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청년을지로위원회 홍보전략위원회 위원장 김연수
사실 죽었다 살아난 사람은 그 가오가 있잖아요.
어차피 죽을 뻔한 인생이었는데 해보자.
무려 ‘쓰리잡’이다. 2년차 간호사 김연수 씨는 얼마 안 되는 오프(휴일)를 정당 활동에 쓴다. 그 와중에 시간을 쪼개서 방송통신대학에서 법학 공부까지 한다. 보통 에너지로는 소화하기 힘든 스케줄이다. 사실, 연수 씨는 작년 1월 대학 병원에 입사하고 신규 간호사로 일하면서 “더 이상 일하면 정신적으로 위험해지겠다”고 느끼는 순간까지 몰렸던 적이 있다. 그리고 올해, 민주당 청년을지로 분과에서 ‘간호사 처우 개선’에 관련한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사실 죽었다 살아난 사람은 그 가오가 있잖아요. 어차피 죽을 뻔한 인생이었는데 해보자.”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에서 덤덤한 결기가 묻어났다.
신규 간호사 들어가고 1년은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1년 만에 들어간 첫 직장이었다. 3교대, 5시간에 달하는 오버타임, 높은 업무 강도. 20년씩 일한 경력자들도 버거워 하는데, 이제 막 첫 발을 뗀 사회초년생이 감당하기엔 더욱이 가혹한 조건이다. 하지만 병원이라는 특수성과 폐쇄적 문화가 신규 간호사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의문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초반에는 오버타임이 굉장히 심해요. 이브닝이면 오후 11시 퇴근인데 새벽 3, 4시에 간다거나 나이트면 오전 7시 퇴근해야 하는데 낮 11시, 12시까지 못 갔어요. 집에 못 가니까 병원 근처 찜질방에서 자고 다시 출근하고….
간호사들은 정규 근무 시간 전후로도 ‘추가적인 업무’를 수행한다. ‘인계’라고 부르는 환자 파악이 그것이다. 근무 전, 물품 개수까지 일일이 챙겨야한다. 그렇게 세놓은 물품이 근무 중 분실 되면 본인 잘못이 아니라 해도 책임 져야 한다. “원래 이런 건 신규가 하는거야”는 말 아래 떨어지는 스테이션 정리, 식사 가져오기, 자잘한 잡일 등도 전부 신규의 몫이다. 일명 ‘막내 잡(job)’이다.
간호사 처우 문제와 관련해 작년 가장 많이 보도된 것은 ‘태움’이다. 1년 차 시절, 연수 씨에게 상처로 남았던 사건이 있다.
담당 환자가 두 번째로 돌아가셨을 때, 사후 처치를 능숙하게 못 했어요. 그랬더니 선배가 ‘너 한 번 이 상황 직면했잖아. 왜 아무것도 못 해?’ 20분 동안 태우더라구요. 그러고는 안 도와줬어요. 사후 뒷정리를 혼자 새벽에 했어요. 일부러 너 혼자 해봐라 이런 거죠. 그 때 좀 정신적인 트라우마가 컸어요.
이런 경험을 했지만 연수 씨는 ‘태움’이 자칫 개개인의 인성 문제로만 다뤄지는 것은 경계한다. “악하거나 성격 나쁜 사람만 간호사가 되진 않잖아요. 죽을 것 같은 환경이 있고, 인계를 주는 직업이다 보니, 앞 번에서 신규가 일을 빠트리면 본인이 다 뒤집어쓰고 실제로 치명적으로 영향을 받아요. 그런 구조를 봐야 해요.”
30일만에 수백 가지 프로토콜 익혀라?
사실, ‘지옥 같은 1년’의 가장 큰 주범은 입사한 지 한 두달만에 충분한 훈련 없이 맞닥뜨리게 되는 환자 대응이다. 신규 간호사 훈련 기간이 턱 없이 짧고 교육 내용이 미흡하다는 점은 거듭 지적되었다.
연수 씨 역시 3개월 트레이닝을 약속 받았지만 1명이 응급 사직을 하면서 2개월 만에 독립했다. 말이 2개월이지 근무일수로 따지면 30일 약간 넘는 시간이었다. 더군다나 ‘교육’ 답게 하나씩 상세히 배울 수 있는 여건도 아니다. 사실상 정신 없이 일 하면서 알아서 숙지해야 한다.
간호사는 의사와 마찬가지로 전문적인 의료인이다. 실전에서 배우고 외워야 하는 양이 방대하다. 개별 검사마다 필요한 주사의 개수, 투약 용량, 보호자에게 받아야하는 동의서 종류 등 복잡한 과정이 따른다.
이런 프로토콜 몇 백가지를 다 습득해야 일을 원활하게 할 수 있어요. 그걸 몇 십일 교육 받은 신규가 하는 거예요. 사실 (병의) 중증도마다 교육 기간이 다 달라야 해요.”
‘신규 간호사 이직 영향 요인’ 논문에 따르면 신규 간호사의 업무 적응에 필요한 적절한 적응 기간은 8~12개월이다. 행동하는 간호사회 최원영 간호사는 한 토론회에서 “캐나다는 간호사에게 1년의 교육 기간을 거친 뒤 발령을 내린다. 그 전에는 아예 중환자실 지원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말한 적 있다. 환자 입장에서도 더 안전한 치료를 받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도지만, 한국에서는 인력 부족을 이유로 외면한다.
(예전에 병동에서) 환자 14명을 보는데 그 중엔 완전 중환자도 있어요. 감당할 수 있는 업무가 아니에요. 근본적인 인력 부족이 있는 상황에서 신규 간호사가 1년 내 10명이 사직했어요. 그런데 인력 보충이 바로 안 돼요. 와도 쌩 신규만 넣어줘요. 저도 그렇게 들어갔어요.”
한국이 간호사 한 명 당 담당하는 인구 비율은 OECD 국가 중 하위권 수준이다. 작년 3월, 보건복지부는 간호 인력을 확대를 위한 대책을 내놓았다. △ 간호대 입학 정원 증원으로 신규 인력 배출 확대 △ 근무 여건 개선 등을 통한 장기 근속 유도 △ 유휴 인력 (경력 있으나 활동 안 하는 간호사) 재취업 확대 등이다.
그러나 현직 간호사들로부터 문제의 핵심을 외면하는 안일한 대책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연수 씨는 “신규가 계속 그만두니까 많이 배출해서 (인력 공급) 값을 싸게 하겠다”는 취지로 보인다며 간호대 정원 확대 등은 문제 해결과 동 떨어진 방안이라고 못 박았다. 신규 간호사들이 10명 중 3명 꼴로 1년 내 그만두는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그 원인이 되는 열악한 근무 조건 개선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저희가 ‘청년을 지키는 청년의 목소리’라는 문구를 만든 게
정말 나랑 다른 청년들을 지켜야 한다는 절실한 목소리거든요.”
어쩌면 병원은 한국 사회가 청년 노동을 대하는 수준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공간일 수 있다. 국제 보건복지 정책 동향(2014)에 실린 표에 따르면, 한국 간호사들의 30세 미만 비율은 53.7%로 20대 비중이 현저히 높다. 대학부터 시작해 청년 시기 대부분을 병원에 쏟지만, 업무 소진도 62.9%의 비율이 보여주듯 급격하게 소모된다. 그 결과는 간호사의 평균 근무연수 5.4년으로 이어졌다.
의료계 인력 부족 문제는 오래된 과제로 한 번도 해결된 적 없다. 그래도 병원은 굴러갔다. 어쨌든 신규는 계속 유입된다. 병원은 이들을 5년짜리 건전지 삼아 1인 노동력의 최대치를 100%에서 200, 300%로 고무줄처럼 늘려가며 모자란 동력을 메웠다.
(최선을 다해서 뛰어다니고 효율적으로 일한다고 했을 때) 한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양이 100이라고 해요. 그런데 내 근무 듀티 안에서 200, 300되는 일이 발생을 했다. 그럼 그건 다 마치고 가야 하거든요. 특히 신규는 더 그래요. 다 하고 가
병원이 현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거침없이 고무줄을 늘여가는 동안 끊어지는 목숨이 생겨났다. 아산병원 고 박선욱 간호사의 이름은 위험 수위까지 내몰린 간호사들의 노동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다. ‘간호사 처우 실태’가 대중적으로 공론화된 지 1년. 그동안 무엇이 변했을까.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언제까지 가이드라인만?
제 직업은 아가씨가 아닙니다. 보건복지부와 대한간호협회가 ‘간호사 인식개선을 위한 대국민 캠페인’에서 전달한 핵심 내용이다. “간호사들은 지금 현장에서 죽어 나가고 있는데, 그런 포스터를 자랑스럽게 만들어놓고 처우 개선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는 게…” 연수 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결론적으로 지난 1년간 병원은 달라진 게 없다. 기사화되지 않은 사례까지 포함하면 올해만 벌써 5명 이상의 간호사가 세상을 떠났다.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보건복지부의 대책은 ‘신규 간호사 교육 가이드라인 제작’이나 ‘병원 내 인권 기구 도입’ 선에 멈추고 있다. 당장 시급하게 도입되어야 할 대책으로 어떤 것들이 있을까. 연수 씨는 ‘간호사 당 환자 수(간호사의 배치 기준)’, ‘신규 간호사 교육 기간’을 법으로 확실히 명시해서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간호등급가산제’ 운영의 문제점을 언급했다. 입원환자당 간호사 수를 기준으로 등급별로 병원에 수가를 차등 지원하는 제도다. 1등급일수록 더 많은 수가가 나온다. 그러나 가장 낮은 등급(7등급)이거나 미신고 기관이라 해도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 기준을 안 지켜도 페널티는 없다. 사실상 간호사 배치 기준 강화를 ‘권유’만 할 뿐 강제력을 가진 제도가 없다는 의미다. 연수 씨는 “미국 같은 경우, 병원이 인력이 안 되면 환자를 못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누가 사직을 해도 (간호 인력이 부족해도 전과 같이) 환자는 받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간호사들이 촉구하는 대책의 핵심은 ‘현실적인 수준의 인력 보충’이다.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국가가 이제는 수박 겉핥기식 대책 남발 대신, 실질적인 재정 확보 및 제도를 마련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전히 말할 곳도, 도움받을 곳도 없다
저는 제가 이런 일을 당하면 당당히 맞설 줄 알았어요. 근데 제가 부서 이동을 거부해서 노동부에 구제 신청하고 소송 걸고 한다고 해도 얻는 게 부서 이동 안 되는 것밖에 없는 거예요.
사실, 요즘 연수 씨는 병원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는 내과 병동에서 외과로 이동한 8개월 만에 상부로부터 다시 부서 이동을 권유받았다. 왜일까. 이유는 알 수 없다. 권유에“안 하고 싶다”고 강하게 말하자 “혹시 다른 활동하는 거 있니?” 의심스러운 눈초리가 돌아왔다고 했다. 그 일 이후로 연수 씨는 병원에서 직간접적인 압박을 받고 있다. 투약 카트의 서랍이 꽉 안 닫혀있다, 절차상 기록이 하나 빠졌다 등 사소한 일로도 언어폭력에 가까운 말들이 날아온다.
제가 부서를 옮기면 막내로 다시 시작해요. 그런 게 간호사들에게 치명적인 점을 이용해서 압력의 수단으로 쓰는 게 아닌가 싶어요.”
작년 박선욱 간호사 사망 이후 대한간호협회에서 ‘널스톡’이라는 이름의 고충 상담 콜센터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가 당 차원에서 보건복지부 면담을 가기 전 확인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널스톡’에 상담 시 돌아온 답변은 “죄송하지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였다. 더욱이 면허 번호를 물어서 압박감이 들었다는 반응도 있다. 복지부가 제시한 ‘병원 내 인권 기구’ 설립에도 마찬가지 문제가 있다. 문제를 제기하는 당사자가 찍힐 위험이 있어 병원 내 상담기구를 믿고 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전히 지금 당장 막다른 골목에 몰린 간호사들이 구제 신청을 할 길은 어디에도 없다.
간호사들이 이런 문제가 있을 때 도움을 청할 데가 없고, 사직해야 해야 하는데. 사직도 어려워요. 집에 말하면 ‘원래 다 어려워’, ‘이런 것도 못 하면 다른 일 못 해’ 라고들 해요. 결국 못 그만두다가 돌아가시는 분들이 생기는 거죠.”
청년들이 서로를 지켜야 한다
그나마 연수 씨가 병원에서 겪는 고충을 토로할 수 있는 통로는 함께 활동하는 민주당 을지로 분과 당원들이다. 청년을지로 분과는 그 이름처럼 사회에서 을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 편에서 목소리를 내는 일에 주력하는 곳으로 올해 초 신설됐다. 연수 씨는 현직 간호사이자 정당에서 활동하는 청년 정치인이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정당 활동은 병원 안에서 그의 생존에 위협적인 요소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청년을 위한 활동의 필요성을 실감하는 강한 동기가 된다.
전 임상에 더 있고 싶고 경력을 쌓고 싶어요. 솔직히 (요즘 상황이) 좀 생존의 위협이에요. 청년 을지로 활동도 그런 것 같아요. 저희가 ‘청년을 지키는 청년의 목소리’라는 문구를 만든 게 정말 나랑 다른 청년들을 지켜야 한다는 절실한 목소리거든요.”
대다수 청년은 노동 시장의 을이다. 일반 회사에서 청년 노동자들이 권리를 말한다면? 연수 씨는 “그럼 끝”일 거라며 웃었다. 간호사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각 노동 영역에서 이제 막 자리를 잡아가는 청년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문제를 제기하고 바꿔나가기는 쉽지 않다. 을지로 분과 소속 당원들은 취준생이거나 다른 영역의 청년 노동자들이다. 각자 자기 영역에서 겪는 생존의 어려움이 있다. 이를 기반으로 서로의 처지에 힘을 보탠다.
저는 사회단체든, 정당이든, 서로 연대하고 다른 사람의 슬픔에 조응하는 그런 조직이 좋았던 것 같아요. 그런 집단이 내 준거 집단이라고 해야 하나. 그 안에 있는 게 좋아요.”
‘죽을 뻔한 인생에서 살아났다’고 말할 만큼 막막했던 시간을 지나 연수 씨는 자신의 업을 걸고 어렵사리 용기를 내고 있다. 사람을 죽고 싶을 만큼 갈아내서 이익을 만들고도 ‘세상이 원래 그런 거야’ 말하는 사회의 관성은 힘이 세다. 간호사들이 힘겹게 전해낸 현실이 또다시 묻히지 않도록 더 끈질긴 관심과 응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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