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영등 Dec 11. 2022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월간원광 2023년 1월호 기고문)


인천 물류센터에 모인 가지가지 상자들을 컨테이너박스에 빈틈없이 야무지게 채우는 부지런한 손길이 있다.


큰 배는 육중한 화물을 들어 올린 크레인을 뒤로하고 남녘으로 물길을 연다. 황해, 동지나해, 남중국해를 지나 타이 만에 접어들어 태국의 수도 방콕까지 20여 일간의 항해다.      


통관을 마친 짐들은 다시 트럭에 실려 육로를 이용해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으로 향했다. 물건이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은 후 배 삯을 치르면 국내배송이 시작된다.


해발 174미터 비엔티안에서 고도 1,100미터를 넘나드는 시엥쾅주까지 구불구불 왕복 2차선 고속도로를 360km나 달려왔다.


택배물을 찾아가라는 메시지를 확인하고 화물집하소로 차를 몰았다. 이 동네에 아직 지번이 없어서 문 앞까지 직접 배달하지 않는다.      

 

어린이 반팔티셔츠, 아동복원피스, 유아반바지, 꼬마실내화, 팝업 북, 직물로 만든 동화책, 캔버스 천 소재 어깨가방과 배낭, 텀블러, 치약칫솔, 우산, 볼펜, 필통, 수건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 물 건너온 후원물품이 사무실 복도를 가득 채웠다.      


주도州都 폰사반을 벗어나 더 형편이 어려운 마을로 가려던 바람은 이동 중 예기치 못한 교통사고를 당해 접었다. 그래서 가까운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계획을 짰다.


문의전화를 넣은 학교마다 흔쾌히 방문을 허락했다. 선물만 한 무더기 가져가기 싱거워 시장에 들러 빵과 음료를 더했다.     


베이지색 소형차에서 낯선 외국인들이 내리자 아이들이 술렁였다. 반가이 맞아주시는 선생님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나서 한 반 한 반 돌며 먹거리를 먼저 나눴다.


들뜬 분위기가 한결 가라앉는 찰나를 놓칠 사, 동행한 NGO활동가들은 준비해온 정성을 학생들에게 건넸다.


질 좋은 한국산 제품이 그 순간만큼 자랑스러웠던 적이 또 있었을까. 그 시간 모두는 선물보따리를 둘러 맨 포대화상이 되었다.     

 

이날의 기록을 사진으로 남겼다. 이미지로나마 현장을 느끼고픈 분들에게 그리고 행여나 후원금이 어문 데로 샐 까 걱정하는 분들에게 올리는 메신저 된 자로서의 의무이자 예의다.


흔적 없이 보시 하고픈 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셔터를 누를 때마다 렌즈 뒤의 나에게 한 치의 동정심도 한 올의 우월감도 피어나지 않기를 기도했다.      


나의 번뇌에 아랑곳없이 구김 없는 당당한 웃음으로 거리낌 없이 피사체가 되어 준 소녀가 그저 고마웠다.


오늘은 네가 주고 내가 받지만 어제는 내가 주고 내일은 네가 받는 이치를 아는 이의 모습이 저러할까.


우리 이대로 영원히 서로의 복전福田이 되어 오가는 정情 속에 공경하는 마음을 놓지 말 일이다.      


불경에 삼륜(三輪) 청정이란 말이 있나니, 주는 이와 받는 이와 주는 것 등 세 가지가 다 공(空)하여야 참다운 희사가 된다 하심이니라. - 정산종사법어 12:46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 없는 홀로서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