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자의 리뷰] - 『내일의 세계』
나는 지난 3월부터 고기를 먹지 않는다. 같은 달 메디치미디어에서 주최한 환경 포럼에서 가수이며 작가 요조가 “환경을 위해 개인이 하는 행동은 대단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 개인들이 모이면 큰 힘을 발휘한다”는 발표를 듣고 그동안 마음으로 품고 있던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로 한 것이다
몇 해 전 나는 남편과 전국의 스마트 팜을 돌아다니며 취재하고 글을 썼다. 이 때 우리는 선진적인 기술로 농사를 짓고 축산업을 하는 사람들을 여럿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이 때 만난 한 축산기술 업체는 소의 공태기(임신을 하지 않은 상태)를 하루라도 줄이기 위해 개발한 기술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다양한 표현으로 그 기술을 칭찬했지만 마음 한편은 무척 불편했다. 공장식으로 축사를 짓고 그 안에 소, 돼지, 닭을 몰아넣고 그들의 생리와는 관계없이 다양한 기술로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게 한다. 이 동물에게 먹이기 위한 사료를 생산하기 위해 숲의 나무를 베고 옥수수를 기른다. 숲이 사라지고 그곳에서 살던 동물들은 갈 곳을 잃고 인간이 사는 곳까지 오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약한 종은 멸종되고 인간에겐 해로운 동물의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도달한다. 2년 동안 우리를 보이지 않는 감옥에 묶어둔 코로나19 역시 이렇게 우리에게 온 것이다.
이런 상관관계를 알게 된 후 나는 공장식 축사에서 사육된 고기를 먹는 일이 불편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3월 불편함을 끝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세계적인 석학 7명이 말하는 지금 인류 문명의 생존 전략이 담긴 『내일의 세계』(안희경 지음)를 읽고 나의 이런 실천은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내일의 세계』 지금 여기, 인류 문명의 10년 생존 전략을 말하다>는 세계인의 스승이라 불리는 7명의 석학을 재미 저널리스트 안희경 씨가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상황이 아니었다면 만나서 진행되었을 이 인터뷰는 대부분 ‘줌’이라는 온라인 영상회의 서비스를 이용해 진행되었다.
안희경 씨가 만난 사람은 문화인류학자이며 지리학자 재러드 다이아몬드, 도넛 모델의 창시자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 경제학자 다니엘 코엔, 로컬 경제 운동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법학자 대니얼 마코비츠,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 평화운동가이며 환경운동가인 사티시 쿠마르다.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이들은 지구는 현재 위기 상황이며 지금 당장 변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우리에게 미래를 없다고 단언한다.
책은 재러드 다이아몬드와의 인터뷰로 시작된다. 저자는 세계에는 다급하게 대응해야할 위기 네가지 즉, 핵무기 위험, 기후위기 변화, 자원 고갈 문제, 불평등이 있다. 이 중 다른 세 가지를 제치고 가장 먼저 돌파해야할 것이 무엇이냐고 재러드 다이아몬드에게 물었고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이 대답을 들은 저자는 뒷목이 뻣뻣해지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하고 생각을 거듭하고 여러 차례 수정하여 질문했을 텐데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그의 질문 자체를 부정한 답을 했다. 그만큼 우리는 위기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위기란 말인가?라고 의문을 갖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람이 힘들게 할 일은 로봇이 하고 원하는 물건은 클릭 몇 번 만으로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와 내 집 앞에 도착한다. 팬데믹 상황에선 등교도 출근도 하지 않고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기만 하면 되는 이런 세상이 말이다. 그러나 이 모든 편리함이 현재 우리의 미래를 가로막고 있다.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는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한편으론 다양한 소비로 엄청난 쓰레기를 배출했다.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는 정말 지구를 위하고 싶다면 ‘나의 편안함을 버리자’고 말한다. 기차와 비행기를 대출받아 살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자동차는 왜 대출을 받아 사야 하는가? 전기자동차가 환경을 위해 대단히 좋은 발명품인 듯 이야기하지만 결국 전기자동차는 이전의 자동차를 대체할 상품이며, 이것은 새로운 소비를 만든 것에 불과하다며 진정한 ‘그린 뉴딜’ 실현은 소유하지 않는 소비에 있다고 강조한다.
경제학자 다니엘 코엔은 코로나19 위기를 서비스 경제의 위기로, 21세기가 맞는 첫 번째 위기라고 말하며 그 해법은 100년 전으로 돌아가 잃어버린 문명을 과정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고 국가도 나서서 힘을 발휘하고 한다.
헬레나 노르베르 호지는 기를 쓰고 기술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하며 “지금, 우리가 사람을 로봇으로 대체하면 실업과 더 많은 자원 소비, 더 많은 에너지 소비를 창조하는 겁니다. 이렇게 사람으로 북적거리는 행성에서 굳이 그렇게 할 상황이 아니에요.”라며 인간에게 맞는 속도를 유지하고 삶을 돌보기 위해 규모를 줄이는 방법을 찾아내 성장 서사에서 벗어나자고 조언한다.
불평등 문제의 핵심은 오직 엘리트에게만 유리한 쪽으로 사회가 ‘조작’되고 있는 현상에 있고, 능력대로 공정하게 보상받는다는 ‘능력주의’가 사실은 불평등을 재생산하고 있다는 법학자 대니얼 마코비츠의 지적은 우리 사회가 반드시 새겨들어야 하는 대목이다.
국내 학자로는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 교수가 인터뷰이가 되었다. 제주에서 더불어 사는 그는 사회가 ‘함께 돌보고’ ‘함께 살아남아야 된다’고 말하며, 국가라는 정치체가 무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더 많은 역할을 하라고 일갈했다. 평화운동가 사티시 쿠마르는 전 인류는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사랑하고 단순하게 살 것 당부했고, 서면으로 생각을 전달한 달라이 라마는 ‘태어남이 있으면 소멸한다’는 단순한 원리를 받아들이라고 우리에게 말했다.
이 책을 다 읽고 덮을 때엔 대부분 가슴에 큰 돌 하나가 얹혀 진 것 마냥 무거울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의 행동과 소비는 괜찮은지 생각하게 될 것이며 각오를 다지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실천법을 찾을 것이다.
동네 친구 중에 비건이자 엄격한 제로웨이스트 실천자인 배우 임세미가 있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다양한 방법으로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비닐을 최소화하기 위해 재래시장으로 가서 흙이 묻은 파를 어떤 포장도 없이 장바구니에 넣어 집으로 간다. 임세미 씨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던 중 사이좋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엄마 소와 아기 소를 보면서 동물도 인간과 다르지 않게 교감한다는 것을 느끼고 채식을 시작했다고 한다. 동물권을 위해 시작한 채식은 자연스럽게 환경 문제에 이르게 되었고 현재는 다양한 환경 활동으로 많은 사람에게 모범이 되고 있다.
이처럼 느끼고 깨달았다면 마음먹은 것을 행해야 한다. 나에 좋은 책이란 내 삶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나를 흔들어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게 만드는 책이다. 『내일의 세계』는 그런 면에서 좋은 책이다. 책장을 덮으며 나는 ‘모두 함께 조금 느리게 살고 덜 소비하며 덜 버리는 것’이 지금 당장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행했던 온라인 구매를 좀 줄이자고 다짐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