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것 아닌 의학용어 Aug 26. 2024

나비와 영혼, 사이코 이야기

의학용어 psyche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심리학(psychology)"이라는 단어, 한번쯤 그 뜻을 깊이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무의식, 행동, 정신분석 등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알고 계시겠지만, "심리학"이라는 단어 자체의 어원을 알고 계신 분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은 여러분께 "심리학"의 어원인 "psyche"라는 단어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Psyche"의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원래 "psyche"는 "영혼" 또는 "생명력"을 의미했던 단어였습니다. 


Psycho(Greek psȳchḗ) : breath, spirit, soul, mind (www.dictionary.com)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psyche"는 단순한 정신 작용 이상의 것이었죠. 그들에게 "psyche"는 한 개인의 정수이자 삶의 원동력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호머(Homer)의 서사시 "일리아드(Iliad)"에서는 "psyche"가 죽음과 함께 몸을 떠나 하데스(Hades)로 향하는 영혼을 묘사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psyche"가 생명력의 근원이자 사후 세계로 이어지는 통로로 여겨졌음을 보여줍니다.


Homer, Iliad 22. 361 ff :

"The end of death closed in upon him, and the soul(psyche) fluttering free of the limbs went down to Aides mourning her destiny, leaving youth and manhood behind her."


흥미롭게도 "psyche"는 '나비'라는 뜻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그리스인들이 나비를 영혼의 상징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번데기에서 나와 화려하게 변신하는 나비의 모습은 죽음 이후 영혼이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는 것과 닮았습니다.  이렇게 "psyche"는 물질세계와 정신세계를 잇는 다리 역할을 했던 것이죠. 플라톤(Plato)은 "파이드로스(Phaedrus)"에서 나비의 변태를 영혼이 육신을 벗어나 이데아의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그리스 신화 속에서 아름다운 공주 Psyche는 사랑의 신 에로스(Eros, 로마 신화의 큐피드)의 사랑을 받습니다. 질투한 아프로디테(Aphrodite)의 계략으로 많은 시련을 겪지만, 결국 에로스와의 사랑을 이뤄내고 영생을 얻죠. 이 신화는 영혼의 성장과 사랑의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Psyche가 겪은 고난은 우리의 내면이 성장하는 과정을, 에로스와의 결합은 사랑을 통한 영혼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2세기 로마 작가 아풀레이우스(Apuleius)는 "황금 당나귀(The Golden Ass)"에서 Psyche 신화를 아름답게 묘사했는데, 이는 후대 예술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나비를 뜻하는 영어단어 "butterfly"의 어원도 흥미롭습니다. "butterfly"는 고대 영어 "buttorfleoge"에서 유래했는데, "butter(버터)"와 "fleoge(날다)"의 합성어입니다. 노란색 나비가 버터를 연상시켰거나 나비가 우유와 버터를 훔쳐간다는 속설 때문에 붙여진 이름일 것이라 추측됩니다. 또 다른 이론으로는 나비의 배설물이 버터처럼 보였다는 설명도 있지만, 이는 민속 어원에 가깝습니다. 언어학자들은 "butter"와 "fly"의 결합이 가장 설득력 있는 어원으로 보고 있습니다.


19세기 후반, "psyche"는 의학의 영역에 진입하면서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됩니다. 독일의 정신의학자 리하르트 폰 크라프트에빙(Richard von Krafft-Ebing)은 1886년 출간한 "Psychopathia Sexualis"라는 책에서 최초로 "psyche"를 성과 정신질환을 논하는 의학적 맥락에서 사용했죠. 

19세기 독일의 정신과 의사 코흐(Koch)는 정신을 뜻하는 단어 psycho에 병리를 뜻하는 접미사 ~pathy를 붙여서 사이코패시(psychopathy, 독일어:  psychopastiche)라는 말을 처음 사용합니다. 직역하면 '고통받는 영혼(suffering soul)'이라고 뜻이 됩니다. 


The term psychopathy comes from the German word psychopastiche, the first use of which is generally credited to the German psychiatrist J.L.A. Koch in 1888,and which literally means suffering soul. (Kiehl KA,THE CRIMINAL PSYCHOPATH: HISTORY, NEUROSCIENCE, TREATMENT, AND ECONOMICS.  2011 ;51:355-397)


이는 현대 의학과 심리학에서 "psyche"가 자리잡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psyche"는 정신의학 및 심리학 용어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고, 우리에게 익숙한 "psychosis(정신병)", "psychopath(사이코패스)" 같은 단어들도 이 시기에 생겨났습니다.


사이코패시(psychopathy)에서 y를 빼고 사이코패스(psychopath)라고 하면 정신병자(someone who is mentally unstable or afflicted with a psychosis)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사이코패스(psychopath)를 줄여서 사이코(psycho)라고 부르게 됩니다. 일종의 슬랭(slang), 즉 관용적 표현입니다.


Psycho is a slang term for someone who is mentally unstable or afflicted with a psychosis. Your best friend risks looking like a psycho if she keeps stalking her ex-boyfriend months after their breakup.(www.vocabulary.com)


사이코(psycho), 정신병자를 뜻하게된 이 관용적 표현은 여러분도 잘 아시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사이코'(1960)를 통해 널리 알려지고 사용됩니다.  원래 사이코는 광범위하게 정신병을 말하는 말이었는데, 영화 덕분인지 조현병, 공격적인 정신질환자,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을 묘사하는데 주로 사용됩니다. 언어는 습관이니까요. 


Few psychology terms stir up confusion like “psychopath.” Even though it’s commonly (though incorrectly) used to describe someone who has a mental health condition, “psychopath” is not an official diagnosis. Instead, it’s an informal term often used for a condition called 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 (ASPD).(www.healthline.com)


"Psyche"의 개념은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정신분석학을 통해 더욱 발전합니다. 무의식, 꿈, 정신의 구조에 천착했던 프로이트의 이론은 인간 내면에 대한 혁명적 통찰을 가져왔고, 이는 현대 심리학의 지평을 넓히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프로이트는 "psyche"를 의식(conscious mind), 전의식(preconscious mind), 무의식(unconscious mind)으로 구분하고, 무의식의 역동이 인간의 행동과 정서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했습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리비도, 자아 등 프로이트가 제시한 개념들은 모두 "psyche"에 대한 그의 통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의 정신치료방법은 정신분석(psychoanalysis)라고 불립니다.  

오늘날 "psyche"는 심리학 및 정신의학 분야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용어가 되었습니다. 심리학(psychology), 정신요법(psychotherapy), 정신병리학(psychopathology), 정신약리학(psychopharmacology) 등 "psych-"로 시작하는 단어들은 모두 고대 그리스의 "psyche"에 그 어원을 두고 있습니다. 


psychiatry - 정신과, ~iatry는 치료(healing)를 뜻하는 접미사입니다.

psychiatrist - 정신과 의사

psychoanalisys - 정신분석

psychopathy - 정신병증

psychosis - 정신병(광범위한 총칭)

psychopath, psycho -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 반사회적 성격장애 환자


이렇듯 "psyche"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인간 영혼의 신비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단어에서 출발해, 신화와 문학을 거쳐 의학과 심리학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놀라운 변천사를 보여줍니다. 영혼을 의미하던 나비(psyche)가 시대의 흐름을 타고 학문의 나비로 거듭난 것이죠.  최근에는 인지심리학, 신경심리학, 진화심리학 등 새로운 분야들이 "psyche"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더욱 확장하고 있습니다. 뇌 과학의 발달로 "psyche"의 신경생물학적 기반이 밝혀지고 있고, 컴퓨터 모델링을 통해 인지 과정의 복잡성이 규명되고 있습니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와 같은 기술은 "psyche"와 기계의 경계를 허물고 있고, 사이버 심리학은 디지털 공간에서의 정신 현상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정신유전학과 후성유전학의 발달로 "psyche"의 생물학적 기반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 나날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psyche"에 대한 전통적 관념에 도전하는 동시에, 새로운 언어의 영역을 창조하고 있지요. 이 단어가 어떤 의미로 까지 확장될지 기대가 됩니다. 


우리의 영혼 속에도 고대 그리스인들이 보았던 그 아름다운 나비가 살고 있을지 모릅니다. 여러분 안의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무한한 가능성을 열기를 기대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Edema or Oedema?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