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김 없이 덮이도록

시편 32편을 묵상하며

by 참지않긔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셀라)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두르시리이다 (셀라)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재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가지 아니하리로다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


시편 32편을 들으며








언제부턴가 저는 죄라는 말 한 마디를 제 입술 안쪽에서 조용히 굴려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될 만큼 낡은 고백이지만 주님의 말씀 앞에 마주할 때마다 그 낡음이 낯설어져 마음 한켠이 다소간 저릿해지곤 합니다.

시편 32편을 조용히 펼치면 어디선가부터인지 제 몸 안쪽에서 묵직한 무언가가 미약한 울림으로 되살아납니다.

허물이 사함을 받고 죄가 덮여진 사람이 참으로 복되다는 이 한 마디 앞에서 저는 내내 부끄럽게도 제 안의 말 못할 조각들을 더듬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를 감추려 합니다.

저 역시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어린 시절, 나무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주일 설교를 듣던 그때에도 설교자께서 죄를 설파할 때마다 저는 속으로는 늘 숨길 구석부터 찾았던 사람입니다.

제 속살의 어두움을 온전히 꺼내놓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편은 단호합니다.

숨김은 살길이 아니라는 것을 이 짧은 노래는 단숨에 가르쳐 줍니다.

저는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상하리만큼 안도합니다.

숨김이 아니라 드러냄 위에만 주님의 손길이 머문다는 사실이, 때로는 제 비겁함을 드러내면서도 저를 구원으로 이끄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스스로의 고백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지금도 종종 생각해 봅니다.

죄를 고백한다고 입술로는 말하면서도 그 안쪽에 꼭꼭 싸매둔 자투리들이 얼마나 많은지 주님은 이미 다 알고 계실 텐데도 저 혼자만 모른 체하며 묵은 돌덩이 하나쯤 가슴 속 깊은 곳에 눌러두고 살았습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숨기지 않았더니 주께서 사하셨나이다.

그 한 마디가 저를 무너뜨리고 무너진 자리를 부드럽게 덮으십니다.

저는 이 단순한 질서를 늘 마음속에 새기려 애씁니다.

드러내야 비로소 덮으신다는 이 순서를 거꾸로 뒤집으려 할 때마다 제 안의 뼈마디는 서서히 삭아 들어갑니다.




제 몸의 작은 신음들을 저는 이제야 조금은 알 듯합니다.

낮에는 괜찮은 척하지만 밤이 되면 살짝 열려버리는 마음의 틈새로 스며드는 죄의 그림자들이 있습니다.

다윗은 뼈마디가 쇠하였다 말하지만 저는 그 말이 결코 비유가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죄는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죄는 살을 먼저 파고들어 뼈까지 번집니다.

그 부끄러운 늪 위에 무겁게 내려앉은 주님의 손길이 없다면 저는 더 깊은 숨구멍까지 썩혀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손길은 숨긴 죄 위에는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저는 이 짧은 시편 안에서 가장 또렷하게 배웁니다.




주님께서 덮어주시는 은총은 결코 값싼 위로가 아니라는 것을 저는 오늘도 잊지 않으려 애씁니다.

폭우가 쏟아질지라도 그에게 이르는 자는 결코 휩쓸리지 않으리라 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허물을 지혜롭게 감춘 자에게 주시는 것이 아니라 허물을 주님 앞에 겁 없이 풀어놓은 자에게만 허락됩니다.

저는 이 간명한 진리를 제 몸으로 더듬으며 다시 입술로 기도문을 삼아봅니다.

제 안의 묵은 그림자들이 더 이상 제 등을 눌러 앉지 못하도록 주님 오늘도 제 마음 가장 깊은 곳까지 당신 앞에 내어드리오니 제 허물이 드러난 자리에 주님의 덮으심이 머물게 하소서.




저는 이 노래를 마음에 품고 있으면 종종 제 삶이 얼마나 교묘한 숨김으로 짜여 있는지 스스로도 놀라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를 덮을 구석을 마련해 둔 채로 살아갑니다.

낮에는 평안한 얼굴을 하고 밤에는 스스로조차 애써 외면한 부끄러움이 마음 속 가장 깊은 틈새를 파고듭니다.

다윗의 고백은 그 얇은 위장을 허물어뜨립니다.

죄는 숨긴다고 덮여지지 않음을, 숨김은 오히려 뼈마디에까지 고요히 스며들어 언젠가 반드시 몸을 상하게 함을 저는 이 노래를 통해 배웁니다.




죄는 눈으로 보이지 않아도 몸에 새겨집니다.

스스로 아무렇지 않다 여기며 마음을 달래도 어느 순간 알 수 없는 피로가 손끝과 발끝을 타고 번지듯 다가옵니다.

내 탓이 아닐 거라며 핑계를 삼아 돌려보내도 뼈 안쪽은 이미 무겁게 눅눅해져 버립니다.

다윗의 ‘신음’이란 단어를 읽을 때마다 저는 저 자신에게 묻습니다.

내 안에는 아직 신음할 용기가 남아 있는지, 나의 뼈마디가 여전히 주님의 손길에 반응할 만큼 연약한지, 혹은 이미 굳어버린 채로 죄마저 무디게 덮고 있지는 않은지.




주님의 손이 주야로 무겁게 나를 짓누르신다는 이 구절이 저에게는 위협이 아니라 위안으로 다가옵니다.

주님이 제 어깨에 올려두신 그 무게가 없다면 저는 끝내 숨김 속에 잠겨 제 안의 허물을 두 번 다시 꺼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숨김은 사람의 입술을 닫게 하고 닫힌 입술은 언젠가 마음까지 봉인합니다.

다윗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죄를 숨기면 사람은 살아 있는 듯하되 뼈마디는 조금씩 조용히 삭아갑니다.

그리고 어느 날엔가 신음할 수 있는 힘마저 사라집니다.




저는 이 사실이 두렵습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이 주님께로 향하는 길이 되어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무겁게 내려앉은 손길에 마음이 납작해질수록 저는 오히려 저의 부끄러운 숨구멍들을 하나하나 헤집어 당신 앞에 내놓을 수 있음을 압니다.

덮음은 드러냄 위에만 머무른다는 이 단순하고도 잔인한 약속이 매번 저를 다시 살려냅니다.




폭우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이르는 자는 쓸려가지 않으리라 하신 그 말씀 앞에서 저는 고개를 떨굽니다.

허물을 덮은 척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이 약속이 허공의 메아리에 불과하겠지만 부끄러운 내 살갗을 끝내 꺼내어 보이는 자에게는 그 약속이 벼락 같은 구원이 됩니다.

저는 이 구원의 단단함을 감히 스스로 증명해 본 적은 없으나 다만 오늘 하루라도 이 마음이 다시 잠기지 않게 하여 주시기를 내 안의 돌덩이를 하나라도 더 꺼내어 주님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게 하시기를 간구할 뿐입니다.




저는 오늘도 묵은 돌멩이 하나를 조심스레 마음에서 떼어내어 봅니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면 작디작은 조각이지만 그것이 제 안에 오래 눌러 있었을 때는 숨결 하나마저 무겁게 눌러 놓았습니다.

다윗은 주께 내 죄를 숨기지 아니하고 자복하였더니 주께서 내 허물을 사하셨다고 노래합니다.

저는 이 고백이 언제나 새삼스럽습니다.

사함은 은혜라 하지만 그 은혜가 어디서 시작되는지를 잊고 살기가 얼마나 쉬운지요.

제 허물이 드러나야만 덮어 주신다는 너무도 명백한 순서를 놓치면 저는 금세 죄를 덮은 척하며 그 위에 내 힘으로 위태로운 안전을 세우려 들곤 했습니다.




그러나 숨김은 복이 아니라는 것을 저는 매번 고백하며 배웁니다.

죄가 사함을 받아야만 죄가 드러난 자리에만 주님의 덮음이 임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쉽지만 몸으로 사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짧은 시편이 언제나 제 마음을 더듬어 묵은 어둠을 비추도록 허락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드러나지 않은 허물 위에는 은혜의 그늘이 머물지 않음을, 숨긴 죄는 곧장 제 안의 뼈를 마르게 한다는 다윗의 탄식이 한 줄 한 줄 제 안의 숨겨진 무너짐을 되살려 냅니다.




저는 이제야 조금은 알 듯합니다.

죄를 숨기지 않는 자의 복이 얼마나 두렵고도 따뜻한지, 그 복이 얼마나 값비싼 안도의 다른 이름인지.

세상은 복을 풍요라 부르지만 주님은 복을 사함이라 하십니다.

그 차이를 마음으로 깨달을 때 저는 주님의 품이 진정한 은신처가 됨을 알게 됩니다.

제 허물이 낱낱이 드러난 자리에서야 비로소 당신의 손은 조용히 제 등을 감싸 덮어주시고 세상의 폭우가 아무리 거세게 덮쳐와도 그 손길 아래에 있으면 쓰러지지 않음을 저는 믿고자 합니다.




주님, 저는 오늘도 제 안에 남아 있는 작고 낡은 그림자를 더듬어 하나씩 당신 앞에 드리려 합니다.

제 입술이 무겁게 닫히지 않게 도와주시고 제가 스스로 가벼운 위안으로 돌덩이를 다시 묻어두지 않게 하여 주소서.

다윗의 노래가 제 귀에 낮게 울려 퍼질 때마다 제 마음이 다시금 두려움을 기도로 바꿀 수 있게 하시고 제 허물이 더 이상 부끄러움으로만 남지 않도록 사함이라는 복으로 덮여지게 하소서.




저는 압니다.

죄는 제 힘으로는 없앨 수 없음을, 저의 부끄러움은 스스로 지워낼 수 없음을.

그러나 저는 오늘도 믿습니다.

당신께서만 덮으실 수 있음을, 그 덮음이야말로 참된 은신처임을.

허물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려진 자가 복되다 하신 그 말씀이 오늘도 저를 살립니다.

부디 이 고백이 내일도 닫히지 않고 제 입술이 숨기지 않는 자의 자리에 머물 수 있도록 제 뼈가 숨김 없이 당신 앞에 반응할 수 있도록 오늘 이 작은 기도를 당신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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