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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듐레어 Oct 06. 2023

요코하마는 차이나타운이 있는 항구다. 인천도 그렇지.

루피시아 8525. 요코하마 노 마치

지난 요코하마 베이 시음기에서 살짝 인사했던 요코하마 노 마치. 요코하마의 거리라고 번역기가 돌긴 하는데 내 안의 오타쿠 경력이 강력하게 거부하는 번역이라서 사용하지 않기로. 街 라는 한자가 무슨 무슨 초, 무슨 무슨 마치 이렇게 지명 뒤에 붙는 거리라는 한자이긴 하겠으나 신사동 가로수길이 단순히 그 도로 하나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동네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마치(街)도 동네를 주로 이야기했던 것 같아서 요코하마의 거리라고 하니까 영 이상하다. 홈페이지의 설명에서도 바샤미치와 차이나타운을 모티브로 했다고 하니 요코하마의 이런저런 동네라고 번역하는 게 더 와닿는 것 같다. 이상 오타쿠의 불평.

영어 타이틀도 '요코하마 노 마치' 라고 해놓은게 어정쩡하게 번역하지 말란 말 같잖아.
타이완 우롱차 또 니혼룍쿠차 노 부렌도 니 코코낫츠 노 아마이 카오리. 야와라카 나 후우미 노 오차 데쓰.
대만 우롱차와 일본 녹차의 블렌드에 코코넛의 달콤한 향기가 더해진 부드러운 맛의 차입니다.

이렇게 적어놓으니까 맥락을 전혀 모르겠는데 요코하마는 일본의 개화기에 가장 선두적인 역할을 한 도시로 각종 해외 문물이 일본으로 들어오는 입구 역할을 한 유서 깊은 무역도시라서 서양식 건물도 제일 먼저 생기고 차이나타운도 있고 막 그런 동네이다. 위에서 말한 바샤미치가 서양식 동네이고 이런 동서양이 잘 섞여있는 이국적인 요코하마의 이미지를 나타내고 싶었다, 뭐 그런 말임. 대만우롱에 일본녹차 섞은 게 왜 동서양이냐고 하면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코코낫츠의 달콤한 카오리도 중국이고 우롱차도 읍읍. 일러스트를 잘 보면 동서양의 그런 이미지를 잘 그려놓긴 했다. 용이 개완 들고 있는 거 너무 귀여웡. 이 일러스트는 올 초에 리뉴얼되었다고 한다. 루피시아의 일러스트 장사 스고이. 이렇게 귀여운 일러스트 캔입 50g이 1150엔.

색조합이 이국적이긴 하다

개봉해 보면 동글동글하게 말린 우롱차와 길쭉한 일본녹차가 들어있고 자스민꽃이 꽤나 푸짐하게 들어있다. 빨간 잇꽃도 보인다. 노랑노랑한 건 메리골드인 듯. 꽃들이 아주 화려한데 정작 향은 달큰한 과일 가향과 짙은 우롱차 향이 난다. 살구와 코코넛 가향이라고 하는데 라벨에 적혀있는 코코넛의 달콤한 향보다는 살구의 달콤함이 좀 더 강한 것 같다. 살구와 코코넛이 합쳐지니 묘하게 복숭아 가향 같기도 하고. 우롱차가 엄청 고급으로 보이진 않는데 의외로 향이 짙어서 내포성도 꽤 기대가 된다. 어떻게 마실까 하다가 80도에서 천천히 뽑아보기로 한다.

가루가 좀 가라앉는 타입

5g, 150ml, 80도 물에서 45초. 이후 15초씩 늘렸다. 혹시나 했던 내포성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해 보자면 4포째에서 슬슬 가향의 기운을 잃었다가 6포였나 7포에서는 수색은 계속 나긴 하는데 맹물에 가까워졌다. 이 정도면 선방했지 뭐. 그래도 이 블랜딩의 진가는 첫탕 재탕 리즈시절에 폭발을 하는데 오랜만에 블랜딩 자체가 즐겁게 느껴지는 경험이었다. 천천히 첫 잔을 마시자니 우롱차 청향으로 시작해서 순간 애프리콧이었다가 코코넛이 올라오면서 달달하게 모든 향이 강강술래를 돌기 시작한다. 은근히 모든 게 제각각인 것 같으면서도 이게 딱 맞아 들어가네. 무엇보다 살구와 코코넛의 조화가 미묘하게 엇박자로 원투원투 치고 지나가면서 완벽히 합이 맞아 들어간다. 우롱차와 희미한 녹차의 맛이 베이스 소프라노를 각자 맡아 외성부를 쭉 밀어주면 그 안쪽에서 살구와 코코넛이 교차진동 하면서 만들어내는 기가 막힌 내성화음. 살랑 불어오는 바람처럼 바이올린 솔로가 자스민을 타고 가다가 차가 한 김 식으면서 뭔가 시트러스 산미가 살짝 올라오는데 이게 코코넛에 파묻힌 살구의 비명 같은 초고음으로 쥐어짜는 여운을 남긴다.

홀리프에 가까운지라 거름망 없이 간편히 우려도 될 것 같지만 의외로 부스러기도 많고 꽃잎 토핑이, 특히나 잇꽃 같은 건 작은 틈으로도 잘 빠져나오니 반드시 가느다란 거름망을 사용하도록 하자. 급히 마시다 채 할까 봐 찻잎을 좀 넣었으니 후후 불어가며 드세요 놀이를 하고 싶다면 뭐 그런 로망도 존중합니다.

이젠 날씨가 사진만 봐도 좀 춥다.

이건 실패할 수 없는 아이스티라는 생각이 들어 급랭. 보아하니 냉침에서는 전혀 다른 차가 될 것 같다.

5g, 150ml, 80도, 2.5분. 얼음 가득한 컵에 따라낸다. 녹차가 목소리가 한층 커졌다. 시트러스감이 한층 산뜻해지고 근데 이게 또 코코넛과 한 몸이라서... 상큼한 코코넛을 아십니까. 진짜 재미있는데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제 혀도 짧고 손가락도 짧은 것이 한스럽네요 정말. 여전히 제각기 목소리가 독특해서 모든 맛이 혼합이 아닌 날것끼리 교차하는 그야말로 명징하게 직조된 느낌이 까실까실하다. 이것은 분명 냉침에선 겉돌 것이라고 장담하는데 혹시 모르니까 여지는 남겨두는 걸로. 아까워서 냉침 확인을 해보진 않으려고 한다. 본연의 맛은 확실히 핫티 쪽이 맞겠고. 근데 뭐죠 아이스티로 자꾸 먹을 것만 같은 느낌은.

생각보다 포동포동한 우롱차

요코하마 노 마치는 사실 이 시즌을 노려서 마신 차이기도 한데 코코넛 가향이 차이나타운의 월병을 모티브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렇다면 추석에 마셔야지,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모모우롱, 퀸즈 머스킷 우롱에 이어 딱 적절한 가향우롱차가 되어주었다. 보름달처럼 꽉 차 오르는 하모니가 정겹게 강강술래를 하는 차였다. 너무나도 추석. 근데 어디가 바샤미치스러운 걸까. 요코하마 베이도 그렇고 어딘가 약간 이미지가 어정쩡하다요. 바샤미치 빠지면 차이나타운만 남는데 그럼 인천 지역한정이라고 해도 되는 거잖아. 차이나타운이 있는 항구도시는 세계 어디에도 있으니까요. 일본엔 요코하마 하나인 걸까? 억지로 이어 붙이자면 우롱과 녹차와 코코넛과 살구와 자스민의 엄청난 오케스트레이션이 클래식한 바샤미치의 이미지와 잘 어울렸다고. 뭐 그렇게 생각하면서 루피시아의 요코하마 지역한정 시음기는 끗.




루피시아 요코하마 한정 선물세트.
그래도 요코하마 베이와 요코하마 노 마치를 마시고 나니 요코하마에 가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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