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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영등 Dec 12. 2022

마음이 병든 나

마음이 병든 나


 그 아이를 만났다. 살바람 불던 2006년 그날, 혜화동 로터리 언저리 바Bar에 나란히 앉아 거미줄 늘이듯 가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몹시 떨었다. 모두 다 등지고 학교를 떠나 숨어든 지 세 해, 학자의 길과 시민활동가로서의 전망은 이미 접었고, 앞가림을 위해 고시원총무를 하며 밤낮으로 취업을 준비 했으나, 그마저도 병이 들어 한 해를 그대로 묵어야 했다. 이듬해, 다시 일자리를 잡고 또 1년이 지났다. 그 아이가 보고 싶었다. 


 ‘지곡서당’에서의 일상을 조근히 들려주는 선이 고운 아이가 곁에 있는데, 더 이상 나는 그녀 기억속의 청년도 아니고, 이젠 서로 되돌릴 수 없는 각자의 길에 서 있다는 먹먹함에 연거푸 잔을 비워냈다. “오빠는 마음에 병이 들었어요.” 곪아 문드러지는 슬픔과 분노에 물든 나를 들켜버렸다. 버스에 올라 다시 멀어지는 이에게 이미 내 자리는 희미했다.      


 그리고 세 번째 맞이하는 여름, 사표 내고 벌인 일은 실패했다. 하태은 교무님이 주머니 털어 쥐어준 돈을 들고, 선방禪房에 몸을 들인다. 미리 연락 받았는지, 흰 저고리 검은 치마 차림의 단아한 오성 교무님이 알아보고 반갑게 맞아주셨다. 낯설기에 두리번거리다, 방방이 걸린 보광普光그룹 달력에 시선이 멈춘다. 만덕산에까지 와서 옛 직장 로고를 보게 될 줄 몰랐기에 의아했다. 홍석현씨 일가와 원불교의 인연을 안건 이후의 일이다.


 불안과 자괴감이 그대로 드러난 얼굴은 군중 속의 외딴 섬으로 보이리만치 날 섰으나, 선방에 넘나드는 가족스런 온정에 미소로 젖어갔다. 승산 종사님의 일원상一圓相진리 법문과 농원에서의 작업, 절제된 침묵과 완만한 긴장 그리고 아름다운 사람들. 서른둘에 치른 원불교 첫 경험은 이러했다. 


 착잡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짐을 꾸릴 때, 익산에 가서 원불교 최고 지도자이신 종법사님을 뵙는 일정이 남았으니 마저 동행하자는 분이 계셨다. 망설이다 따르기로 했다. 


 몇 분의 훈련소감과 종법사님의 격려 말씀을 별 감흥 없이 들었다. 끝나려나할 때 쯤, 교도가 아닌 사람 앞으로 나와 보라신다. 쭈뼛거리며 몸을 일으켜 걸음을 옮겼다. 사회자나 다른 참석자와 거리를 둔 채로, 종법사님과 나 단 둘이 마주했다. 손을 잡아주시며, 전까지의 온화함을 거두신채로, 눈을 바라보고 남 들리지 않게 나직이 내리 누르듯 말씀하신다. “야! 너 마음병 환자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원불교 중앙총부 길 건너, 원광대학교 수덕호 벤치에 넋을 잃고 앉아 물에 비친 하늘을 바라봤다. 종법사님 말씀과 그 아이가 남긴 마지막 말. 마음이 병든 나. 이대로 서울로 돌아갈 순 없었다.  


 하태은 교무님에게 마음병을 해결하기 전까지 만덕산에 더 머무르고 싶다 하고, 버스에 몸을 실어 관촌을 거쳐 중길리에 내렸다.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며 홀로 후박나무 길을 거슬러 올랐다. 만덕산 훈련원 원장 농타원 법사님께선 되돌아온 선객을 말없이 받아주셨다. 

 그렇게 만덕산은 나를 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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