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능력
연재하고 있는 브런치에서 나는 인간(호모사피엔스)이 인류의 유일 종으로 남은 이유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능력"이라고 규정하고 글을 기술하였다. 어쩌면 이미 연구되고, 증명되고, 규정된 내용일 수도 있었다.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시작된 내 질문의 꼬리들은 내가 궁금해하고, 상상하는 것을 탐구하는 과정 여정으로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듯하다. 다시 한번 더 내가 상상하고, 궁금한 것을 세상의 지식으로 나만의 노트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었다.
지금까지 작성한 글들은 죽음, 결혼, 가족, 국가, 종교, 신 등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삶의 틀을 제공하며, 우리가 살아가면서 벗어날 수 없는 개념, 규정, 법제도, 체제 등이다. 우리 호모사피엔스는 존재하는 세상에서 비 존재하는 세상의 틀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호모사피엔스의 생존방식은 결국 실존의 세상에 비 실존의 것들을 투영하여 실존을 변화시키면서 비 실존을 실존 세상의 틀로 만들어 버린 듯하다.
호모사피엔스의 비 실존의 세계관 구축은 결국은 그들이 호모 종의 유일 종으로 남게 한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능력'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왜? 호모사피엔스 만이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능력을 가진 것일까? 아니면 다른 호모 속도 유사한 능력이 있었지만 어떠한 이유로 '호모사피엔스'만이 호모 종의 유일 종이 되었을까? 이러한 궁금증이 나를 사로잡았다.
이 글을 작성하는 동안 내 머릿속에 스치는 이미지와 단어들이 있다.
영화 메트릭스, 가상 세계, 증강 현실, 혼합 현실 실존하는 세상에 비 실존의 것들로 호모사피엔스는 그들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그들의 세계관을 다시 실존하는 것처럼 꾸미는 과정을 재현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능력은 호모사피엔스만의 것일까?
자료들을 보면 다른 호모 속, 심지어 다른 영장류도 어느 정도의 상상과 예측 능력을 가졌다고 한다. 도구를 사용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행동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었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능력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그 능력의 ‘확장 방식’에 있다.
호모사피엔스는 상상을 개인 혼자서 끝내지 않았다. 그들은 그것을 말로 표현했고, 타인과 공유했고, 반복했고, 집단에서 공유하면서 함께 믿기 시작했다. 상상이 개인의 머릿속에 머무를 때 그것은 단지 상상이다. 그러나 그것이 집단 속에서 공유되는 순간, 그것은 신념이 된다. 나는 이 지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상상이 신념이 되는 순간은 집단화되는 순간이다.
그 집단이 그 상상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순간, 그것은 현실을 규정하는 틀이 된다. 종교도, 국가도, 법도, 돈도 모두 이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왜 다른 호모 속들은 이 단계까지 가지 못했을까. 우리는 흔히 뇌 용량의 차이를 이야기한다. 인간의 뇌는 커졌고, 그래서 더 똑똑해졌다고 배웠다. 그러나 연구를 보면 뇌의 크기와 지능은 단순히 비례하지 않는다. 인간과 유인원의 뇌는 구조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중요한 것은 크기가 아니라 ‘연결 방식’이다.
호모사피엔스의 뇌는 단순히 커진 것이 아니라 재조직화되었다.
특히 서로 다른 기능을 연결하는 영역이 크게 확장되었다. 감각, 기억, 언어, 사고가 더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사고가 가능해졌다. 나는 상상 능력 자체가 인간을 특별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상상을 공유할 수 있는 구조가 인간을 특별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구조는 뇌의 기능, 언어의 발달, 그리고 사회적 상호작용이 동시에 발전하면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결국 호모사피엔스는 더 강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더 많이, 더 넓게, 더 깊게 같은 것을 믿을 수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현실 속에 살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가 함께 만들어낸 보이지 않는 세계 속에 살고 있는가. 어쩌면 호모사피엔스는 현실에 적응한 종이 아니라 현실을 다시 정의해 버린 종일지도 모른다.
상상을 현실로... 꿈은 이루어진다. 이것이 호모사피엔스의 능력이었다.
상상을 현실화시키는 과정에서 호모사피엔스의 뇌는 모든 기능을 연결시키고, 그것을 재 조직화 시킴으로써 상상의 능력이 극대화되었고, 그것이 호모사피엔스를 인류 유일 종으로 만든 원동력이라고 본다.
우리는 가끔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성공하는 꿈, 행복한 꿈, 세계를 여행하는 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꿈,
내가 꿈꾸는 것들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힘든 현실을 위로받기 위해 꿈을 꾸는 사람도 있다. 우리가 꿈을 꾸는 것은 그것이 현실이 되기를 바라는 소망이자 의지이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은 호모사피엔스가 사회적 동물로서 꿈을 현실화시키는 시스템의 요소이다. 꿈은 꾸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 가능한 수준으로 다듬는 것은 우리가 실존의 세계와 비실존의 세계를 오가며 만들어 가는 과정일 뿐이다.
상상하고, 꿈을 꾸고 그것을 현실화시키는 것은 호모사피엔스의 특권이고, 우리의 능력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이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호모사피엔스의 능력과 잠재력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능력은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는 생존법이었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