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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디치 May 10. 2021

불공정한 숫자들

통계는 어떻게 부자의 편이 되는가

 우리는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세금을 지불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치안서비스, 국방 서비스, 공교육 서비스 등은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개인이나 기업이 제공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들 서비스가 모든 국민에게 거의 무상으로 공급되기 위해서는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물론, 이 서비스들을 공급하기 위해 국가는 재원을 장만해야 한다. 그 재원이 세금이다. 세금 납입을 좋아하는 이는 없다. 하지만 세금 납입이 없다면 우리에게 보편적으로 제공되는 위의 서비스나 사회적 복지는 존재하기 어렵다. 한편, 혹자는 누구나 누리는 이 서비스를 일부 사람이나 기업들이 왜 더 많은 돈을 지불해가며 지탱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이에 대해 부유한 이가 부를 약탈당하지 않고 지키기 위해서는 평균적인 부를 가진 이보다 국가 서비스를 많이 받아야 하고 대기업은 그 외형을 유지하기 위해 양질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여 잘 교육된 인력들을 고용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국가는 표준화된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많은 자원을 투여한다. 대기업은 안정된 고용환경, 잘 정비된 금융 시스템을 통해 노동력과 투자를 공급받는다. 즉, 개인이든 기업이든 소유한 부가 클수록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더 많이 소비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소유한 부가 많을수록 이에 따라 지불하는 비용이 커지는 건 자연스럽다. 하지만 부가 커지면 이를 소유한 개인이나 기업은 지불할 비용을 줄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국가는 조세 제도를 통해 이 노력을 적절히 제어하여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때로, 정부는 소수의 부를 위해 이 비용을 줄이려는 탈법적, 위법적 행위를 눈감아 주기도 한다. 이로 인해 두 가지가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일정 이상의 국가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해 평균적인 부를 가진 대다수가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거나 국가가 부족한 재원을 핑계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게 된다. 후자의 경우 다 같이 양질의 서비스를 취해 얻는 편익을 상실한다. 정부는 이러한 편익 상실을 피하고자 국가 서비스 지출 비용을 줄이려고 노력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사회적인 약자들을 부양하기 위한 기초조사를 누락시키는 것이다. 입맛에 맞는 기초조사를 얻기 위해 아예 조사 대상을 처음부터 빼 버리거나 조사된 자료를 왜곡한다. 우리가 정부를 구성하고 법체제에 순응하는 이유는 우리가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면 이 비용이 사회체제를 안정시켜 우리가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기대가 있어서다. 이 기대를 깨고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이를 살펴보자. 


<불공정한 숫자들> 표지


     

 우리에게 익숙한 지표인 GDP는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30 여전 전에는 GNP를 사용했다. GNP는 국민 총생산으로 한 나라의 국민이 생산하는 지표이다. 문제는 그 나라의 국민이 국외에 있을 경우 이들이 관여하는 생산량을 어떻게 측정하느냐였다. 한편 GDP는 국내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이 관여하는 생산량을 측정한다. GDP가 국내 경제 상황을 잘 반영하기에 GNP보다 GDP가 각광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GDP는 시장 외에서 거래되는 재화와 서비스를 측정하지 못하고 국민 복지 수준을 반영하지 못한다. 결정적으로 GDP는 소득 분배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거의 주지 못한다. 우리나라 GDP 수준이 세계 10위권이지만 일반인들은 잘 실감하지 못한다. 막대한 GDP를 기록하는데 일등공신인 대기업들은 부유해지지만 일반 국민들은 살림살이가 나아졌다는 인식을 가지기 힘들다. 자주 접하는 작년 동월 대비 GDP 성장률 추이는 언뜻 객관적인 지표로 인식된다. 그래서 정부나 정치인들은 이 지표를 자주 이용한다. 특히 이 지표가 큰 상승세이면 이를 홍보하는 정부나 정치인들이 자신의 치적으로 포장하는 경우를 흔히 본다. 

 우리나라도 20여 년 전 전까지 여성의 경제 활동이 GDP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은 호응을 얻었지만, 현재 여성의 경제 활동이 늘어나고 사회적 진출이 많이 늘어나 이 비판이 많이 인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여전히 여성은 불평등한 환경 속에 놓여 있으며 GDP는 여성의 역할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 GDP는 세계적으로 빈곤과 불평등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고 있으며 때로는 그걸 감추고 있다. 저자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GDP 자료 계열을 명백하게 조작한다는 증거가 있으며 시카고 대학 연구팀은 인공위성에 포착된 야간 불빛들을 분석하여 공공 GDP 계열들의 정확성을 평가한 결과, 권위주의 국가들 대부분이 GDP를 부풀렸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나아가 이들 국가는 통계의 질을 악화시키고 있다. 그런데 국가 통계의 질이 저소득 국가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2005/2006년 사이에 GDP가 가장 빠르게 늘어난 아일랜드에서는 GDP가 가장 두드러지게 왜곡이 일어났다. 아일랜드는 기업의 이익 이전을 위한 조세피난처 중 가장 중요한 나라였다. 2017년 아일랜드 성장의 1/4는 애플 아이폰 수출에 의한 것이었지만 실제 아일랜드는 아이폰을 단 하나도 수출하지 않았다. 

     

아일랜드 법인을 활용한 애플의 조세 회피 수법을 설명하는 인포그래픽 - EU 제공


저자는 통계 자료 집계 불이행을 정치적 동기에 의해 집계를 이행하지 않음으로 풀이한다. 이 집계 불이행 현상은 대표적으로 두 집단에 나타난다. 첫 번째, 최하층에 있는 사람과 집단에 대한 집계 불이행이다. 이로 인해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통계에 이들이 빠지게 된다. 두 번째, 집계되지 않을 능력을 가짐으로써, 과세와 규제로부터 수입과 부를 은폐해 더 많은 힘을 갖게 되는 최상층 사람들 또는 집단들이 있다. 집계 불이행 현상은 무작위가 아니라 부작위로 일어나는, 권력이 반영되는 현상이다. 저자는 이 집계 불이행을 막기 위해  ‘데이터 혁명’이라는 말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근본적인 정치적 변화’라고 치켜세운다. 이를 위해 다음 몇 가지 원칙을 주장한다. 


1. 데이터에는 반드시 모든 사람이 포함돼야 한다.

2. 모든 데이터는 모든 사람을 기술하기 위하여 가능한 세분화 되어야 한다.

3. 데이터는 가능한 모든 출처로부터 만들어져야 한다.

4. 자료 수집과 통계 생산에 책임을 가져야 한다.

5. 자료 수집과 분석, 세분화 데이터의 사용을 위한 인적, 기술적 능력은 충분하고 지속적인 재원을 통해 개선되어야 한다.

 

 이 원칙들은 저자의 주장을 관통하는 핵심이다. 토마스 피케티의 연구가 큰 호응을 얻은 건 방대한 시계열 데이터를 이용, 분석하여 주장의 근거로 삼았기 때문이다. 세분화된 질 좋고, 시기적절하고, 믿을 수 있는 데이터가 고소득 국가들에서 이용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집계 불이행의 문제가 발생한다.      

출생 등록 데이터, 선거인 명부, 센서스 데이터 등은 정치적인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정확히 집계되지 않을 위험성이 크다. 정치적인 이해에 따라 특정 집단이 축소되거나 과장되어 집계되는 건 매우 흔하다. 우리에게 영향을 크게 끼치는 정치 집회에 참여 인원수가 정치적인 이해에 따라 수십 배씩 차이가  나는 걸 목격해 왔다. 사회 안전망에서 보호해야 할 집단은 그 크기가 줄어야 지출 규모가 줄어든다. 한편 세금을 많이 부과하는 게 가능한, 부유한 집단의 경우 그 집단의 경제 소득 규모를 적절하게 줄여야 이들의 정치적인 지지가 필요한 정치가들의 정치적인 입지가 줄어들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역사적으로 나치 독일 정부의 유대인과 집시 제거 노력, 남아프리카 공화국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의 인종차별을 위해 센서스 목표가 확장되었던 게 이를 반증한다. 세계 최대 민주 국가라 인식되어온 미국에서, 미국 경찰의 총격으로 희생당한 사람들과 기타 살인 행위로 희생당한 집단 규모를 파악하기 위한 미국 사법통계국의 노력은 뉴욕시 경찰국 같은 거대 경찰국이 참여하지 않아 좌절되기도 했다. 이 몇 가지 예만 살펴보아도 집계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 나아가 저자는 세계 여러 정부가 집계가 불가능하다는 거짓말을 쉽게 늘어놓으며, 집계 불이행은 권리 박탈이다고 강하게 이야기한다. 집계 불이행은 배제의 문제이다. 집계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인식은 배후에 존재하는 권력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우리에게 조세 도피처는 낯선 단어가 아니다. 전직 대통령들의 비자금부터, 대기업 총수 일가의 도피 자금 등은 종종 보도되지만 곧 사라진다. 조세회피를 은폐하는 불투명한 기업회계, 주식시장들에서 소득이전이 가능한 이면에는 금융 정보 교환을 이행하지 않는 관행이 자리 잡고 있다. 최상층의 조세 납부 의무 회피는 국민 간 위화감을 조성하고 정치의 정통성과 대표성을 훼손시킨다. 사적 복수도 허용하지 않고 법집행을 정부에 위임하는 국민들이 법집행을 제대로 하지 않는 권력집단을 신뢰하고 따를까? 법치국가에서 법치가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인치가 성행하면 그 체제의 정당성은 훼손되고 붕괴될 위험이 있다. 2007년 미국 베어스턴스 은행 부도를 비롯한 금융 위기는 구제 금융을 비롯한 막대한 후폭풍을 가져왔고 세계 다수의 국민들이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2008년 월스트리트에서 대규모 시위대는 월스트리트 금융인들의 도덕적 해이와 반사회적 이익을 용인하는 금융시스템을 비판했지만 시위 이후 뚜렷한 타결책은 제시되지 못했다. 금융 비밀주의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더불어 다국적 기업의 조세회피 등의 조세 저항은 국가의 경제적 사회적 피해를 양산한다.      


 사회적 불평등을 어떻게 측정하고 개선해 나갈 것인가? IMF 금융위기 이후 우리 사회도 경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선거의 계절이 되면 양극화가 화두가 되지만 사회적인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불평등에 익숙해지고 체념하며 살아가는지 모른다. 우리는 지쳐 불평등을 과소평가하고 있는지 모른다. 저자는 지니계수는 사회적 불평등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니 팔마 비율을 이용하여 불평등을 개선하자고 제안한다. 괴롭지만 불평등을 인식하고 고쳐나가자고 주장한다. ‘노예에게 자유를 주어도 그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주인에게 귀속되고자 하려는 사회현상이 많았다’는 씁쓸한 역사적 기록을 본 적이 있다. 우리가 노예가 아니고 자유인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 때는 불편함을 불편함으로 남기지 않고 고쳐나갈 때가 아닐까? 


본사와 제휴한 외부 필자에 의해 서평이 작성되었습니다. 서평 글은 필자의 개인적 의견으로 본사의 견해와는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필자 : Nebula20

* <불공정한 숫자들> 북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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