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듐레어 Sep 27. 2024

나의 샤를로테인 환상 속의 노을 지는 에펠탑

포숑 1014610. 프랑스의 저녁

첫 일본여행의 오미..뭐냐. 기념품으로 사 온 포숑. 시로연인 그거랑 포숑티백 하나씩 세트로 선물을 돌렸는데 역시나 다들 과자만 홀랑 먹고 반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대부분은 책상에 버려두었더라. 그래도 포장이 예뻐서 이렇게 기념품 돌리기에 나쁘지 않은 포숑티백이다. 날이 조금 선선해지는 것 같아 얼른 마셔보는 포숑의 Un soir de france. 프랑스의 저녁이다. 아는 맛인지라 한 김 식은 여름이나 초여름에 잘 어울리는 이 차를 마시려고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충

기문과 실론 베이스에 장미, 해바라기 꽃잎과 딱딱해 보이는 오렌지필이 들었다. 살구와 시트러스라고 써있는데 시트러스향은 그리 강하지 않고 달달한 향이 강한 편. 물론 로즈가 스쳐가긴 한다. 핫 스트레이트에선 잘 모르지만 아이스로 가거나 진하게 우리면 로즈가 탁 튀어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우아한척

150ml쯤의 끓는 물을 붓고 티백을 한 번에 푹 담궈 약 2분가량 우려낸다. 평소 티백을 잘 안 쓰고 쓴다 하더라도 이렇게 여유 있는 상황에서 티백을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어서 티백에서 천천히 퍼져나가는 호박빛 물결이 굉장히 새삼스럽다. 우러나는 동안 향이 퍼져나가지는 않고 잔 안에서 그대로 머물러 준다. 시큼 떨떠름한 살구향이다. 한 모금 마셔보면 오렌지향이 아주 살짝 점 하나 찍혀있는 에프리콧이다. 베이스는 전반적으로 쓸쓸한 느낌이 많이 나는 기문 스타일의 베이스. 맛이 밍밍함에서 살짝 벗어나는 정도로 순하디 순한 느낌이라 방심할 순 있으나 이것도 시간이 좀 지나면 혀 위에 수렴성이 없지는 않다. 수렴성이 굉장히 지연되어 느껴지는 스타일인데 덕분에 부드러운 차 맛이 꽤 풍성하고 에프리콧의 달달한 향과 한참 뒤에 숨은 희미한 장미향, 오렌지향이 실제 맛도 달달하다는 착각까지 준다. 꽤나 로맨틱해서 조금은 설레는 마음이다.

다 마셨넹

필연적으로 옛날 생각이 많이 나는 차인데 내 첫사랑인 커피빈 에프리콧 실론을 한창 마시던 무렵.. 이니까 20년이 넘었네, 프랑스 홍차를 구할 길이 막막하던 꼬마였을 때 프랑스 여행을 다녀오신 누님들을 통해 건너건너 나눔 받거나 어디 모임이 있을 때 나가면 한번 마셔볼까 말까 했던 차다. 당시 접근성이 너무 좋지 않았던 포숑. 딱 이런 느낌의 에프리콧을 참 좋아했던 기억이다. 을지로 롯데에 포숑이 들어오던 날 돈이 모자라 사 오지 못했던 기억도 난다. 솔직히 애플하고 파리의 오후 사고 나니 아무것도 살 수 없어 두고 온 차들이 대부분이었던지라 정확히 뭐뭐 두고 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프랑스의 저녁은 돈이 없어 만나보기도 힘들었던 샤를로테 뭐 그런 거였다. 그러고 보니 롯데에서 다시 만난 포숑이네.

젖은 티백

사족이 굉장히 길었지만 포숑의 오래된 가향라인은 동경하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겹쳐 마실 때마다 감상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재탕은 많이 싱거워서 잘 안 마신다. 분위기 있고 느긋하게 한 사발 뚝딱. 끗.

매거진의 이전글 간장게장의 반찬은 햇반 아닌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