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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듐레어 Jan 20. 2024

모닥불의 불티처럼 날아오르는 열대과일의 향기

루피시아 5539. 타키비

추운 계절을 맞이하면서 고른 홍차 주문 리스트에는 조금은 스모키 한 홍차도 포함될 예정이었다. 이를테면 랍상소우총 같은 훈연향 가득한 홍차를 넣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타키비는 이름만으로는 너무도 그럴싸한 블랜딩이었다. 불사를 분에 불 화를 쓰는 우리말로는 나무를 불사른다는 분화, 그러니까 모닥불, 장작불 정도 되는 이름이다. 일단 이름에 나무 목이 둘, 불 화가 둘 들어갔으니까 당연히 스모키라고 생각하고 장바구니에 던져두었다. 배송을 받고 나서야 이게 뭐지 싶었던 게 일단 홀리프에 가까운 애들에게나 사용하는 대형 사이즈의 봉지에 들어있었고 그렇다면 가격이 좀 나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던 기억이기 때문이다. 블랜딩 정보를 다시 읽어보니 우롱계열에 열대과일 가향이라고 한다. 어디가.... 모닥불... 조금은 아리송한 제목이고 망고계열을 마실만한 타이밍이 언제일까 순서를 기다리다 이제야 개봉하게 되었다. 사실 겨울시즌에는 12월에 마셔야 할 차가 많다 보니 이렇게 되기 쉽다. 하지만 지금 공홈을 가보니 이미 시즌 종료가 되었네. 미리 사두길 잘했다. 굿. 50g 봉입에 680엔으로 상미기한은 1년이다. 계절 한정으로 10월~2월까지 판매하지만 보시다시피 1월이면 벌써 시즌아웃. 시작도 11월 가까이 되어서 시작했던 거 같다.

타키비

부서지면 안 되는 잎이 큰 차들에나 사용하는 대형에 들어있는 타키비. 보시다시피 5천 번대 번호에 분류도 그냥 평범하게 flavored tea 라인이라서 우롱차 베이스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너무도 잘 보이는 오룡차라는 한자.


만구 야 파숀 후루추 노 아마이 카오리 오 타키비 오 오모와세루 코바시이 우롱차 니 노세마시타
망고와 패션후르츠의 달콤한 향기를, 모닥불을 연상시키는 향긋한 우롱차에 올렸습니다


설명을 읽고 나니 이제야 보이는 침출시간. 1.5~2분이다. 씨티씨로 훈연향 블랜딩을 하진 않았을 테니 침출시간을 보고 먼저 알아차릴 수도 있었는데. 이런이런.. 관찰력이 부족하군.

바싹 마른 낙엽처럼 넓게 넓게 마른 찻잎

개봉과 동시에 봉지를 흡입해 보면 루피시아 특유의 풍선껌 휘발향이 코를 때리고 휘발성의 향을 살짝 날리고 맡아보면 망고류의 트로피컬 한 향에 약간의 풀내가 섞여서 난다. 건엽을 덜어내 보니 거의 낙엽에 가깝게 유념을 덜 탄듯한 우롱차가 들어있다. 중국우롱이라고 해서 뭘까 싶어 여기저기 찾아보았는데 예전엔 수선을 사용했던 모양. 지금은 이게 수선인지 확실히 알 길은 없지만 가격대를 보았을 때 봉황수선까지는 아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물론 무이암차를 썼을 리도 당연히 없겠지만 수선 특유의 난향과 깊은 풍미, 열감등이 모닥불스럽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다. 설마 수선 하나 믿고 이런 작명을 한 건가. 구성은 심플하게 차와 메리골드이며 구성이 심플해서 그런지 메리골드가 뭔가 평소보다 큼직큼직하게 느껴진다.

동서양의 만남이네

다관을 사용해서 마셔본다. 5g, 150ml, 약 80도의 물에서 1분 우렸다. 일반적인 우롱차보다는 훨씬 붉은빛이 돈다. 찻잎의 색만 봐도 발효도가 꽤 높은 우롱차였으니까 그럴만하다. 우려내고 보니 아주 분명 해지는 트로피컬향. 망고향이 오히려 베이스가 되는 것 같고 메인은 트로피컬느낌이다. 한 모금 마셔보면 깜짝 놀라게 되는 게 생각보다 달콤하다. 게다가 과일향의 진함에 비해 산미는 거의 느껴지지 않아서 차에 패션후르츠 주스를 살짝 섞은 느낌이다. 패션후르츠 익스트렉트에서 산미를 완전히 날리고 당도를 좀 내리면 이런 맛이겠다 싶을 정도로 착실한 패션후르츠이다. 그러고 보면 단맛을 담당하는 건 망고향인가 싶기도 하고 서서히 올라오는 우롱차의 맛과 열감, 개운함이 단맛을 거쳐 서서히 모닥불을 쬐는듯한 기분으로 변해간다. 패션후르츠맛 모닥불이라니 이거 매력 있네. 내포성은 그냥저냥 가향우롱의 범주로 다관으로 마시면 4탕까진 그럭저럭 마시겠는데 5탕째는 맹물이다. 내친김에 티팟에 6g, 300ml, 95도에서 1.5분 우려 보았다. 수색이 조금 더 진해지긴 했으나 큰 변화는 없다. 전체적인 맛도 다관으로 마시는 것과 큰 차이는 없다. 발효도가 높고 가향이 센 편이라 동양차로서의 재미는 좀 덜해서 어쩌면 이렇게 서양식으로 우리는게 더 편할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이쪽은 재탕까지만. 온도도 크게 타지 않다 보니 사무실에선 70~80ml 개완에 4g쯤 넣고 정수기 뜨거운 물로 1분 안되게 해서 마시곤 한다.

차 자체의 차품을 떠나 정성이 담긴 게 보이는 엽저

생각했던 나무향이나 훈연향은 아니었지만 발효도 높은 우롱과의 조화로 겨울에 만나는 망고와 패션후르츠 가향이 또 색다르게 다가왔던 타키비. 따뜻한 망고주스가 맛이 있을 리가... 있구나. 우롱차의 구수함과 깔끔함이 기본 장착 되어있는데 워낙 티 나지 않게 정반대의 성향으로 패션후르츠를 앞으로 밀어주다 보니 제대로 언급이 되지 않은 것 같다. 베이스가 아주 탄탄했던걸 꼭 남겨놔야겠다. 충실한 우롱차에 패션후르츠가 불티처럼 날아오르는 타키비였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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