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영등 Dec 03. 2022

당신 없는 홀로서기

당신 없는 홀로서기     


2022년 1월 19일 정오.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접했다. 늘 편찮으셨지만 이번엔 심상치 않았다.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겨진 부친에게 길어야 사흘이라고 의사는 말했다.      


한국에 갈 수 있을까? 그보다 먼저 시엥쾅공항에서 왓따이 국제공항 가는 길이 걱정이었다. 팬데믹으로 막혔던 하늘길이 다시 열린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인천행 직항 정기편이 끊긴지는 이미 오래, 가끔 전세기만 떴다.       

황망한 마음을 추슬러 우선 국제선 표를 알아봤다. 21일 23시 30분 한국행 비행기가 있었다. 탑승 24시간 전 코로나 음성확인서를 받으려면 한시가 급했다. 왓따이 공항까지 어떻게 가야할까? 9시간 심야버스를 타야하나?      


기대 못한 국내선 항공기가 마침 있었다. 16시 20분 출발이다. 꾸물거릴 틈 없이 서둘러 짐을 꾸렸다. 화산 김명덕 교무님께서 공항까지 배웅해 주셨다. 17시에 비엔티안에 도착해 미싸이파라다이스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이튿날 아침 지정병원에서 PCR테스트를 받고 급행료를 내니 오후에 바로 결과를 받을 수 있었다. 깊은 밤 이륙해 이른 새벽 인천공항에 내렸다. 그러나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바로 갈 수 없었다. 해외입국자를 위해 준비된 차량을 타고 보건소에 가서 재차 PCR검사를 마친 후 텅 빈 부모님 댁으로 가야했다. 열흘간 자가격리란다.     

모친이 오셔서 잠긴 대문을 열어주시고 삼성서울병원으로 돌아가신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우로부터 급한 전화가 왔다. 아버지께서 마지막 호흡을 하고 계셨다. 남은 삶은 10분 남짓. 큰 아들이 서울에 오기까지 기다려 주신 아버지였다.     


구청 담당공무원이 임시로 자가격리를 풀어줬다. 택시를 타고 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다다라 입구에서 격리해제서류를 보여주자 비옷과 비닐장갑, 얼굴 전체를 가리는 투명마스크를 주면서 빈소에 절대 나가지 말고 유족휴게실에서 조문객을 맞이하라고 신신당부했다.      


발인식에 이어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을 치르고 나서 동작동 국립묘지 현충원 봉안당에 유골을 모셨다. 그렇게 그의 육신은 한 줌 재가 되어 떠났다. 몸을 여읜 영혼이 홀로 바람같이 떠돌며 집착하는 마음을 좇아가다 결국 지은 바 업을 따라 새 몸을 받았다면 이는 다 내 정성이 특별하지 못하고 도력이 부족한 탓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안고 폰사반으로 되돌아왔다. 죽음은 어머니에게도 닥쳐올 숙명이라 나는 마침내 고아가 될 것이다. 허나 부처님을 마음의 어버이로 모신 불제자로서 더 이상 서러워 말자. 


미처 갚지 못한 낳아 길러주신 은혜를 시방세계 부처님에게 널리 보은하는 길만이 당신 없이 홀로 설 아들의 본래면목이니 라오스 땅 어디서에든 그를 모신다.        

매거진의 이전글 길을 떠나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