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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디치 Nov 22. 2021

미래를 알고 싶다면 점술가를 찾는 대신 이 책을 읽어라

[편성준의 리뷰] - 『내일의 세계』


환경에 관심이 많았던 영국의 영화 제작자 알리 타브리지 감독은 멸종 위기 고래를 사냥하는 사람들을 취재하느라 일본 다이지라는 곳으로 잠입했다가 이게 단지 고래 사냥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상어 지느러미는 샥스핀이라는 고급 중국 음식 재료로 비싸게 팔린다. 이런 걸 굳이 먹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 음식을 먹는다는 건 맛 이전에 신분의 상징이기에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고래나 돌고래, 상어의 죽음만이 아니다. 최상위 포식자인 상어가 멸종되면 그 밑에 있던 포식자들의 개체가 늘어 결국에 물고기들도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알리 감독이나 환경운동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상어가 바다에 있는 걸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상어가 바다에 없는 걸 두려워해야 한다."


<내일의 세계> 표지


이번 책 안희경의 『내일의 세계』를 읽으면서 엉뚱하게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 《씨스피라시(Seaspiracy)》를 떠올린 건 '현대의 어업이 1분에 500만 마리의 물고기를 잡는다' 알리 감독의 말 때문이었다. 어떤 분야도 이런 지경까지 간 적은 없는데 이게 가능해진 건 '공장식'과 '기업화' 덕분이다. 1960년대에 시작된 이후 공장식 축사 시스템은 기후 위기를 가속화시킨 것은 물론 우리 식생활까지 아주 천박하게 만들었다. 전 세계인은 먹지 않아도 될 육고기와 물고기를 너무 많이 먹게 된 것이다. 덕분에 쿠바의 늙은 어부 산티아고가 작은 배를 타고 나가 청새치를 잡기 위해 72시간 사투하던 '노인과 바다'의 낭만은 더 이상 없다. 대신 어업회사에 들어가 월급을 받으며 대량으로 물고기를 싹쓸이하는 '회사원 어부'들이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이는 고기와 물고기만의 문제가 아니다. 2021년 말, 마스크를 쓰지 않고는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코로나 19 팬데믹이 벌써 1년을 훌쩍 넘겼다. 도대체 어쩌다 세상이 이 지경이 된 걸까 생각하다가 '인류 문명의 10년 생존 전략'이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눈이 번쩍 뜨였다. 


좋은 질문보다 중요한 건 

좋은 답변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 


이 책은 프롤로그만 읽어봐도 가슴이 뛴다. 전작인 『오늘부터의 세계』에서도 그렇듯이 안희경은 일곱 명의 지성에게 찾아가 삶의 조언자가 되어 달라는 부탁을 한다. 좋은 질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훌륭한 답변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을 찾아가야 한다는 전제조건의 충족이다. 다행히 안희경 정도의 지식과 통찰을 지닌 사람이 있으니까 당대의 석학들을 찾아가 깊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재러드 다이아몬드를 찾아간 안희경은 첫 질문부터 박살이 난다. 내심 기후 위기를 염두에 두고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위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졌는데 "가장 먼저 풀어야 할 위기란 없다. 전력을 다해 동시에 풀어야 할 주요한 위기들이 있을 뿐이다."라는 냉정한 답이 돌아온 것이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모든 나라가 안전해지지 않으면 아무리 초강대국일지라도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을 코로나 19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라고 말하며 우리에게는 세계화, 불평등, 핵무기 등 코로나 19보다 심각한 지구적인 문제들이 산재해 있음을 역설한다. 잘못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예상하고 준비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시급한 문제를 찾는 일을 그만두고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넛 경제학》이라는 책으로 재생과 회복으로 순환하는 경제 모델을 주창한 케이트 레이워스를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는 물질 소비를 쫓는 20세기 사고 속에서 기후는 망가지고 바다는 산성화 되었으며 오존층엔 구멍이 나버렸다고 말한다. 이런 총체적인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못된 사고방식부터 버리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의 말대로 자동차는 소유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비행기를 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나는 요즘 부상하고 있는 '공유 경제'나 '구독 서비스'가 새로운 세상을 여는 열쇠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자유주의와 능력주의는 정답이 아님을 깨닫자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걸까. 우리 세대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학교를 다니고 졸업 후에는 대기업에 취직하거나 엘리트가 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엘리트가 되면 행복할까? 미국 법조계와 학회에서 천재 중의 천재로 꼽히는 대니얼 마코비츠는 '능력주의는 허상'이라고 말하며 "만약 당신이 헤지펀드 직원이라면 돈은 많이 벌지 모르지만 하루 종일 매달리는 그 일이 당신에게 본질적인 보람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충고한다. 가치 있는 일이 아님을 알면서도 엘리트 집단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꾸역꾸역 일을 하며 사는 건 좋은 인생이 아니다. '녹색운동의 성자'로 불리는 평화·환경운동가이자 세계적인 생태 사상 연구 교육기관 '슈마허대학'의 설립자인 사티시 쿠마르는 더 나아가 대학 졸업생들에게 "세상 속으로 가라. 그러나 일자리를 쫓지는 말라"라고 당부한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해 대기업에 취직하는 대신 일을 할 때 기분이 좋아지고 스스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찾거나 창업을 하라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더 좋은 인생을 사는 방법이니까. "그냥 집에서 직장을 잡고 각종 청구서 요금을 내다가 죽는 것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맙시다"라는 그의 일갈은 소나기처럼 답답하던 가슴을  조금은 씻어주는 듯했다.  

아내가 인생 책으로 꼽는  『오래된 미래』의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안희경과의 인터뷰에서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고기와 생선을 먹게 되었다"고 말하며 "에너지 발자국을 줄여야 할 이 시기에 사과와 감자는 매일 전 세계를 날아다니고 있어요."라고 탄식한다. 그의 말대로 예전엔 누구도 매일 먹는 식자재를 배 타고 나가서 사 오지는 않았다. 그런데 삶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더니 결국은 모든 생활을 다국적 기업에 의지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는 말한다. 삶의 기쁨과 즐거움을 되찾으려면 신자유주의를 멈추고 우리에게 맞는 속도와 규모를 유지하자고. 세계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살던 '마을'이라고. 


코로나 19는 정말 나쁘기만 한 걸까?  


우리는 어느덧 5G와 자율주행 자동차, AI(인공지능)의 시대를 살게 되었다. 삶의 속도는 백 년 전에 비해 수십만 배는 빨라졌다. 그러나 늘어난 속도만큼 행복의 양도 커졌을까? 어쩌면 코로나 19는 우리의 삶에 걸린 좋은 브레이크일 수도 있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코로나 19가 주는 희망적인 징후로 사람들이 다시 부엌에서 빵을 굽기 시작했음에 주목한다. 한 번도 뭔가를 기를 생각을 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텃밭을 가꾸고 땅과 연결된 삶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세상에 오로지 좋은 게 없는 것처럼 오로지 나쁜 것도 없는 것이다. 속도와 경쟁만을 추구하던 사람들의 삶이 변하는 것을 보면서 조한혜정 교수는 이 기회에 '사냥꾼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자'고 말한다. 지구 반대편에서 오는 식료품 살 돈을 버느라 같이 밥을 차려 먹고 서로를 돌보는 시간을 생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가 '마을'에 대해 자꾸 얘기하는 것도 성장 위주의 사고에서 벗어나 가까운 사람들끼리 스스럼없이 자주 만나면서 서로 돕는 기쁨을 되찾자고 말하고 싶어서다. 



지금보다 적게 쓰고서로 돕고 연대하면서 사는 삶으로


세계의 석학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주고받는 안희경을 상상해 본다. 독후감을 쓰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점차 빠져들어서 메모를 하는 것도 잊고 계속 책장을 넘기기만 하는 경험을 했다. 이런 책은 한 번 읽고 휙 던져버리는 게 아니라 사전처럼 옆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다시 펼쳐 보아야 한다. 안희경은 첫 인터뷰이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말한 것처럼 세상엔 큰일, 작은 일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우선순위는 있다고 결론을 내리며 이 책이 당신의 생각을 흔들기를 바란다고 밝힌다. 


우리가 코로나 19 덕분에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삶의 조언을 구하기 위해 석학들을 찾아가 질문을 던지는 일은 점술인을 찾아가는 것만큼 허망하지는 않다. 적어도 안희경의 책을 통해 우리는 지금 당장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지금보다 적게 쓰고, 서로 돕고 연대하면서 사는 삶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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