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바 춤을 추고 있는 그대

by 시우

삼바 춤을 추고 있는 그대


늙수레한 과수원 사장님이 1톤 트럭 한 가득 나무를 싣고 와서 마당에 부렸다. 겨울 사과나무 가지치기 부산물이다. 땔감으로 쓰면 은은한 사과 향이 난다고 했다.


먼저 기계톱으로 땔나무를 적당한 길이로 토막 냈다. 그리고 허연 입김을 불어가며 도끼질을 했다. 옹이가 많아서 쉽게 빠개지지 않았다. 길찍하게 팬 장작개비를 바람이 잘 통하도록 차곡차곡 창고 벽면에 재었다. 괜찮은 장작은 따로 갈무리해서 미리 자루에 담아뒀다. 화물로 보낸다고 했다. 배송지는 A회장 자택이었다.


VIP 교도를 향한 살뜰한 정이란 걸 알았지만, 홀연히 일어난 불쾌한 기억 하나에 마음이 혼탁해졌다. 2001년 9월 3일, B대학교 학생복지팀 직원들이 개강에 맞춰 학교 곳곳에 배부된 교지 ‘XX 70호’를 닥치는 대로 차에 실었다. 학생복지처장 J는 발행 절차상 하자를 문제 삼았으나 본질은 다른 곳에 있었다. D사의 변칙증여를 비판한 시사만화가 지면에 게재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랬다. 아는 사람들은 아주 오래 전에 이미 A의 움직임을 눈치 챘다. 그들은 끊임없이 A의 구린 곳을 캐내려했고 A의 하수인들은 어떻게든 덮으려했다. 여러 정권을 거치며 C 부회장의 그룹 승계를 위한 작업이 물밑에서 진행되었다. D사의 음모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부터다.


OECD회원국 중 정부로부터의 독립성이 가장 낮은 국민연금은 E사의 최대주주로서 E사와 F사의 합병을 찬성했다. 박영수 특검팀은 E사와 F사의 합병을 경영권 승계 작업의 일환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의견서를 냈다. 참여연대는 국민연금이 이 과정에서 최대 6,000억 원 넘는 손실을 입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1월, 5년 남짓한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온 나는 곧장 국민연금공단을 찾아가 국민연금 납부 재개신청을 했다. 한발 더 나아가 2006년에 직장을 그만 둔 후 무려 12년 가까이 내지 않았던 국민연금 미납액 전부를 지불했다.


기금고갈론에 치이고 최소생활비도 보장 못하는 용돈연금이라 조롱받기도 하지만 국민연금은 엄연히 서민들의 노후를 위한 마지막 보루다. 그런데 한국에서 제일가는 부자, 아니 이제는 세계적인 거부가 가업을 세습하기 위해 그 돈을 건드렸다. C 승계의 열쇠 G 분식회계 의혹이 불거지면서 증권가 개미투자자들의 주머니도 털렸다.


이것이 ‘또 하나의 가족’이라 자칭했던 D가, D를 또 하나의 가족이라 믿었던 국민을 대하는 태도다. 이것이 “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여 인류 사회에 공헌한다는 경영이념 아래 공정하고 투명한 기업 경영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D 윤리경영의 실상이다.

놓아야 사는 남자 C. 이제 그만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라.


진화의 길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셋째는 세습 철폐와 상속 제한이니, 모든 영전(榮典)은 본인 자신에 한하여 자손들이 공연히 의세하지 않게 하며, 재산의 상속은 생활 자본 정도에 그치고 나머지는 바로 공익사업에 바치어, 부모 자녀가 한 가지 선업을 지으며 자력 생활로써 국가 사회의 발전과 모든 사람의 생활 실력을 얻게 할 것이니라.” - 원불교 정산종사법어 2:3:13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숨기면 안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