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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영등 Nov 29. 2022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육식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도봉산 가는 길, 민가 사이에 매미 소리에 문득 깨친다는 선각원蟬覺院이 자리 잡아 원공스님이 만행 사이사이에 머무시곤 한다.


스님이 보자 하여 들렀더니, 행여 길 헤맬까봐 마중해주시고 손수 묵은지로 공양을 마련해주셨다.


일흔을 넘긴 노스님의 예상치 못한 정성에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곁에 붙어서 슬쩍 농치듯 여쭈었다. “스님은 고기 안 드세요?” 이에 바로 “소에게나 가서 물어봐라” 되받으시며 사람 좋은 너털웃음 지으셨다.


이어 고기를 먹고 안 먹는 것이 본질은 아니며 그 뒤에 꿈틀대는 집착을 주의하라 하셨다. 수행자가 힘이 부족할 때 남의 살을 먹어 불같이 일어나는 남의 살 생각에 끌려, 부처되자던 본래 서원을 잃고 무너지는 일이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기 때문일 테다.      


육식을 금하는 조계종과 달리 원불교는 제한적으로나마 허용하여 닭이나 생선이 공양에 오르기도 한다.

한 뿌리에 다른 전통이 나타날 수 있는 이유는, 보시 받은 음식을 가리지 않는 것이 탁발승의 자세이며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그 어디에도 살생하지 말라 하셨지 육식하지 말라고 단정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하루 세 때마다 정갈하게 손질된 신선한 재료에 향과 색이 아우러진 맛스런 공양을 마주하게 된다.


제 아무리 철저한 채식주의자라도 우리네 눈과 코 혀에 잘 조율되어 접시에 담겨 나온 그 이면에 숨겨진 죽음의 그림자를 부인할 수는 없다. 동식물을 물론하고 모든 생명이 차별 없이 한 가지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네’ 생명을 앗아 ‘내’ 생명을 잇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우리네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너’의 죽음을 ‘나’의 삶으로 받아들이는 게 신진대사이며 우리의 몸은 그렇게 진화하여 왔다. 이렇듯 모든 삶은 죽음을 전제로 하며 생生과 사死는 우리 몸 안에 이미 갊아 있다.


알고서는 차마 먹을 수 없다하며, 직접 죽이지 않고 그 살육과 애타는 비명을 보고 듣지 않은 음식만을 챙겨 먹는다 하여 이러한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살아있는 목숨을 끊지 말라는 가르침과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의 괴리 위에 서 있는 우리가, 죽음의 의미를 훼손하지 않고 삶을 보다 가치 있게 하는 길은 없을까?


우리가 알거나 모르거나 우리의 삶을 떠받치고 있는 죽음. 이에 대해 부처님께서 밝히신 인간의 길은, 우리가 서로 없어서는 못사는 관계임을 알아 서로에게 은혜가 되어 대가 없이 사랑하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에게 손을 내 밀어 일으키고, 서로에게 도움 되며, 옳은 것을 실행하는 네 가지 길이다.


 부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이 먹는 이유는 수행의 소중한 자산인 몸을 지키기 위한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먹는 즐거움을 누리되 오늘의 ‘나’를 가능하게 하는 뭇 생명에 대한 예를 갖춰 매 공양에 감사하고, 부처님이 밝히신 인간의 길을 다짐하며, 일상에서 ‘내’ 모든 행이 ‘나’를 둘러싼 모든 존재에게 은혜가 되도록 까지 노력하는 것은 어떨까?      


 오늘도 나는 공양을 마주해 성불하기를 다짐하며 이렇게 기도한다.


오늘 제가 맞이하는 이 하루가 어느 이에겐 간절히 꿈꿨던 내일임을 잊지 않고, 일원一圓의 진리에 마음을 정하고, 생각 없는 가운데 대중 있는 마음으로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정진하게 하기를 다짐하오니, 만나지는 모든 인연과 모든 사물이 서로 없어서는 살수 없는 은혜의 관계임을 바로 알아 감사하는 깨어있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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