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피시아 5571. 요코하마 베이
추석이 지나자마자 놀랍도록 쌀쌀한 바람이 분다. 연휴 전에 여름한정 특집을 끝낸 것이 천만다행이다. 대충 염두에 두고 있던 바였으나 기대 이상으로 쌀쌀해서 가을행낭을 좀 더 매콤 달달하게 꾸렸어야 했나 싶은 걱정도 좀 든다. 3분기 지출을 보면서 좀 반성을 한 터라 모든 차들을 재탕까지 꼬박꼬박 우려먹다 보니 차 소비도 속도가 좀 줄긴 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얼른 털고 매콤 달달한 세상으로 떠나보도록 해야겠다. 그럼 오늘도 힘을 내서 마셔보자.
분명 요코하마 베이는 계획에 없던 물건이었다. 보부상님의 이 메세지와 사진이 오기 전까진.
요코하마 한정이 이렇게 둘인데 어떡할까요?
그리고 전송 완료.
요코하마 베이를 홈페이지에선 품절이라고 봤던 것 같은데 멀쩡히 있네? 주문서 만들면서 빼먹은 모양이다. 암튼 센스 있는 보부상님 덕에 선물세트스런 패키지로 구매 완료. 요코하마에서도 두 개 지점에서만 판매하는 걸로 알고 있는 지역 한정판들이다. 오늘은 왼쪽의 파란 요코하마 베이를 마셔보도록 하겠다. 50g, 캔입 1100엔. 참고로 오른쪽은 다음 시음기로 작성할 테지만 요코하마 노 마치 1150엔이다. 선물포장이 330엔인 셈.
미나토마치 요코하마 노 우미 오 이미이지 시따 코우차. 소카이 나 후룻추 노 카오리가 후토우 니 후쿠 우미카제 노 유.
요코하마 항구 도시의 바다를 상상한 홍차. 상쾌한 과일 향기가 부두에 부는 해풍과 같습니다.
쳇지피티가 읽어준 건데 제대로 읽은 건지 모르겠다. 요즘 브런치에 받아쓰기하면서 갑자기 일본어 배우고 싶어 짐. 답답. 아무튼 상쾌한 과일향을 요코하마 베이의 바다를 이메-지 하면서 만든 홍차라고 하니 대략적으로 그려지는 루피시아의 바다, 후루츠, 홍차의 블랜딩 이미지가 떠오른다. 가장 가까이로는 시즌 1의 그레나다가 있겠고. 개봉!
브로큰 중에서도 좀 자잘한 편에 속하는 분쇄도의 홍차와 파란 콘플라워, 바닷물을 나타내는듯한 파란, 혹은 옥색의 별사탕이 들어있다. 푸릇푸릇 한 건 뭔가 봤더니 페퍼민트를 아주 잘게 다져 넣었다. 덕분에 건엽에서 느껴지는 향은 쌉싸래하니 마른 풀냄새가 난다. 엽저를 미리보기 해서 더 얹자면 브로큰 아쌈에 아쌈인지 실론인지 아리까리한 베트남 홍차가 살짝 들어갔다. 의외로 별사탕이 함량이 적어서 좀 놀람. 숟가락질에 따라서 별사탕 없이 떠지는 경우도 많았다.
핫티를 우려 본다. 300ml, 5g, 100도 물로 2.5분. 왼쪽은 잔이 깊어 잘 모르겠지만 수색이 생각보다 밝고 붉다. 오른쪽은 사진이 좀 오바했고. 마시기 전 첫 향이 의외로 묵직했는데 마셔보면 트로피컬 한 과일향이 꽤나 시트러스 하게 몰아치고 홍차 베이스는 아주 은은하게 퍼져나간다. 그리고 민트향이 상쾌하게 마무리. 수렴성도 없다고는 못하지만 가향과 민트에 비하면 아주 온순하다. 홈페이지 소개에서 아이스티 추천 딱지가 붙어있진 않지만 아이스티로도 즐겨보라고 적혀있는데 충분히 납득이 되는 맛이다. 냉침으론 부족할 것 같은 가향이고 확신의 급랭 아이스티. 어떤 면에선 시즌2의 첫 차인 아라비안 나이트와 닮은 점이 있는데 아라비안 나이트는 플라워리하고 요코하마 베이는 프룻티하면서 시트러스가 강하다. 응? 뭐가 닮았다는 거지. 그... 안 닮았는데 암튼 연상이 된다. 왜냐고 물어보면... 어렵네.
아이스티는 300ml, 9g, 100도, 2.5분 우려서 얼음 가득한 컵에 부어주었다. 요코하마 베이니까 스틱도 요코하마 베어를 올려주고. 요즘 들어 느끼는데 루피시아의 시트러스는 완성 후 잠시 뜸 들이면 딱 좋게 익어준다. 세헤라자드 때도 그렇더니만. 차갑게 칠링 된 아이스티는 순한 듯하면서도 풍미의 깊이를 유지하고 있고 패션후르츠 같은 열대의 달콤함과 상큼한 시트러스가 아주 옅은 민트와 함께 칼칼하게 킥으로 작용한다. 성의 없는 초코하임이 정말 미스매치인 게 딱히 간식을 매칭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식후에 가볍게 입을 가시면서 마무리를 지어주는 역할이나 티푸드 없이 심심한 입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는 역할에 어울리는 아이스티라고 생각한다. 여러모로 여리여리한 반전 매력이 있어서 그런지도.
연휴 전에 거의 일주일을 정말 맛있게 요코하마 베이만 마셨을 정도로 좋은 차였는데 막상 시음기는 굉장히 힘 빼고 쓰게 됐다. 요코하마 항에서 바라보는 도쿄만의 푸른 바다를 상상하며 마셔보려 했는데 막상 마시면서는 그런 거 다 까먹었다. 도대체 왜 요코하마의 바다에서 트로피컬 민트의 맛이 느껴지는 걸까. 이제 와서 의아해지는 부분이다. 맛있게 다 마셔놓고 이제 와서 몰?루? 된 기분이 힘주어 뭘 써보려 해도 잘 안 써진 이유가 아닐까? 천 엔의 값어치를 하는 맛이었다.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