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벽다원 고카세 카마이리 고카세 미도리 극상
그랑마르쉐 오사카 회장에서 녹벽다원이라는 이름을 걸고 있는 코너가 있었는데 다름 아닌 가마이리차를 즉석에서 덖어주거나 가마이리차 상품만 서너 개 팔고 있는 곳이었다. 너무 흥분해서 녹벽다원 쓰여있는걸 사진을 못 찍어왔는데 녹벽다원이 무엇이냐, 지금도 루피시아 틴케이스에 적혀있는 한자가 바로 녹벽다원. 90년대 르피시에 시절을 거쳐 녹차를 비롯한 동양차 라인을 위해 설립했던 녹벽다원인데 루피시아로 바뀐 뒤에도 여전히 그 흔적이 남아있다. 회사 내부에서는 어떤 구조인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렇게 추억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이 꽤나 재미있는 일이다. 아무튼 녹벽다원이란 이름도 그렇고 카마이리차에 대해 관심도 많던 차였기에 코너를 얼쩡거리다가 두 개를 집어왔는데 에츠보니일이라는 보급형(?) 패키지와 고카세미도리를 하나씩 집어왔다. 그 옆에 고카세호지차도 있었는데 그건 패스. 그래서 카마이리차를 그랑마르쉐 한정 포함해서 이래저래 비교하면서 마실 수 있게 된 올여름이다. 여러 봉지를 사 오기엔 좀 부담스러웠던 게 30g 종이봉투로 이미 1500엔이었다. 고카세 봉호지차가 150g에 900엔이었으니 확실히 비싼 가격이다.
그건 그렇고 이 친구는 봉투를 아무리 봐도 상품번호가 없는데 그건 아무래도 녹벽다원의 오리지널 상품이기 때문일 테다. 22601840이란 숫자가 패키지반영한 상세상품번호로 의심이 되긴 하는데 아직은 루피시아의 인트라넷에서 모든 데이터베이스를 조회하지 못해서 확인할 방법이 없다. 아무튼.
탄이츠 챠바타케 No.1 (유우키 쟈스 닌테이)
레이와 로쿠넨 야부키타노 이치반챠 미루메오 시요오시타 카마이리챠. 아마쿠 숏키리토시타 코오키니 제츠묘오나 우마미가 쵸오와시마스. 구랑 마루셰 카이죠오 겐테이힌.
단일 차밭 No.1 (유기 JAS 인증)
2024년(레이와 6년) 야부키타의 첫물 어린 새싹을 사용한 가마이리차. 달고 산뜻한 향기에 절묘한 감칠맛이 조화를 이룹니다. 그랑 마르쉐 회장 한정품.
24년도 우전이란 이야기인데 가만.. 24년이라니. 허긴, 4월 초에 회장에서 구입을 했으니 첫차는 이제 막 따네마네 하고 있을 시기에 이미 나와있는 첫물차는 당연히 지난 시즌의 이야기겠지. 집에 와서야 레이와 6년이 작년인 것을 알았는데 뭔가 집에 와서 눈치챘다니 억울했다. 회장에서 알았어도 일단 구매는 하긴 했을 거란 이야기. 그나저나 여태 마셔왔던 고카세 가마이리는 그러고 보면 잎이 거의 우롱차 수준으로 큼직한 것이 첫물차의 느낌이 아니긴 했다. 이번에야말로 한국의 우전과 비교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봉투를 열어 향을 맡아보면 확실히 해조류 구워놓은 듯한 향이 난다. 한국의 우전이 조금 더 이끼 같은 향이나 무게감 있는 느낌을 살짝 더 가져가긴 하는데 반대로 말하면 한국 우전에 비해 2%쯤 가벼운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해도 증제식의 센차에 비해서는 물론 진중한 무게감이 있지만. 건엽을 덜어내어 보면 정말 우전처럼 줄기 없이 딱 어린잎들로 돌돌 말린 찻잎들이 보이는데 줄기가 없기로 치자면 고급 교쿠로에서나 보던 느낌이고 때깔인데 침형으로 뾰족하게 돌돌 말린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말려들어간 것이 정말 한국 우전느낌과 비슷해 보인다. 그럼 어디 본격적으로 맛을 보자.
100ml 개완을 예열해서 2g 이상의 찻잎을 넣고 한 김도 채 식히지 않은 물을 부어 1분간 우려낸다. 찻잎을 조금 늘리고 시간을 줄이는 방법도 나쁘진 않겠는데 웃기는 건 딱 이렇게 우리는 레시피가 가장 맛있는 한국 우전맛에 가까운 레시피 었어서 재밌다. 첫 탕을 따라낼 때부터 이건 뭐 확연한 찐 밤향이 너무나도 익숙한 우전의 그것이다. 맛을 봐도 잘 알고 있는 그 향에 달달한 맛이 느껴지는 것이 정말 우전 그 잡채. 고카세라고 하면 생각나는 진한 맛과 향이 있는데 그건 특상에서의 이야기이고 새순으로만 만들었다는 극상의 경우는 그런 거 모르겠고 그냥 우전이 되어버린다. 이렇게 되면 반대로 한국의 여름차들은 왜 고카세 같은 진한 향의 차가 없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딱히 수요가 없어서 그런 건지 어쩐 건지 궁금하긴 하다. 두 탕째부터는 확실하게 맛도 향도 연해진다. 내포성이 그렇게 좋지는 않은 듯. 그렇다고 두 탕만 마시기엔 약간 아쉽고 세탕정도 하면 딱 알맞은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그런 것도 우전과 닮은 듯. 보통의 한국 우전보단 조금 빠르게 연해지는 느낌은 있다.
어쩔 수 없이 자꾸 우전과 비교하게 되는데 생각해 보면 이건 엄연히 일본 가마이리차이고 비교하는 우전은 한국 전통의 녹차이니 사실 둘이 비슷하게 느껴지는 게 오히려 신기한 일이긴 하다. 일본 가마이리차가 가지고 있는 짙고 화려한 이미지와 한국 녹차가 가지고 있는 온화하고 은은한 이미지의 갭이 상당히 큰 것에 비해 첫물차끼리의 비교는 이렇게나 비슷한 느낌이라니. 아니, 또 생각해 보면 같은 종의 나무이고 같은 시기에 같은 방법으로 만든 차라면 당연히 맛도 비슷한 게 이상한 일은 아니기도 하다. 재차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렇게 비슷한 차들이 자라나고 만들어지면서 그렇게나 다양하게 바뀐다는 게 새삼 신기한 건가. 마실수록 생각할수록 재미있어지는 게 차의 세계인 것 같다. 일본차에서 느낀 고향의 맛, 고카세미도리 극상,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