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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hoon Lee Apr 22. 2018

#6. 프로세스 표준화 - 1

의료프로세스는 표준화 가능할까?

이번에는 의료정보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분야인 의료 프로세스의 표준화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프로세스는 워낙 범위가 넓고 이것저것 관련 있는 이슈들도 많은지라 2회로 나눠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필자의 박사학위가 산업공학인지라 익숙한 분야이기도 합니다. 사족으로 연구라는 것을 하다 보면 이래저래 자신의 베이스가 어딘가에 따라 방향이 결정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필자의 지도교수님은 응용통계와 통계적 공정관리를 오래 연구하셨는데 요새 어느 날 생각해보면 의료정보학 분야에서 제가 결국 비슷한 걸 하고 있는 것 같은......


의료정보학의 길을 가게 될줄은 꿈에도 몰랐던 산업공학 박사과정시절


저번 장에서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에 대해 개략적으로 소개했었습니다. 그런데 상호운용성이라는 것이 상당히 포괄적인 개념이다 보니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생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단 의료정보시스템에서 상호운용성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은 의료 용어 체계 표준화입니다. 각 기관, 의료인, 문서 사이에 용어 체계가 통일되어 있지 않으면 상호운용성은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그보다 상위 단계로 애플리케이션 간의 인터페이스의 표준화, 데이터 모델의 표준화 등을 상위 단계의 상호운용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다음으로는 지식 단계에서의 표준화가 있는데, 예를 들어 임상 가이드라인, 의사결정지원시스템(CDSS)의 규칙, 환자 교육 문서 등의 표준화가 있습니다. 이 단계에서 많이 활용되는 정보학 도구가 그 유명한 의료 온톨로지이며 이미 작성된 지식 등으로부터 정보를 추출하는 도구로는 자연어 처리 (Natural Language Processing) 등이 있습니다. 


이러나저러나 결국은 의료정보학의 발전은 정보의 표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일단 정보가 표준화되지 않으면 커뮤니케이션에서 수많은 에러가 발생하는데 이 차이를 좁히는 일 때문에 (즉 말이 제대로 통하게 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쏟는다는건 정작 부가가치가 있는 핵심적인 일을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정보를 표준화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사람이 하는 일, 즉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표준화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정보라고 하는 것은 현실세계로부터 수집되는 것이기에, 업무가 표준화되면 그로부터 수집되는 정보도 표준화되며, 정보가 표준화되면 그에 따라 하는 일도 표준화되고 이 둘은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관계가 있습니다. 다른 말로 의료정보는 의료 프로세스 표준화의 가장 강력한 도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용어표준화 안되어 망한 프로젝트의 좋은 예시


업무든지 제품이든지 표준화가 이루어지면 그 표준으로부터 실제로 얼마나 다른가를 (Variation) 측정할 수 있고 이는 곧 정량적이고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만약 어떤 새로운 방법을 시도했는데 당체 그 결과가 좋은지 나쁜지 알 수가 없다면 그게 좋은 방법인지 검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반대로 결과를 극도로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다면 그 결과를 빠르고 정확하게 반영하여 개선을 할 여지가 있으며 이런 아이디어에 기반하여 한동한 히트를 친 산업공학 방법론이 식스시그마입니다.


대체 왜 휘발유이름이 시그마식스였는지 대학교 가서야 알게된..


아무튼 업무를 표준화함으로써 생산성을 극대화하고 제품/서비스의 품질을 증진한다는 개념은 지난 100년간 산업 전체, 그리고 지구인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을 만큼 혁신적인 것이었습니다. 당장 인류가 하루도 빠짐없이 자동차를 타고 이동할 수 있는 이유는 표준화에 기반한 대량생산방식으로 인해 자동차의 가격이 극적으로 저렴해졌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에는 말이 있었지만 원체 비싼 동물이고 관리하기도 어려운지라 (다 큰 말이 하루에 먹고 싸는 양은 사람과는 비교도 안되게 많습니다 그걸 누가 치워) 소수의 부자들만이 이동수단으로 말을 보유하고 타고 다녔습니다. 그럼 대체 왜 표준화했다고 자동차 가격이 확 내려갔는가 하면 아래의 그림을 일단 보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그림은 1800년대 후반 수작업으로 자동차를 만드는 테크니션의 모습입니다. 이 시대에는 손으로 한땀 한땀 자동차를 만들었고 진정한 핸드메이드 명품 생산속도는 극도로 느리며 품질도 매우 나빴습니다. 역설적으로 자동차를 처음부터 끝까지 수작업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독보적인 기술이며 이을 보유한 사람은 좋은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번째 그림은 우리에게 익숙한 자동차 컨베이어 벨트입니다. 컨베이어 벨트가 대량생산방식의 아이콘이긴 하지만 사실 생산성의 극적인 상승을 가져온 건 컨베이어 벨트가 아닌 작업표준서입니다. 예전에는 임금 10을 받던 기술자 1명을 썼다면 그 돈으로 임금 1을 받는 단순 작업자 10명을 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왜 임금을 그렇게 적게 받냐 하면 작업표준서가 생기면서 각가의 사람이 하는 일이 매우, 매우, 매우 단순해졌기 때문입니다. 저숙련 기술자들도 그날 아침 와서 작업표준서의 그림을 보고 그대로만 하면 되니까요. 초창기의 작업표준서는 아예 그림만으로 그려진 경우도 많았는데 어차피 단순작업자들이 대부분 문맹인지라 글을 읽을 일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같은 돈으로 저숙련 노동자 10명을 써서 쉽고 빠르게 자동차를 마구 찍어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저숙련 저비용 노동자 추구의 너무 나간 예


두번째 그림과 세번째 그림은 어떤 의미에선 같은 개념입니다. 사람 대신 기계가 들어간 것만 다를 뿐입니다. 사람의 일을 표준화할수 있다면 그런 반복적인 일을 육체적인 부분은 로봇이, 지식 부분은 컴퓨터가 대체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로봇이 힘만 셀뿐 멍청해서 정말 아주 반복적인 일만 했다면 이제는 알고리즘의 발전으로 복잡한 일도 하고 심지어 지가 알아서 공부하기도 한다는데 엄마가 그렇게 잔소리해도 안했는데, 이것이 소위 4차 산업혁명라고 하는 현상의 핵심 동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자동화가 능사는 아니랍니다


이제 공장 얘기는 그만하고 의료의 발전 과정을 보도록 합시다. 과학혁명 이전 시기의 의료인들의 일은 매우 노동집약적이었고 기술과 지식은 도제식으로 전수되었습니다. 재미있게도 이 시기의 의료인의 사회적 지위는 동서양을 불문하고 매우 낮았으며 서양에서는 이발사나 장의사 등의 직업을 겸업했다는 것도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전문직 투잡의 원조



첨단 검사장비, 수술장비 등의 하드웨어적인 면을 떼고 소프트웨어적으로 보았을 때 현대 의료의 주류를 이루는 것은 근거중심의학이라고 합니다. 근거중심의학은 의료정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근거중심이라는 말 자체가 의료인이 방대한 의료지식 중에서 자신의 환자에 주어진 문제에 관련된 정보를 발견하고 자신에게 필요한 문헌을 수집, 유지한다는 뜻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의료정보/지식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이 가능해야 합니다. 이를 실제적으로 구현한 것이 표준 임상 가이드라인 (Clinical guideline)이며 의료정보학은 이 가이드라인들을 전자화하고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프로그래밍 언어 형태로 변환하며 의료 IT 시스템상에서 실행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근거중심의학을 지원해 왔습니다. 이는 단순히 가이드라인을 전자화된 문서로 관리하는 것뿐 아니라 전자화된 처방 등을 지시할 때 각 단계의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임상의사결정규칙 (Clinical decision support rule)등을 개발하고 가이드라인 개발언어 (Guideline definition language), 의료 온톨로지 (Medical ontology) 기반의 지식 저작, 지식관리 및 등의 관리공학 등의 이론적 토대를 만드는 일도 포함합니다. 이래저래 의료정보학이 하는 일은 실로 광범위합니다.



근거중심의학이 단순하게 곧 표준화는 아니라고 합니다만 근거중심의학의 중요한 목표 중의 하나는 Patient care의 Variation을 줄이는 것입니다. 즉 이론적으로는 동일한 증상과 조건의 환자가 어느 의사에게 가더라도 그 시점에서 알려진 최선의 치료를 받는 것을 추구합니다. 물론 이 짧은 한 문장 안에는 엄청나게 많은 의미와 역사적으로 치열한 논쟁거리들이 한가득 담겨있습니다. 여기서 말 한마디 잘못하면... 타이핑하는데 벌써 손이 떨려서 덜덜덜


여기까지 서론을 엄청 길게 얘기했는데, 결국 이번장의 핵심은 이 질문입니다.


* 궁극적으로 의사가 하는 일을 표준화할 수 있을까?


만약 이 질문의 답이 예스라면 다음 질문도 할 수 있습니다.


* 표준화가 가능하다면 자동화도 가능하지 않을까. 아무리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라도 잘 정의해서 쪼개면 위의 자동차 생산작업처럼 나눠서 할수 있지 않을까. 궁극적으로 컴퓨터와 로봇한테 그 일을 시키고 인간은 백수가 노숙자가 되어 인생을 하수도 같은데 숨어서 쥐 잡아먹으며 즐기면 되지 않나.


이런 얘기 이미 많이 들어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요새 검색창에 4차 산업혁명이라고 치면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네마네 가열찬 토론들이 밤낮없이 이뤄지고 있는걸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의사들에게 이 질문을 하면 백이면 백사람 답이 다 다른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질문은 요새 알파고때문에 인공지능이 확 떠서 화제가 된 것이지 사실 새로운 질문도 아니며, 이제부터 얘기할 Brent James는 30년 전에 이 해답을 찾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몰몬 선교를 한국에 다녀온 연유로 한국말도 하시는 닥터 제임스


Brent James는 의료분야에 통계적 관리방법을 도입하고자 했던 초창기의 선구자중의 하나이며 오랫동안 인터마운틴의 Chief Quality Officer로 있다가 작년에 퇴임하였습니다. Brent는 아이다호의 시골마을에서 자랐는데 어렸을때부터 숫자에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여섯 형제의 맏이였던 어린 Brent는 많은 시골 아이들이 그렇듯이 도랑에 물 대는 과정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야 했는데, 이 시간을 때우기 위해 수학책을 가져와 재미있게 읽었다고 합니다. 말이돼? 대학에서도 학부를 물리학을 선택하고 물리학도의 길을 가기로 했었는데, 어느날 랩실에 평소에 좋아하는 물리학과 포닥이 와서 얘기하기를 어느 학교든 패컬티 자리에 줄이 200명씩 기다리고 있으며 자신은 이 길을 간 걸 후회했다는 얘기를 합니다. Brent는 이로 인해 진로를 바꾸고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 포닥이 사람하나 구했네요


농사일이 너무 힘들어서  책읽는게 좋았을수도 있습니다 (이 동네 뜰 방법은 공부뿐)


의과대학을 졸업한 Brent는 Cancer surgeon으로 커리어를 시작하지만 이내 자신이 연구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National Cancer Institute에서 연구를 시작합니다. 얼마 후 Brent는 유타로 돌아와 인터마운틴으로 옮겼는데, 그 당신 인터마운틴은 전미에서 EMR을 갖고 있던 몇 안되는 병원 중의 하나였기에 의료분야에 데이터 기반 수학적 방법론을 적용하는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Brent의 연구에서 중요한 터닝포인트는 Pulmonologist였던 Alan Morris와의 벤틸레이터 프로토콜의 개발입니다. 1980년대에 Morris는 미국에서만 매년 수천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던 ARDS (Acute Respiratory Dystress Syndrome) 환자의 치료에 있어서 벤틸레이터의 효과를 검증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문제는 비슷한 환자에 대해서 의사들이 벤틸레이터를 적용하는 수준이 각각 너무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Brent는 Morris와 함께 프로토콜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 과정에서 그는 항상 "중요한 것은 매번 똑같이 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합니다. 그렇게 수차례 시행후 다시 프로토콜을 수정하고 이를 반영한후 다시 결과를 분석하고 그 과정을 반복합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1980년대에도 Patient outcome의 Tracking이 가능했던 인터마운틴의 의료정보시스템 덕분입니다. 결국 인터마운틴의 ARDS survival rate는 40%까지 올라가는데, 메사추세스 일반병원이 그 당시에 조사한 전미 평균은 10%에 불과했었습니다.


이 성공에 힘입어 Brent는 이 방법론을 다른 증상이나 질환에 적용한 연구를 50개까지 늘리게 됩니다. 또한  인터마운틴 내에서 이를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기반을 만들게 됩니다. 그 중의 하나는 교육으로서 ATP (Advanced Training Program)이라 불리는 이 프로그램은 인터마운틴 외부에서도 많은 수강생들이 찾아와 배우고 유사한 과정들이 다른 병원들에도 만들어집니다. 또 하나는 Clinical program이라 불리우는 특별 조직입니다. 이 프로그램들은 Cardiovascular, Oncology 등 각각의 세분화된 분야에 따라 의사, 간호사, 정보학자, 관리자 등으로 구성되어 근거중심의학과 프로토콜 개발을 추진하는 팀입니다. 1997년에 최초로 Cardiovascular 프로그램이 만들어진 이래 현재는 10개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과별 특성들을 잘 잡아내서 사진으로 찍어놨습니다


모든 클리니컬 프로그램은 공통적으로 크게 네가지 목표가 있습니다.


1. 베스트 프랙티스 검색과 발굴

2. Clinical variation을 최소화

3. Clinical outcome을 극대화

4. 의료비용의 절감


그리고 이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의료정보학의 역할이 필수적입니다. 어째 이번 장에서는 정보학 얘기는 하나도 안한 것 같은데 다음 장에서는 의료정보학이 표준화와 어떤 관계가 있으며 어떻게 기여해왔는지 더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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