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피시아 1269. 마가렛호프 백차 2024
작년 겨울 루피시아에 닐기리 백차와 함께 등장한 다즐링 백차. 그것도 무려 마가렛호프의 다즐링으로 만든 백차라고 하면서 출시된 차가 있어서 이걸 또 먹어봐야 하나 고민하면서 주문하게 된 차. 무조건 캔으로만 파는 데다가 (그건 아마 배송과정에서 잎이 상할까 봐, 혹은 프리미엄의 상징 같은 느낌으로 그런 게 아닐까) 가격도 20g에 3000엔으로 꽤나 비싼 몸이어서 구매 전에 고민을 꽤 많이 했다. 근데 또 이런 실험적인 차품은 기회를 놓치면 다시 만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있을 때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고 그런 기회의 희소성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가격은 아니기 때문에 고민 끝에 두 캔을 주문했다. 그래도 비슷한 고민을 하던 글렌데일 백차에 비해서는 어쨌든 마가렛 호프라는 다즐링 프리미엄이 붙어서 좀 더 쉽게 결정한 것 같고 사실 마가렛 호프를 결정하고 나서 에라 모르겠다 글렌데일까지 구매하게 된 게 순서상 맞는 것 같다. 물론 이런 새로운 차를 꼭 루피시아를 통해 마셔야 할 이유는 없고 이 정도 가격이면 직구 장바구니엔 오히려 부담이라 다른 루트를 알아볼 법도 한데 뭔가 빼먹고 지나가기 아쉽단 말이지. 상미기한은 제조 1년.
잔뜩 힘을 준 틴케이스 안에 다즐링 시리즈의 라벨이 붙어있다. 6대 다류 구분보단 지역별로 크게 나눠 라벨 시리즈가 있는 편. 그냥 봐선 빈티지 다즐링이구나 하고 넘어갈 법도 하다.
칸노우테키나 아마리노 아지와이토 키힌노 아루 코우키가 인쇼우테키. 다아지린 쿠슛시노 메이엔니요루 토쿠베츠나 하쿠챠.
관능적인 달콤함의 맛과 기품 있는 향기가 인상적. 다즐링에서도 손꼽히는 명원이 만든 특별한 백차.
라벨에 제시된 레시피가 인상적인데 제법 많은 양에 살짝 식힌 물로 2-3회의 다포법이 암시되어 있다. 다포법이라기엔 두 번쯤 마시겠다 싶어서 내포성이 크게 기대는 안되는데. 일본녹차에서도 종종 3-4회 권장이 보이기도 하는 걸 생각해 보면 역시 가격대비 좀 아쉬운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뭐, 특식으로 한번 맛보는 거니까.
봉투를 열어보면 조금은 시원한듯한 다즐링의 향기가 싱그럽다. 다즐링의 향기는 언제나 좀 설레는 구석이 있는데 홍차 중에서도 고급이라는 이미지는 워낙 옛날부터 있어왔기 때문에 이 향을 맡으면 옛날의 그 설레임이 다시 떠오르는 편이다. 은은하게 약간의 달달한 향도 스쳐가는 느낌인데 이건 실제 마셨을 때의 경험적인 인상이 역으로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건엽을 덜어내어 보니 은침까진 아니고 솜털 뽀송한 퍼스트플러시의 느낌인데 그러니까 요즘 들어 자꾸 백차와 다즐링 ff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기분인 것이다. 옛날 다즐링 ff가 기억도 안 나고 뭔가 나만의 vias가 생기는 것 같아서 딱 그렇다 말은 못 하겠지만 말이다. 아마도 백차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솜털을 좀 살리는 방향으로, 그리고 다즐링의 맛을 위해 백차치고는 아주 약간의 발효도를 준 것 같은 느낌이다.
2.5g의 차를 90도씨의 물 70ml로 개완에서 1분쯤 우려낸다. 물을 부으면서 약간은 수미 같은 약향도 살짝 기대하게 하는 순간이 있었는데 막상 우려내고 보니 그런 쪽은 잘 느껴지진 않는다. 오히려 우려내고 나니 훨씬 다즐링 본연의 느낌. 최근 백차화 되어가는 다즐링계에 오히려 백차 타이틀을 달고 나온 이 차가 좀 더 빈티지 다즐링의 맛을 내어주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동방미인스러운 달달함에 라이트한 다즐링의 풍미가 봄바람처럼 지나가고 그 뒤로 감칠맛과 홍배향 느낌이 스쳐간다. 최근의 양산형 백차 같은 경우엔 아포차에 가깝게 백차 느낌을 강조하는 추세가 좀 있는 것 같은데 그런 느낌의 반대편에 있다 보니 앞에 달려있는 백차라는 타이틀이 농담처럼 느껴지는 정도. 꽤나 새순을 우전 느낌으로 솜털 뽀송할 때 채엽해서 만들었으니 백차라고 한 건가, 온도와 시간을 달리해봐도 아이덴티티가 홍차라는 건 변하지가 않는다. 홍차 타이틀일 때보단 단맛이 조금 더 강조되는 면은 있었으나 아직은 백차구나 싶은 건 잘 못 느끼겠다. 다만 은은하게 입안에 남아 후운이 길게 가는 특징은 기분 탓인지 어쩐지 좀 있긴 했으니 확실히 고급지긴 하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역시 가장 연상이 많이 되었던 차는 백호우롱이긴 했으나 확실히 비새차 같은 느낌보다는 조금 더 일반적인 느낌에 가까웠던 게 대놓고 달달하진 않았다는 점 때문이 아닐까 싶다. 수미나 백모단 같은 걸 마실 때면 아무래도 연하다는 느낌과 낙엽스러운 풍미를 종종 받곤 하는데 그런 쪽으론 비슷한 인상이 있긴 하구나 싶었는데 아무튼 한번 경험으로 충분했다 싶은 느낌이랄까. 이 가격이라면 다즐링 퍼스트 하나와 백모단 하나를 사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한 번쯤 재미 삼아 마셔보는 정도로 딱 좋았던 다즐링 백자. 그래도 다즐링 백차라는 단어 조합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고급스러운 기분을 잔뜩 느꼈으니 그걸로 된 게 아닐까 싶다. 충분히 호사스러운 기분을 느끼게 해 준 마가렛 호프 다즐링 백차,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