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피시아 5237. 머스캣 다즐링
장미시즌도 아니고 애매한 시즌에 로즈 다즐링과 함께 뜬금없이 나오는 가향 다즐링이 있는데 바로 머스캣 다즐링이다. 아직 봄도 아닌데 사쿠라 시리즈는 어차피 작년 사쿠라로 만드니까 빨리 파나 보다 겨우 납득할 때쯤 엥 장미는 아직 피려면 못해도 서너 달은 남은 거 같은데 싶을 때 갑자기 나오는 로즈 다즐링처럼 머스캣 다즐링도 지금 갑자기 머스캣? 다즐링? 하는 느낌으로 발매가 되는 무려 시즌한정이다. 보통 계절 한정이면 계절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의문의 계절한정 시리즈 머스캣 다즐링인데 어쨌든 아이스티 추천이기 때문에 아이스가 어울리는 계절까지 잠시 묵혀두었다가 이제야 시음기를 작성하게 되었다. 50g 봉입이 세금포함 900엔이지만 후쿠오카 박대점에서 면세가 833엔에 구입. 상미기간은 제조 2년으로 두봉을 구입했다.
다즐링에 머스캣이라니 이거는 좀 민감할 수 있는 이슈 아닌가 싶다가도 아닌가 오히려 클래식한 조합인가 싶기도 하다. 좋은 다즐링은 머스켓향이 난다라는 절대명제 앞에 무스카토가 느껴지냐 아니냐로 다즐링을 나누기까지 하는 세간의 인식이 있으니까 아무래도 도발적으로 들리기 마련. 하지만 보장된 맛일지도?
마스캇토노 미즈미즈시이 카오리가 다아지린노 사와야카나 아지와이토 요쿠 맛치시타 코오챠.
신선하고 싱그러운 머스캣 향이 다즐링의 상쾌한 맛과 잘 어우러진 홍차.
다즐링이 신선하다는 느낌을 보통 받는데 상쾌하다는 표현이 재밌다. 입안이 개운해지는 느낌을 받거나 아미노산이 많이 느껴지지 않는 가벼운 질감일 때 많이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나? 뭘 썼길래.
봉투를 개봉하면 머스캣 가향이 엄청 진하고 달달하게 터져 나온다. 달달함이 워낙 진해서 휘발성의 찌르는 향이 오히려 뒤로 밀릴지경. 그 뒤로 풀향이 지나가는데 다즐링에 있는 잔디스러운 향이다. 건엽을 덜어보면 그래도 발효도가 좀 있는듯한 다즐링이다. 아까 전의 풀향은 아무래도 머스캣의 포도풋내 같은 뉘앙스가 겹치면서 착각을 한 것인지도. 사실 그걸 분리해 내기란 어렵겠단 생각도 든다. 따로 과육이 들었다거나 한건 없고 여기도 순수 머스캣 가향. 다즐링에서 이야기하는 무스카토와는 결이 좀 다른 머스캣이지만 뭐 애초에 그걸 위해 가향했다고 한 것도 아니니까. 진한 머스캣 가향이 아이스티로 맛있겠단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면 대표상품이었던 머스캣이 예전에 딱 이런 느낌 정도였던 것도 같고.
머스캣 가향의 특성상 따뜻하게 마시기보단 아이스를 선호하게 된다. 그렇다고 뜨차가 거슬리거나 이상하다는 건 아니고 그냥 선호의 문제정도. 급랭으로 마시면 의외로 향이 폴폴 나는 느낌은 아니고 굉장히 수줍은 향이 난다. 머스캣도 다즐링도 희미하게 느껴지는 찻물. 굉장히 부드러운 맛과 동시에 퍼스트 플러시의 시원한 맛과 세컨 플러시의 바디감 같은 맛들이 묘하게 조금씩 섞여서 산미도 아닌데 시큼한 느낌이 든다. 어떻게 표현할지 찾다 보니 상쾌하다는 단어가 떠오르면서 와 진짜 상쾌하단 말이 나오네 싶어 소름이 돋는다. 의외로 머스캣의 향은 그러한 다즐링의 향과 완전히 섞여버려서 오 이쯤에서 머스캣이 느껴지는 것 같아, 하고 찻물을 삼킨 뒤에야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이게 머스캣 가향이었지, 하고 생각하면서 다시 마시다 보면 또 처음부터 머스캣 가향에 미묘한 다즐링 맛이 더해지네 싶은 맛이기도 해서 왔다 갔다 헷갈리는 맛이기도 하다. 냉침에서도 특이하게 차의 맛이 꽤나 녹진하게 나온다. 아무래도 차가 조금은 더 부드러워지기 때문에 부드러우면서도 진하게 혀를 스윽 감아쥐는 느낌이다. 큰 틀에서는 급랭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질감이나 이런 부분들이 아무래도 냉침에서 더 잘 어울리지 싶다.
아이스티 지향의 가향 다즐링 치고는 사실 어떤 점을 장점으로 봐야 할지 잘 모르겠긴 하다. 가향이 섬세하냐 하면 그건 아니고 다즐링이 섬세하냐 하면 또 그렇지도 않아서 추천으로 올리기엔 약간은 애매하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루피시아의 머스캣 가향은 시그니쳐 중에 하나이고 게다가 다즐링이니까 어디 내놔서 막 빠지는 블랜딩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냉침 다즐링으로는 시원 달달한 향이 만족스러웠던 머스캣 다즐링,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