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사주고 싶은 예쁜 후배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돌봄이 필요해
현재 회사 창립 멤버로 시작해서 이제는 직원이 꽤 많다. 그러니까 몇몇을 제외하고는 모두 후배다. 육아휴직 전에는 '인력 양성' '역량 강화' '참된 소통'에 무작정 열과 성을 다했다. 이제는 중도의 자세가 필요하다. 가정에도 에너지를 쏟아부을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후배 관리에 대한 마인드셋을 정비할 시점이다.
개인적으로 후배를 이끄는 힘은 채찍보다 당근, 말로 하는 설득보다 솔선수범, 권위보다 유대라고 생각한다. 곧 잘 통하던 탕평책인데 요새는 종종 힘을 잃더라. 회사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정치가 생긴다. 또 성격도 다 다르다. 딴생각하는 후배까지 휘어잡기엔 내 심성이 온건하긴 하다. 그렇다고 직급 간 척화비를 세우는 일은 없다. 내가 뭐라고, 회사가 뭐라고.
아버지는 약 40년을 육군에 몸담은 퇴역군인인데,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존경스러운 리더십을 갖췄다. 십수 년 전 병사들이 오랜 스승을 찾듯 왕래한다. 옆에서 관찰하면 대부분 아빠를 어려워 하지만 좋아하는 기색이다. 심지어 종종 나를 통해 연락이 오기도 한다. 무튼 그런 분인데, 얼마 전 아빠한테 '후배 다루는 법'을 물었다. 온건한 방식 때문에 나를 얕잡아보진 않을지 따위의 걱정도 늘어놨다. 아빠는 '사람을 부리고 휘어잡기엔 네 나이가 어리다'고 했다. 장으로 군림하기엔 아직 설득력이 부족하고, 팀으로 지내며 감화시키는 게 맞다고 하셨다. 대화 말미에 아빠가 연륜이 부족할 땐 능력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뼈 있는 조언을 덧붙였다. 내가 틀린 게 아니구나 가벼워진 마음에 더 무거운 책임감이 내려앉았다.
적확하게 업무 지시하는 것.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고 이성적으로 피드백하는 것. 부담스럽지 않게 먼저 다가가는 것. 적당하게 얘기하고 스리슬쩍 빠져주는 것. 본보기 삼을 수 있는 성과를 계속 내는 것. 팀을 아우르는 장으로서 연습 중인 것들이다. 언행 하나하나 신경 쓰다 보니 피곤하고 조금 외롭다. 아무도 공감 못하는데 혼자 오버하나 싶던 적도 있다. 몰라주면 뭐, 일하려면 해야지.
퇴사한 후배 생일 알림이 카톡 상단에 떴다. 같이 일할 때 각별하게 예뻐하거나 챙겼던 건 아니고 적당하게 불편한 사이였다. 무튼 나도 걔도 부담스럽지 않을 무난한 가격대의 선물을 골라 보냈다. 짤막한 축하 메시지도 함께 보냈다. 늦은 밤이라 티키타카는 귀찮아서 '축하하고 내일도 수고해' 정도로 안부를 전하는 동시에 대화를 끝맺었다. 답장이 연속으로 바로 오더라. 상단바를 내려 미리 보기 메시지로 확인했다. '오래오래 보고 싶어요 언니.' 맨 아래 멘트를 보고 바로 카톡창을 켜서 '그래, 조만간 보자'고 했다.
진짜, 진짜로 조만간 밥 사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