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해 통행료(toll)는 울리나(toll)?
하이웨이를 신나게 달리다가 갑자기 차가 싹 없어집니다. 아!! 기분이 좋습니다. 탁 트인 도로와 쾌적한 주행. 그런데 이 상쾌함 뒤에 뭔가 서늘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혹시나 했는데 맞습니다. 바로 톨로드(toll road)입니다. 저 앞에 toll box가 보입니다. 이미 늦었습니다. 돌아설 수도 없습니다.
미국에는 이런 toll road가 참 많습니다. 잠깐 정신을 놓으면 의도치 않게 들어서는 경우가 있습니다. 달콤함은 순간이고 생각보다 큰 대가(toll)가 따릅니다.
As I approached the toll box, it began to take its toll on me.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toll이라는 단어가 두 번 나왔지만 의미가 조금 다르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toll은 통행료이고 두 번째 take its toll은 피해를 입히거나 고통을 준다는 뜻입니다.
사실 toll은 정말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통행료와 고통, 피해, 심지어 사망자 수까지 포함합니다. 한번 이 단어들을 꿰어보겠습니다.
이 단어는 아주 오래전 그리스어 telos에서 왔습니다. Telos는 세금이나 의무, 비용을 뜻했습니다. 이것이 라틴어 teloneum, 그라고 결국 고대 영어 toll로 정착했습니다.
You must pay the toll to cross the bridge.
다리를 건너려면 통행료를 내야 합니다.
그런데 19세기 말부터 이 개념이 비유적으로 확장되기 시작합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기 위해 내놓아야 하는 인명 피해나 건강상의 손실을 의미하게 된 것입니다. 먼저 통행료, 즉 대가로 확장되었습니다.
The toll of raising three kids alone was enormous.
세 아이를 혼자 키우는 대가는 엄청났습니다.
그리고는 대가가 아니라 순수한 피해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대가는 지불한 만큼 얻은 것도 있지만, 이번의 toll은 그냥 순수한 피해입니다.
Years of stress took a heavy toll on his health.
수년간의 스트레스가 그의 건강에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심지어 이 피해라는 뜻은 인명피해를 뜻하는 말로 쓰여 사망자 수(toll)를 의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The death toll from the earthquake reached 500.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500명에 달했습니다.
보이시나요? toll이 걸어온 여정이?
Take its toll이라는 표현은 통행료를 징수하듯 인생이나 건강에서 무언가를 앗아간다는 비유에서 나왔습니다. 귀족들에게 바치는 소작료는 모두 가난한 민초들에게 강제로 무엇을 뺏기는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강과 길, 땅이 사실 누구의 것이란 말인가요? 그런데, 귀족들은 땅을 임대해주고 소작료(toll)을 거두어 드립니다. 현대의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걷어가는 것 처럼 말이죠. 열심히 일한 농민들에게는 이 비용이 정당한 대가(toll)로만 여겨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세금과 통행료로 시작된 단어가, 고통이자 피해이며 심지어 인명 피해를 뜻하게까지 된것도 이해가 갑니다. 참으로 끔찍한 단어입니다. 누구를 위해 임대료는 울리나요(toll)?
하지만 이 잔혹한 단어에는 전혀 다른 얼굴이 하나 더 숨어 있습니다. 바로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에 쓰인 Toll입니다. 여기서 toll은 종을 천천히 울린다는 의미입니다. 이 toll은 어원이 앞서 말한 것과 전혀 다릅니다. 고대 영어 tyllan, 즉 끌어당기거나 유혹하다에서 왔습니다. 원래는 종을 치기 위해 줄을 잡아당기는(pull) 동작에서 유래했습니다.
The church bells tolled solemnly for the funeral. 교회 종이 장례식을 위해 엄숙하게 울렸습니다.
종을 울려 사람들을 불러 모으거나 유혹한다는 뜻으로 쓰이다가 점차 장례식 등에서 종을 천천히 일정하게 울리는 것 자체를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느리고 무겁고 슬픈 그 소리 말입니다.
하나의 단어에 담긴 여러 개의 인생
결국 toll이라는 단어 하나에는 우리 인생의 여러 국면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길을 지나가기 위해 내야 하는 '비용', 우리 건강을 좀먹는 '스트레스', 그리고 누군가의 마지막을 알리는 '종소리'까지.
다음번에 toll road를 지나갈 때, 혹은 누군가 "It's taking a toll on me"라고 고통을 호소할 때, 이 단어가 품고 있는 긴 여정을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그 소리는 강압적인 수탈에 대한 민초들의 신음일 수도, 혹은 떠난 이를 기리는 엄숙한 종소리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지불하는 그 통행료와 대가가, 부디 가진 자들만을 위한 종소리가 아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