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깊은 절망의 늪 속에서 내가 주께 부르짖습니다.
주여, 내 소리를 들어 주소서. 주의 손길을 바라며 애타게 부르짖는 나의 간구에 귀를 기울여 주소서.
주여,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낱낱이 다 헤아리신다면, 누군들 감히 주님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주께서는 우리를 용서하는 분이시니, 우리가 마땅히 주님을 경외합니다.
주여, 내가 애타게 주님을 바라고, 내 영혼이 간절하게 주님을 기다립니다. 나는 내 모든 소망을 오직 주님의 말씀 위에 두고 있습니다.
파수꾼이 아침 오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내 영혼이 더욱더 주님을 기다립니다. 진실로 파수꾼이 아침 오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내가 더욱더 애타게 주님을 기다립니다.
이스라엘아, 너희는 주를 바라고 주께 소망을 두고 살아라. 오직 주께만 한결같은 인자하심이 있고 온전한 구원이 있도다.
주께서 친히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그들의 모든 죄에서 구원해 주시리라.
쉬운 성경으로 읽는 시편 130편
아직 해가 뜨기 전의 부엌은 늘 조금 더 차갑다.
찬 물로 손을 씻으면서 나는 매일 같은 자리에 선다.
커피포트를 올려두고 조금 남아 있던 어제 밥을 덥히기 위해 전자레인지 문을 연다.
전자레인지 안에서 돌아가는 밥그릇을 바라보며 오늘은 어떤 말을 삼켜야 할까 생각하게 된다.
이른 시간에 일어나 움직이게 만드는 건 사명이나 성실 같은 단어가 아니라 그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어떤 간절함에 가깝고 무너지는 하루를 조금이라도 덜 무너진 채로 붙들어보려는 아주 작은 의지, 말 그대로 살아보려는 마음일 때가 많다.
예전에는 하루가 시작될 때마다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조금만 더 버티면 괜찮아질 거라는 막연한 낙관 같은 것.
하지만 그것은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벗겨졌다.
어떤 계절에는 삶이 도무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느낌이 들었고 바깥은 그렇게 눈부시게 변화하는데 나는 자꾸만 제자리로 아니 더 깊은 자리로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건 바로 그 내려앉는 감정조차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말을 꺼내는 순간 나는 약해지는 것 같았고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나면 그 사람의 말에 휘둘릴 것 같았다.
나는 조용히 무너지고 싶었고 그 무너짐을 가능하면 아무도 모르게 하고 싶었다.
그런 시절에는 하나님 앞에서도 침묵하게 된다.
기도라는 형식을 흉내 내는 것조차 버거웠고 입술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무언가가 내 안에서 가만히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게 바로 ‘깊은 곳’이었을까.
누가 물으면 그게 뭔지 말할 수는 없지만 내려가는 마음엔 소리가 없고 대신 바닥에 가까워질수록 뭔가 더 정직해진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스스로를 자주 책망했다.
더 잘할 수도 있었는데 좀 더 강할 수도 있었는데 왜 이렇게밖에 못 살아왔을까,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이유가 혹시 나 때문은 아닐까, 그런 생각들이 낮은 소리로 하루 종일 귓가를 맴돌았다.
어떤 날은 교회 근처를 지나가다가 문득 문을 열고 들어가 벤치에 앉아본 적도 있었다.
아무 예배도 없고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나는 아주 오래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그 시간이 기도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하나님 앞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기도라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게 울고 나면 눈이 조금은 시원해지고 하나님이 나를 다시 보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날은 이상하게 마음이 덜 무거워졌다.
삶이 곧바로 바뀐 건 아니었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조금씩 하나님을 향한 기다림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어느 날, 성경을 펴다가 손에 걸린 페이지가 있었다.
글자들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딱 한 문장이 마음을 건드렸다.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누가 서리이까.”
그 말은 이상하게 나를 혼내는 문장이 아니었고 오히려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네가 설 수 없는 자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기억하지 않기로 했다.”
그 문장을 꾹 눌러가며 읽던 날 나는 아주 오랜만에 진짜로 살아 있다는 기분을 조금 느꼈다.
용서를 받았다는 감정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졌다는 실감.
그 실감 하나로 나는 다음 날 아침도 부엌 불을 켜고 커피를 내리고 밥을 데우는 일을 계속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삶은 여전히 버겁고 기도는 자주 흔들리고 기다림은 끝이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안다.
내가 무너졌던 그 깊은 자리, 그곳에 하나님은 이미 나보다 오래 계셨다는 것을.
그분은 기억하지 않기로 하셨고 나는 기다리기로 했다.
무언가 변하는 걸 기다리기보단 그 기다림 안에서 내가 다시 조금씩 살아나는 걸 기다리기로 했다.
부엌 불이 켜지는 순간마다 나는 그 어두웠던 시간 속에서 작은 희망 하나가 아직도 꺼지지 않았음을 마음속으로 다시 확인한다.
그리고 그걸 ‘믿음’이라고 불러도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