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을 내 일로 만드는 법 | 빌라선샤인 홍진아 대표
<미디어IN싸를 찾아서>는 미디어오리가 미디어업계 인싸라고 생각하고, 더욱 인싸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다양하고 멋진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코너입니다.
홍진아는 자신의 욕구에 맞게 일을 구성하는 'n잡러'이자 빌라선샤인 창업자다. 그는 일하는 밀레니얼 여성들의 커뮤니티 ‘빌라선샤인’을 창업하기 전 시민 단체, 공공기관, 글로벌 비영리 조직, 스타트업 등에서 경험을 쌓았다. 아쇼카 한국 퇴사를 시작으로 자신이 원하는 두 조직에서 동시에 일하는 ‘n잡 실험’을 하기도 하면서 밤에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여러 일을 동시에 해내는 과정을 즐기는 듯한 그에게 일이란 무엇인지, 그가 일을 대하는 태도는 어떤지 궁금했다.
미디어오리는 사내 강연 프로그램 ‘오리 만남’에 빌라선샤인 홍진아 대표를 초청해 ‘좋아하는 일을 내 일로 만드는 법’을 주제로 이야기를 들었다.
저를 쳐보시면 빌라선샤인의 대표라는 것뿐만 아니라, ' n잡러'라는 것도 많이 보실 수 있을 거예요. 2017년 5월부터 2018년 2월까지, 낮에는 2개의 직장에 소속을 두고 일을 하고 저녁엔 다양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는 ‘일 실험’을 했었거든요.
그전에도 투잡, 쓰리잡 많이 있었지만, 돈의 파이를 넓힌다는 의미 말고, 일의 정체성을 다양한 것으로 구성한다는 취지로 n잡 실험을 한 건 제가 알기로는 처음이에요.
'n잡러'는 말은 그냥 재미로 만든 거였어요. 제 친구 중에 '프로돈돈러'가 있거든요, 맨날 돈돈해서. (웃음) 아이디어를 얻어서 '나는 내 일을 구성하는 숫자를 내가 스스로 정할 수 있어, 그래서 n잡러라고 할 거야’. n이 어떨 때 하나가 될 수도 있고, 어떨 땐 굉장히 여러 가지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였어요. 2017년에 이 표현을 쓰면서 인터뷰하면 댓글에 그런 얘기들이 진짜 많았어요. '속 편한 삶 산다'부터 해서 (‘n잡러’라는 단어를) ‘문법이나 맞게 고쳐라’ 그런 얘기도 있었고.
제가 n잡 실험을 하게 한 되게 중요한 질문은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왜 직업은 하나만 골라야 할까?’라는 거였어요. 이 질문은 장래 희망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저한테 끊임없이 들었던 생각이에요. 왜 장래 희망은 하나만 써야 되고, 장래 희망이 여러가지라고 하면 선생님들이 걱정을 하실까. 이런 생각이 저의 일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journey map'(여정 지도)을 한 번 그려봤어요.
저의 ON은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의 여러 조직 경험기]라고 저는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연구원으로 일을 하게 됐어요. 적극적인 후원 회원들이 많은 시민단체였어요. 저희가 매주 교육 환경의 변화와 관련된 연구 자료를 보도자료로 내보냈거든요. 근데 그 보도 자료가 너무 어렵다는 피드백이 회원들로부터 많이 들려왔죠. 그래서 미디어에 관심 있는 동료들이랑 그 주에 나온 보도 자료를 쉬운 언어로 설명해주는 팟캐스트 ‘노워리 약방'을 기획하고 만들었어요.
그 후에는 '서울시 마을 공동체 종합 지원센터’의 청년사업팀을 거쳐 '아쇼카 한국'으로 옮겼어요. 세계 전역에서 변화를 만들어내는 '체인지 메이커'를 발굴해서 3년간 생활비 걱정 없이 변화를 앞당길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글로벌 비영리 조직이에요. 여기서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팀장으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일하면서 n잡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제가 일을 하던 16년에 다보스 포럼에 주제가 4차 산업혁명이었는데요, 그때 '지금 7살 아이들이 노동 시장에 주축이 되는 시기에는 지금 있는 일의 70%가 없어질 것이다'라는 발표가 있었어요. 이 발표가 한 해 동안 조직 내에서도 중요한 화두였죠. 우리의 일하는 방식이 변하고 있는데, 이것에 우리는 어떻게 적응하고 또 주도해 나갈 것인가. 관련된 조사를 하고, 동료들과 논의해서 조직 밖에 있는 시민들이나 파트너들에게 이슈를 던지는 일을 했어요.
온통 이 메시지에 둘러쌓여 일하면서 어느 날 출근을 하는데 ‘나는 똑같이 10시에 출근해서 7시 퇴근하는 삶을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언제나 가지고 있었던 질문인 '재밌는 건 많은데 왜 하고 싶은 건 하나여야 해?'라는 것과 맞물려서, '일이 지금도 없어지고 있는 중인데, 나는 지금 뭘 하고 있지?', '변화의 파도에 올라타야 한다고 얘기를 하는데 나는 어떤 방식으로 파도에 올라탈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 회사를 그만두어야 겠다.' 라고 생각을 했죠.
그러고 나서 n잡 실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두 개의 조직에 속해서 일을 해야겠다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어요. 같이 일을 해보자는 조직이 있었고, 그 조직들에 제가 역으로 제안을 한 거예요. (각 회사에게) 이틀, 사흘을 일할 수 있느냐, 했더니 "같이 생각을 해보자"라고 얘기를 하셨고, 한 달 동안 한 40통 정도의 이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계약 조건을 조절했어요. 그 의사소통이 잘 되어서 두 개의 명함을 가지고 일하는 ‘일 실험’을 하게 되었어요.
n잡 실험을 한 것이 3년 전인데, 3년 동안 일과 관련된 환경이 빠르게 변했다는 생각을 해요. 이 변화를 조금 먼저 사는 행운을 누린 것 같아요. 물론,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기는 했지만 좋은 조직들과 협업하면서 재미있게 일할 수 있었고, 덕분에 굉장히 많은 분들과 연결될 수 있었던 것도 이때 저의 행운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사실 저는 ON도 순탄하지도 않고, 하나의 조직에서 오래 일한 것도 아니에요. 그렇지만 일하면서 생긴 질문들이 제 일의 맥락을 만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 과정을 통해 저만 만들 수 있는 일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여기에서 저를 성장시켜줄 수 있었던 게 OFF에요. OFF의 장점은 실패에 대한 부담이 ON의 영역보다는 덜하기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덜 망설이고 시작할 수 있다는 거예요. 다양한의 경험은 나를 더 잘 알게 만들고, 저는 자기를 잘 아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취직하고 나서는 크게 작게 사이드프로젝트를 해왔어요. 낮에는 조직에 속해서 일하고, 밤에는 사이트프로젝트를 하는 삶을 살았죠. <외롭지 않은 기획자 학교> ,<어쩌다 극장>, <와일드 블랭크 프로젝트>도 했었고, 친구들과 돈을 모아 <소셜투자계모임-디모스>를 하기도 했어요. 여기에서 몇 가지를 소개해 드릴게요.
<어쩌다 극장>이라는 동네 극단을 만들고, 연출도 하고 극본도 썼어요. 원래 연극이나 드라마 같은 것에 관심이 많았고, 한때는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하지 못했어요. 전공자만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했거든요.
2015년에 제가 살던 집 근처에 있는 화력발전소가 있었는데, 그곳이 문화 발전소로 바뀌는 계획이 발표되었어요. 그러면서 기존 발전소 시설을 레지던시(작가가 거주하면서 창작할 수 있게끔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 지원사업으로 나왔어요. 기획안을 냈어요. 이게 되면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창작 활동을 해보면 좋겠다 싶어서요. 아니면 말고의 마음이었죠.
'나는 당인리 발전소 옆에 사는 사람인데, 언제나 당인리 발전소를 (지켜) 보고 있다. 나처럼 발전소 주변에 사는 당인리 사람들이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극으로 만들어 보겠다'라는 기획안을 써서 냈는데, 그게 덜컥 됐어요.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 중에 저를 제외하고는 모두 직업 예술인들이었어요. 발전소 터빈 안의 울림을 이용해서 음악 작업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넓은 공간을 이용해 미디어 아트를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어요. 그러면서 생각했죠. '아, 저런 사람들처럼 직업으로서의 뭔가를 만들 순 없지만, 같은 선상에서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작업들을 할 수 있구나'라고요. 그래서 저처럼 관심 있는 친구들, 전공을 했지만 (연극 쪽) 일로 연결해서 하진 않고 있는 친구들과 함께 프로젝트 극단을 만들었어요.
극단의 이름은 <어쩌다 극장>이었어요. 기성 극단은 배우, 작가, 연출 각각의 전문 영역이 있고, 각자 전문성을 발휘하며 일을 하잖아요. 근데, 저희는 같이하는 것이 많았어요. 아이데이션 단계에서 칠판 놓고 공동 창작을 하는 방식으로 극을 만들기도 했고요. 이 경험은 제게 '극작가나 연출로서 뭔가를 이뤘다'는 것보다는 '기존의 문법이 어떤 것이든 간에 내가 하고 싶은 방식으로 뭔가를 만들어 볼 수 있다', '스스로에게 제한을 두지 말자', 라는 생각을 하게 했어요. 그게 이후에 제가 어떤 프로젝트를 시작하거나 일을 만드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었던 것 같아요.
2017년 10월에는 <외롭지 않은 기획자 학교>라는 교육프로그램을 기획해서 운영하기도 했어요. 계기는 2017년 봄에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컨퍼런스였어요. 사회자까지 합쳐서 14명이 무대에 올라갔는데, 모두가 남성이었어요. 미래를 얘기하는데 여성이 한 명도 없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고, 내가 무대를 만들어보면 좋겠다, 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제 주변에 중간관리자급의 여성 기획자들과 기획자가 되고 싶은 20대 중반의 여성 사회 초년생들을 만나게 하는 학교를 만들었어요.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서로 연결되는 경험이 있어야 서로 성장하면서 앞으로 갈 수 있구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게 창업에 직접적인 계기가 됐죠.
정리하자면, ON은 계속 일을 더해가면서 업무역량, 네트워크, 가능성을 계속 키워나가는 영역인 것 같아요. 혼자 하면 만나기 어려운 예산을 운용해보거나 평소에는 전혀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도 일을 통해 만나서 친구나 동료가 되기도 하는 등의 일들은 ON에서 많이 경험했어요.
반면에 OFF는 ON에서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실험할 수 있는 곳 같아요. 미디어 오리 같은 경우는 실험을 권장하는 회사가 아닐까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회사들이 많은 현실에서는 OFF를 통해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를 계속 깊이 있게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외롭지 않은 기획자 학교>를 계기로 2019년 5월 1일부터 빌라선샤인을 창업했어요. 팀과 함께 저성장 시대에 달라지는 생애 주기를 가진 밀레니얼 여성들을 위한 서비스를 만들었어요. 빌라선샤인은 ‘밀레니얼 여성들이 정보 비대칭이나 네트워크의 부재와 같은 문제들을 갖고 있다’라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한 커뮤니티입니다.
정보나 네트워크가 일하는 여성들에게 필요한 사회적 자본이라고 생각했고 커뮤니티 서비스가 이런 사회적 자본을 공급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일터 밖 동료 네트워크인 ‘뉴먼’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으면 일에서 경험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을 거라는 가설을 세웠어요.
오프라인으로 확장을 하려고 계획하고 있던 2020년에 코로나가 시작되었고, 롱텀으로 지켜봐야 하는 임팩트를 내는 서비스의 성장을 기다려줄 수 있는 인내 자본이 많지 않아 어려움이 있었어요. 이것이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이어졌고, 그래서 12월까지 서비스를 운영하고 종료를 하게 되었습니다. 요즘엔 지난 2년여의 과정을 회고하고, 앞으로 무엇을 해나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일을 해보니,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일도 잘하는 것 같아요. 저는 제 욕구를 파악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정리하고 알고 있을 때 일이 더 잘되더라고요. 내 욕구가 당장 해결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을 위한 기회를 스스로 만들거나 기다릴 수 있으니까요. 뭐가 뭔지 모르면 뚜렷한 목표를 세울 수 없고, 계속 끌려다닌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러면 나를 중심에 둔 일 이야기를 만들 수도 없게 되고요.
진로 고민은 평생 하는 것이라는 조언을 들은 적이 있어요. 진로 고민이라는 것은 ‘어디에 고용됐냐 안됐냐’ 혹은 ‘하나의 직업을 가지고 있냐 두 가지 직업을 가지고 있냐’의 문제가 아니고, '지금 여기서 내가 뭘 원하지? 다음엔 내가 뭘 원하지?'라는 것을 파악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야 계속되는 진로 고민을 부정적으로 하지 않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사람이 어떻게 일을 구성해왔고, 어떻게 욕구를 확인해왔고, 그것을 어떻게 일로 만들어 왔는지를 공유 드렸습니다.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환호와 박수)
>> 미디어오리 동료들이 홍진아 대표와 가진 Q&A 세션은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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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다큐로 미디어 만들기>
미디어오리의 오리지널 미디어 '인터브이' 제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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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인큐베이터 오리>
미디어 창업 생태계를 위한 오리들의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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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층 사람들>
미디어오리 사람들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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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IN싸를 찾아서>
당신이 몰랐던 미디어업계의 '인싸'들을 만나다
#뉴미디어 #인터뷰 #미디어인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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