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식당에서 아는 척하기 안티파스티, 안티파스토

Il Cielo

우리 동네에 있던 매우 팬시한 이탈리아 식당이에요. 낭만적이긴 한데, 뭔가 비씨고 맛은 좀 없는. 이런 레스토랑 메뉴판을 보면 '안티파스티(Antipasti)'라고 쓰인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식사전에 나오는 전채요리들(복수)라는 뜻이에요. 영어권의 에피타이저에 해당하죠. 뭐 좀 있어 보이고 싶은 분식집에서도 쓰이기도 합니다.

안티파스티는 라틴어 'ante(앞, 전에)'와 'pastus(파스투스, 식사)'가 결합된 말입니다. 즉, '식사 전에 먹는 것'이라는 뜻이죠. 이탈리아인들은 본격적인 식사 전에 입맛을 돋우는 작은 요리들을 내놓으며, 이것이 바로 안티파스티의 전통입니다. 올리브, 치즈, 햄, 브루스케타 등이 예쁘게 담긴 접시를 보시면 그것이 바로 안티파스티입니다. 마치 오페라의 서곡처럼, 식사에도 기승전결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나봅니다.


Restaurant Menu from Ristorante "Il Leccio", Cura Nuova


파스티가 파스타?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파스티(Pasti, Pasto(단수))'와 '파스타(Pasta)'의 차이입니다. 많은 분들이 혼동하시는데, 파스티는 라틴어 'pastus'에서 온 말로 '식사, 음식'을 의미합니다. 반면 파스타는 라틴어 'pasta'에서 온 말로 '반죽, 밀가루 음식'을 뜻하죠. 스파게티나 펜네 같은 면류를 파스타라고 부르는 것은 이런 어원 때문입니다. 식사 전체를 뜻하는 파스티와 면류를 뜻하는 파스타,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초원을 뜻하는 영어단어 패스쳐(Pasture)가 의외로 식사를 뜻하는 파스티(pasti)에 기원합니다. 가축이 초원에서 풀을 뜯어 먹는 것이 사람이 음식을 먹는 것이란 생각에 유래합니다.


의학에서의 식사, 파스티와 키붐


의학에서도 비슷한 말이 쓰이는데, '안테키붐(Ante Cibum)'으로, 는 '식사 전에'라는 뜻입니다. 미국 의사들의 처방전에 'a.c.'라고 쓰는데, 이것이 바로 안테키붐의 줄임말입니다.


Prescription label: Take 1 tablet by mouth AC.
Medical chart: Pain reliever - 5 mg AC and bedtime.
Doctor’s notes: AC - before meals, 3 times a day


antecibum과 antipasti의 ant는 모두 앞, 전을 뜻하고, cibum과 pasti는 모두 식사를 뜻합니다. cibum은 구체적인 음식을 뜻하고, 파스티는 추상적인 식사행위를 뜻합니다. 안티파스티가 맛있는 전채요리를 뜻한다면, 안테키붐은 '식사 전에 약을 드세요'라는 의미니까, 둘 다 '식사 전'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Antipasti(o) - 전체요리
Ante Cibum - 식전


후식은 뭐라고 할까?


그럼 마지막으로 후식은 어떻게 부를까요? 포스테파스티(Postepasti)라고 부르면 될 것 같지만, 이탈리아에서는 그렇게 부르지 않습니다. 대신 'a fine pasti(아 피네 파스티)', 즉 '식사 끝'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fine(피네)'는 '끝'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입니다. 이탈리아 영화 끝에 자주 보셨죠? 바로 그 'fine' 맞습니다.

메뉴판을 찬찬히 보다가 처음 보는 음료가 있어서 주문합니다.

m.s.g.r, 무엇일까 기대하며 받아본 음료는 색부터 처음 보는 희한한 음료였습니다.

images (7).jpeg


맛을 보고 음료의 이름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빵은 금,토,일에만 가져옵니다라고 한글로 붙인 것이 킬포). ㅂㅅ 짓도 가지가지다 생각이 들며, 이런 식당에 앉아있는 자신에 얼굴이 화끈해 집니다. 하지만, m.s.g.r은 맛있어서 원샷을 하고, 누가 볼새라 황급히 자리를 차고 일어닙니다. 제 글도 그럼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Fine-


keyword
이전 14화갈비뼈 아래의 미스터리: 건강염려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