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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듐레어 Oct 18. 2024

세계지도 위에 펼쳐진 여백의 미

Fortnum & Mason - Explorer’s Blend

일본 포트넘 매장은 소분차도 팔기 때문에 구경도 할 겸 들러봐야지 하고 있었다. 마침 근처 백화점 식품관에 포트넘이 있길래 방문했다가 발견한 익스플로러. 워낙 많은 차를 구매했던지라 상미기한이 넉넉하지 않았던 이 차를 사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반년 남짓한 기간에 250g의 용량이 좀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들었다 놨다를 몇 번 하다가 언제 또 만나겠나 싶어서 들고 왔다. 점원이 상미기한 얼마 안 남았는데 다른 상품이 없다고 확인도 해주어서 혹시 할인 같은 거 없나 했는데 없었다. 택스프리 4800엔으로 구매. 우려와는 다르게 10월 중순인 지금 이미 바닥을 보이고 있다.

크고 아름다워

코로나 초창기인 2020년 발매되어서 당시에는 히드로공항점 한정으로 판매했다고 한다. 종종 보이길래 그런 건지는 몰랐는데. 찰스티와 캐디 모양이 비슷한 것이 아무튼 스페셜한 블랜드구나 짐작은 가게 한다. 전 세계를 탐험하던 영국의 기상을 모티브로 실론 오렌지페코, 케냐, 아쌈, 중국의 자스민 그린티를 블랜딩 했다고 한다. 세계지도를 아우르는 블랜딩. 그래서 틴 케이스에도 원숭이 코끼리 부엉이 호랑이 나비 거북이 야자수 등등이 지구본 그림을 배경으로 그려져 있다. (제국주의 아닌가요? 수탈의 역사) 세계로 뻗어나가는 포트넘. 그런 걸 다 떠나서 일단은 사고 싶게 생겼잖아요. 수집욕이 없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사정으로 수집을 (본격적으로) 못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정말 손이 떨리게 생긴 크고 아름다운 캔.

향이 나지 않는 사진으론 평범해보인다

뚜껑을 열어보면 여기저기에서 드래곤볼 모으듯 모은 홍차잎들과 티가나게 색이 연한 자스민 녹차가 보인다. 녹차가 들어가서인지 약간은 다즐링스런 풀향도 좀 나고 케냐와 실론이 중간다리 역할을 하면 아쌈에서 홍차의 묵은내가 나는 것 같다. 별개로 자스민향이 둥둥 떠다니는데 얇디얇은 말리화 꽃잎이 딤섬처럼 투명하게 홍차향들을 감싸는 느낌이다. 녹차가 그리 많이 들어있진 않은 거 같은데 그에 비해 향은 존재감이 분명하다.

데일리로 좋은 차라 티푸드도 잘 안가림

6g의 찻잎을 300ml 팟에서 100도의 물로 2.5분 우려냈다. 포트넘 권장 5분은 극동의 맑은 물에는 어울리지 않으니까. 한국 탐험은 아직이었나. 잔에 따라내자 연한 자스민향이 퍼져나간다. 전반적으로 연한 향이 도는 가운데 자스민이 둥실 떠오르다 보니 약간은 자스민 홍차 같은 인상도 있다. 맛을 보면 전형적인 블랜딩홍차의 맛이 느껴지는데 그 누구도 튀어오르는게 없다. 몰티 한가 싶다가도 엣지 있게 명확한 선을 그려주는 한편 깔끔하고 충실하다. 뒤늦게 치고 올라오는 강한 수렴성이 홍차보단 녹차의 그것인데 은은한 자스민으로 마무리된 직후에 쓰읍하고 올라와서 약간은 우유를 부르는 맛이다. 그러고 보면 브랙퍼스트와 유사한 그림이다. 영국식으로 진하게 우려서 우유를 살짝 넣는 것도 강추. 작년 대관식 다즐링도 그렇고 가볍고 깔끔한 밀크티에 잘 어울리는 방향으로 많이 나오는 느낌이다. 풍미가 진한 편은 아니어서 가벼운 느낌에 맞추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여백의 미가 중요한 차라서 차 자체를 무겁게 가져가려고 하기보단 우유나 설탕을 첨가하는 식으로 가벼운 느낌을 유지하면서 바리에이션을 주는 게 좋았다. 세계지도 위에 펼쳐진 대양처럼 넓게 펼쳐지는 홍차맛과 물안개처럼 옅은 자스민 향기가 이름만큼이나 탐구욕을 불러일으킨다.

평범한 엽저

녹차와 홍차의 조합이기 때문에 온도와 시간을 다양하게 하면 조금씩 다른 밸런스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아 포트넘의 권장인 100도에서부터 80도 사이까지 다양하게 마셔보았다. 그러다가 반대로 깨달은 게 이 차의 관용도가 상당히 좋다는 것이다. 미묘한 차이는 있었으나 크게 온도나 시간을 타지 않는 차였어서 홍차 입문자들에게 추천할만한 차구나 싶었다. 관용도가 좋고 데일리로 좋고 기본에 충실하면서 자스민녹차 블랜딩이라는 스페셜함도 가지고 있는 추천할 이유가 너무도 많은 포트넘의 익스플로러였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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