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n잡러를 맞이하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 | 빌라선샤인 홍진아 대표
<미디어IN싸를 찾아서>는 미디어오리가 미디어업계 인싸라고 생각하고, 더욱 인싸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다양하고 멋진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코너입니다.
(이 글은 1편과 이어집니다) (1편은 아래의 링크 꾹)
나리: 여러분이 질문을 생각할 시간에 저와 진아 님의 인연에 대해 설명해 드리려 해요. 저 예전에 메디아티 디퍼(메디아티가 인큐베이팅 했던 2030세대를 겨냥한 뉴스 미디어 스타트업) 에서 일을 했잖아요. 그때 메디아티 제 다른 동료가 진아 님을 보고 '어? 나리님이랑 비슷한 분 아니예요?'라고 물으셨어요. 저는 당시 직업이 7개여서 브런치에도 '직업이 n개인 사람'이라는 글을 썼거든요. 지금은 정규직들의 회사이긴 하지만 이 회사를 처음 창업할 때도 n잡러들의 회사를 만들려고 했었고요.
진아: 맞아요. 제가 n잡러로서 소문이 나게 된 계기가 나리님이 말씀하신 '디퍼'라는 매체에서 '덕업일치'라는 인터뷰 시리즈에 제 이야기를 실어주셨던 거예요. 그때 인터뷰 기사가 잘 나와서 다른 곳에 저를 소개할 일이 있으면 그 기사를 보냈어요.
나리: 저는 이후에 진아 님이 어떻게 하시는지 멀리서 지켜보면서, 좋은 영향력을 받았어요. 최근에 빌라선샤인 서비스가 종료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미디어오리를 창업한 배경과 진아 님이 걸어오신 길이 핏이 잘 맞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용기를 내서 진아 님께 연락을 드렸습니다.
진아 님이 궁금한 게 생길 틈이 없을 정도로 잘 얘기해주신 것 같은데 개인 진로를 물어보셔도 좋을 것 같고. (웃음)
주연: 저... (슬그머니 손을 든다). 40개의 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회사와 조율했다고 했는데 n잡을 할 때 실제로 회사에서 어떤 부분을 걱정했고, 실제로 해보니 어떤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으셨는지 궁금해요.
진아: 한 회사에 이틀, 한 회사에 삼일을 출근하는 조건으로 정리했어요. 이틀이면 열 여섯시간이에요. 열 여섯시간을 출근하면 시간이 빠듯해요. 그래서 일의 루틴을 만드는 게 중요했어요. 이틀 일하는 회사에서 저는 월요일과 목요일에 일을 했어요. 제가 풀타임 매니저처럼 모든 일을 할 수 없으니 월요일에 출근해서 그 주에 발행하거나 준비해야 할 콘텐츠들을 정하고, 동료들에게 각각의 과제를 줬어요. 그리고 목요일에 다시 왔을 때 그걸 모아서 발행하거나 다음 업무를 진행했어요. 한동안 저희 팀의 유행어가 “내일 홍진아 오는 날인데, 너 그거(글쓰기 과제) 다 했어?”였던 적도 있어요.
또, 저는 출근하지 않는 날도 스탠드업 했거든요. 스탠드업은 9시부터 9시 반까지 하루의 업무와 서로의 컨디션을 체크하는 일이에요. 아침에 A회사에 출근을 하면서 B회사에도 슬랙에서 스탠드업을 했어요. ‘저는 오늘 다른 회사에 출근합니다. 어제까지 제가 했던 일은 이런 거고, 앞으로 이런 걸 처리할 거고, 오늘 나한테 이런 연락이 올 수도 있는데 내일 내가 이렇게 답한다고 해주세요’라고 저의 업무를 정리하고 이해를 맞추는 작업이었어요. 처음엔 제가 없을 동안 무슨 일이 생길 수 있다는 불안이 생겼는데 이렇게 하니까 불안도 낮아지더라고요.
일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은 일이 머리에서 회사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이전에 한 직장에서 일할 때는 퇴근을 하면서 머릿 속의 일 스위치를 끌 수 있는데, 두 개의 조직에서 일하니까 이게 안되는 거예요. 자기 전까지 회사 생각이 났어요. A회사에 출근해서는 B회사가 걱정되고 B회사에 출근해서는 A회사가 걱정되는 일들이 있더라고요.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하고 고민했죠. 처음에는 저의 n잡 실험은 망했다고 생각했어요. 4월쯤에 그만둬야겠다고 생각도 했는데 제가 그런 것들을 대표님과 면담을 하면서 제가 없을 때 동료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대표님이 "진아 님이 생각하는 것만큼 우리는 진아 님을 많이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일동 웃음)
진아: 저는 그게 그 해의 '아하모멘트’였고, 그 이후에 일하는 데에도 되게 많은 도움을 줬어요. ‘동료들과 자기가 맡은 역할을 책임을 지고 하는 사람이라는 신뢰가 있고, 그 과정을 투명하게 공유하기만 한다면 괜찮다, 서로 약속대로 일하는 것이 일터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더 가볍게 일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됐던 거 같아요.
혜련: 저 (질문 있어요).
강연 잘 들었고요. 프레젠테이션도 너무 예쁘게 잘 준비를 해오셔서 수고 많으셨습니다. n잡러를 하면 회사 감수해야 할 리스크도 있지만, 근로자가 감수해야 할 리스크도 있는 것 같아요. 유연해지면서 그만큼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거 같은데 그런 것 대비해서 진아 님이 시스템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해오셨는지? 의료 보험, 산재 보험 이런 보험 체계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해오셨는지 궁금해요.
진아: 이거 되게 공유 많이 하고 싶었고. 앞으로도 이거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저는 앞으로 누구나 n잡러랑 일을 하게 되는 시대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n잡 고용 시장이 없잖아요. 이것 역시도 근로자가 감수해야 하는 리스크라고 생각해요. 시장이 없다는 것은 서로 합의한 가격도 없고, 그에 맞는 체계도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니까요.
저의 경우, 4대 보험은 3일 일하는 회사가 책임을 져줬어요. 그런데 13개월, 1년 이상을 풀로 일을 하고 퇴직금을 3/5만 받았어요. 기타소득으로 계약을 한 회사랑은 퇴직금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은 채 계약을 했거든요. 워낙 특수한 상황이라 서로 생각을 하지 못한거죠. 퇴직금을 정산해야 할 때가 와서야 알게 되었는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죠. 저의 경우에는 '내가 실험한 것에 대한 기회비용이라고 생각하자'라고 마무리를 했어요.
대신 저 같은 분이 더 없었으면 해서 노무사분께 여쭤본 적이 있어요. 이럴 경우에는 계약서상에 인센티브에 대한 조항을 넣어서 계약을 하는 방법도 있어요. 인센티브를 퇴직금이랑 비슷하게 책정해서, 계약을 갱신하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혜련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n잡러가 현재) 감수해야 할 리스크가 있고, 저는 이것이 조금 더 체계화돼서 n잡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바운더리 안에서 일을 하면 좋겠어요.
아인: 저는 질문이 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진아 님이 생각하시는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은 무엇인지가 궁금하고 두 번째는, n잡을 한다는 건 내 시간을 쪼개어 쓰는 건데 그럴 때 어디에서 틈을 찾으시는지? 내 자유시간을 내가 어떻게 보장하는지가 궁금해요.
진아: 커뮤니케이션이 제일 어려운 것 같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하고요. 저는 일하는 사람들끼리의 커뮤니케이션은 과할수록 좋다고 생각해요. 스몰 톡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도 물론 있지만, 내가 어디까지 일을 하고 있고 그 일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되었는지 공유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이건 재택근무를 했던 회사를 다니면서 많이 배운건데, 재택에서는 사소한 것까지 다 얘기해야 하더라고요. ‘내가 투머치토커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하지? 너무 많은 정보를 줘서 부담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건 불필요한 것 같아요. 부담이 된다고 하면 그 부담을 줄여나가는 게 좋지, 그 부담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미리) 얘기를 안 하는 건 연결된 상태로 일을 하는 데에 어려움을 준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다듬어지지 않아도 나랑 같이 일하는 사람들한테 던지는 거. 그게 가장 중요한데 잘 못 하죠. 저 역시도 ‘짠’하고 보여주고 싶고, 어느 정도 내가 확신을 가진 다음에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커서. 근데 그렇게 되면 저의 부재 시에 일이 돌아가지 않는 현상이 생기더라고요. 프로페셔널이라는 건, 내가 없는 자리가 생겨도 그 일이 잘 돌아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거라고 생각이 들거든요. 사소한 정보로 느껴져도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는 되게 중요한 정보가 될 수 있잖아요.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드리면, 저는 저의 능력을 좀 과신했던 면이 있어요. 제가 짧은 시간에 되게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인 줄 알았던 거예요. 근데 n잡할 때 3, 4월에 과로사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이래서는 안 된다, 라고 생각을 하면서 제가 어느 시간에 뭘 하는지를 적어봤거든요. 근데 늘 저녁 먹고 난 후에 해야 하는 일이 4~5개가 되는 거죠. 특히 일은 다른 사람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나를 갈아 넣어서라도 하는데, 나를 지켜야 하는 일들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거예요. 운동이랑 집을 가꾸는 일, 살림을 하는 일들은 계속 뒤로 밀렸어요.
그래서 일주일을 계획하는 시스템을 마련했어요. 일단 하루를 세 덩이로 나눠요. 오전, 오후, 저녁/밤. 그렇게 하면 일주일에 21덩이가 생기는 거잖아요. 그 21덩이를 일주일이 시작할 때 계획을 세우는 거죠. 저는 언제나 일요일 저녁에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를 회고하고 일주일 계획을 세우고 일을 좀 하는 시간으로 떼어놨는데, 그 시간을 저랑 약속하고 나서는 지키려고 노력했어요.
사이드 프로젝트를 주로 일요일 오후에 했는데, (동료들이) '저녁 먹고 가요'하면 저는 약속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 한다고 얘기를 하곤 했어요. 그럼 동료들이 '누구랑 약속있냐'고 물어봐요. 그럼 '나와의 약속이다'라고 대답했죠. 다들 처음엔 황당해 했지만, 제 상황을 이해하고 웃으며 보내줬어요. 이렇게 해야 나를 위한 시간을 낼 수 있더라고요.
근데 이 21개의 조각의 원칙은 ‘1조각에서는 하나의 일밖에 할 수 없다. 그리고 만약에 더하게 되어도 한 조각에 두 가지 이상을 넣어선 안 된다.’ 이었어요. 제일 먼저 한 일은 나를 위한 약속들을 이 조각들 안에 넣는 것. 운동 시간, 집안일 하는 시간, 그리고 쉬는 시간을 넣었어요. 그리고 나머지에 약속들 또는 프로젝트로 채우는 거예요.
N잡을 하면서 ‘회사에 쓰는 시간 10덩이를 제외한 나머지 11덩이를 나를 위해 어떻게 쓰는가’가 되게 중요한 아젠다였고. 그렇게 1년 정도를 수첩에 적으면서 했더니, 그 방식으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굳이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아, 이번 주에는 언제 쉬고 언제 집안일을 해야겠구나'라는 것이 좀 감이 오고요. 물론, 이것도 계획해야만 쉴 수 있다는 게 슬프긴 하지만. 비어있는 시간도 미리 파악할 수 있으니까 일을 오버하게 돼서 야근하게 되면, '(다음번) 그 시간에 운동 시간을 넣으면 되겠다'라고 생각이 되어서 (좋아요).
저는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일이 많아 내 쉬는 시간이나 나를 돌볼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시는 분들께는 제가 효과를 본, 1주일을 21개의 덩이로 살아가는 방법을 권해드리곤 합니다. 한 번 해보세요. 해보시면 내가 얼마나 그 21덩이에 많은 것들을 넣어왔는지 알게 되실 거예요.
강연을 듣고 미디어오리들은…
혜련
흔들리고 불안해하던 과정도 모두 나의 맥락임을, 그 흔들림을 감싸안고 솔직하게 공유해주신 진아 님의 이야기가 좋았습니다. ‘n잡’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특히 시장에서 체계가 잡혀져 있지 않은 지금의 현실에서는 일종의 문화적, 경제적 자본이 기본적으로 제공되어야 n잡에 대한 실험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양한 일을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다각화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작업이고, 건강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사회 전반적으로 n잡에 대한 인식이 넓혀졌으면 좋겠어요. 더 많은 고용주들이 누구나 안정적으로 n잡을 시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준다면 더 다양한 사람들이 연결하게 되고, 재밌는 실험들이 나오고, 서로에게 영양분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러한 실험을 공개적으로 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끌기 위해 노력하는 진아 님 감사합니다.
아인
진아 님의 얘기를 들으면서 동기부여가 참 많이 되었어요. ‘일’에 대한 정의를 스스로 만들어가고 계신 것 같아 저와 같은 여성, 그리고 사회초년생에게 매우 유의미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내 것’을 만드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는 요즘, 앞으로 제가 나아가야 할 커리어의 방향과 의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진아 님의 이야기대로, 내 스스로 작은 동그라미를 그려보는 걸로 시작해보려구요. 시작해볼 용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현
'나의 일'이 무엇일까 방향에 대한 고민이 많은 요즘 진아 님의 이야기는 새로운 관점을 열어줬어요. 깨어있는 시간의 많은 부분을 일하면서 보내기 때문에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느냐가 나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그 맥락을 시작하는 시점에 누군가의 일 얘기를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던 행운 같은 시간이었어요!
주연
진아 님은 깊은 샘물 같았어요. 툭 찌르면 본업부터 사이드 프로젝트, 시간관리 하는 법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졌거든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아무래도 n잡으로 일했던 이야기 같아요. n잡으로 일하는 것은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진 것 같지만 1잡보다 2배 이상 더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아 님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더라고요. 새삼 나는 어떤 일에 그렇게 열정적일 수 있는지 한번 돌아보게 되고, 자신의 일을 맥락을 주도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에 대한 에너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나리
그동안 진아 님과 많은 접점들이 있었지만, 살아오신 과정을 쭉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처음이었어요. 진아 님을 미디어오리 동료들에게 소개할 수 있어서 기뻤어요. 오리만남을 풍요롭게 만들어줘서 고마워요!
<숏다큐로 미디어 만들기>
미디어오리의 오리지널 미디어 '인터브이' 제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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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magazine/startanewmedia
<미디어 인큐베이터 오리>
미디어 창업 생태계를 위한 오리들의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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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magazine/mediaincubator
<5층 사람들>
미디어오리 사람들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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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magazine/storyof5f
<미디어IN싸를 찾아서>
당신이 몰랐던 미디어업계의 '인싸'들을 만나다
#뉴미디어 #인터뷰 #미디어인싸
https://brunch.co.kr/magazine/findingvideo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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