역사와 문화유산들이 르네상스 이전에는 모두 종교사와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서양의 가톨릭, 동양의 불교가 역사를 지배했던 세상이었다. 불완전한 세상에 종교는 호모사피엔스에게 안락과 안식 그리고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상상 속의 세상을 제공하고, 권력자들에게는 그들의 권력을 누릴 수 있는 정당성을 부여하는 도구가 되었던 것 같다.
호모사피엔스에게 종교는 상상력의 개념화, 개념적 신념 체계를 통해
주어진 환경 극복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했으며
그러한 것들이 역사와 문화로 축적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앞으로 호모사피엔스의 가장 큰 도전자로 AI라는 환경을 맞이하고 있다.
AI 시대에 호모사피엔스에게 종교는 어떠한 의미와 가치를 가질 수 있을까?
아마도 사후 세계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내려지지 않는 이상,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호모사피엔스의 특징을 갖고 있는 이상 종교는 앞으로도 호모 사피엔스에게 안식처이자 위로의 공간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상상하고 그 속에서 의미와 희망을 찾으려는 인간의 성향이 사라지지 않는 한, 종교는 여전히 호모 사피엔스에게 정신적 안민낙도의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