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인 무조

미얀마 쿠데타 민주화투쟁

by 시우

버마인 무조


단편영화 ‘물속의 5월’ 촬영장에서 버마인 무조 그를 만났다. 1983년 랑군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와 간간히 뉴스에 등장하던 민주화투쟁의 영웅 아웅산수찌 여사 말고는 뚜렷이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을 정도로 버마에 대해 무지했다. 무조에게 미얀마로 나라 이름이 바뀌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는 미얀마라는 국호는 군사정부에서 만들었으니 버마로 불러달라고 당부했다.


둥근 얼굴, 쌍꺼풀 짙은 눈매에 커피 빛 피부를 가진 그는 버마에서 군부독재에 맞서 학생운동을 하다가 당국의 검거를 피해 조국을 떠나야했다. 지난날 버마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터라 영어에 능한 무조의 동지들 다수는 영어권인 호주를 망명지로 선택했다.


무조가 대한민국으로 오게 된 계기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말이 통하지 않아서 애먹었다는 이야기와 더불어 망명자에 대한 처우가 그다지 좋지 않은 한국에서 생계를 위해 일자리를 구하며 겪은 재미난 일화 하나가 흐릿하게 뇌리에 남았다.


일감을 찾아 인력시장에 나선 그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향해 ‘픽~픽~픽~’이라 외치는 소리를 듣고서 이를 big factory 즉, 대공장으로 이해한 나머지 기분 좋게 인솔차량에 탑승했는데 이상하게도 자꾸 산골로 들어가더란다. 도착해 보니 그곳은 거대한 돼지 축사. big인줄 알았는데 pig이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악취에 절은 돈사에서 1년을 지내고 도시로 돌아온 그는 한국의 앞선 정보통신 기술을 배우고 익히고자 동분서주 하고 있었다. 나중에 버마가 민주화되면 고국에 돌아가 IT사업을 해보고 싶어 했다.


그 이전엔 어느 제약회사가 한국어를 잘 하는 그에게 미얀마 제약시장 개척 비즈니스를 제안했지만 그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그는 귀국할 수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양곤 국제공항에 내리자마자 바로 미얀마 경찰에 체포될 운명이었다. 교장선생님이던 아버지는 이미 여러 해째 민주화운동을 이유로 투옥 중이었다.

그와 마지막으로 만난 게 2003년 초이니 벌써 스무 해 조금 모자란 세월이 지났다. 약관의 그가 불혹의 나이가 되었건만 미얀마 군부는 여전히 건재하여 그제나 저제나 국민 위에 군림하며 폭정을 일삼고 있다.


2021년 2월 1일에 발생한 미얀마 군사쿠데타와 아웅산 수치 여사 구금, 버마 민중들의 강렬한 저항과 유혈진압, 그리고 연이은 죽음을 모니터 너머로 바라보며 저항의 물결 속에 혹시나 그가 있을까 찾고 있는 나를 문득 발견한다.


짧디짧은 인연이었건만 그는 버마와 나 사이를 잇는 가느란 끈이 되어 막연한 분노나 연민이 아닌 함께 호흡했던 이의 안위와 그가 디딘 땅에 정의가 깃들길 기도하는 내가 되었다. 피비린내 나는 자유의 노정에 서 있는 모든 버마 시민들까지도 어느덧 나에게 무조가 되었다.


작은 재주로 작은 권리를 남용하는 자들이여! 대중을 어리석다고 속이고 해하지 말라. 대중의 마음을 모으면 하늘 마음이 되며, 대중의 눈을 모으면 하늘 눈이 되며, 대중의 귀를 모으면 하늘 귀가 되며, 대중의 입을 모으면 하늘 입이 되나니, 대중을 어찌 어리석다고 속이고 해하리요.- 원불교 대종경 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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