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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듐레어 Aug 21. 2024

잘 나가는 실론티를 오랜만에 만났는데 여전하네

루피시아 5063. 실론 누와라 엘리야 OP

스리랑카는 섬나라로 가운데엔 큰 산이 솟아있는 지형이다. 쉽게 제주도 같은 구조를 생각하면 되는데 이제 구멍 뽕뽕 현무암 섬도 아니고 규모도 훨씬 큰, 그러니까 한라산보단 지리산에 가까운 느낌이다. 큰 산의 사방팔방 골짝마다 다원들이 자리 잡고 그 유명한 실론티를 만들어내고 있다. 오늘은 스리랑카의 가장 높이 위치한 차밭인 누와라 엘리야의 차를 마셔본다.

가장 높은 지역이다 보니 의심의 여지없는 하이그로운 누와라 엘리야는 실론티 중에서도 고급으로 취급받는 경우가 많다. 하이그로운 특유의 여린 잎 취급이 아무래도 다른 차들에 비해 좋을 수밖에 없다. 스리랑카의 다즐링이랄까. 그런 특별취급이 뭔가 심통이 나서 그런지 나는 의외로 손이 잘 가지 않는 실론이기도 하다. 좋아하는데 묘하게 구매이력이 별로 없는 그런 차. 이번에 실론을 시리즈로 사 오면서 함께 사 오게 되었다. 50g 봉입에 850엔으로 상미기한은 제조로부터 2년.

실론 누와라 엘리야

누와라 엘리야의 OP라고 깔끔하게 제목이 붙어있다. 그러고 보니 누와라 엘리야는 부제가 붙은 BOP는 안 팔았던가 싶다. 홈페이지 확인해 보려고 찾아봐도 잘 안 보인다.

코챠 노 샹판 토 쇼사레루 사와야카나 후우미 노 세이론 하이구로운. 리후렛슈 니.
홍차의 샴페인이라 불리는 상쾌한 풍미의 실론 하이그로운. 기분 전환에.

홈페이지 소개에 딱히 레몬티나 아이스티 추천 라벨은 없지만 아이스티에도 좋다는 부연설명은 달아두었다. 아껴마시느라 아이스로는 거의 마시지 않은 것 같지만.

잘 익은 홍차

봉투를 열자 마른 홍차향이 난다. 딱히 기름진 고소한 향도 아니고 풋내도 아닌 뭔가 안심되는 홍차향. 잎을 덜어내자 건엽에서 나는 바싹 바른 풀냄새와 쌉쌀한 마른 낙엽냄새가 근사하다. 맘에 드는 향을 한껏 들이마시면 아찔하게 가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딱히 실론이라고 특징지을만한 게 없는 건엽이다. 내가 공부가 부족해서 못 알아보는 거겠지.

가볍게 초코렛

늘 하던 대로 6g의 차를 300ml, 100도씨의 물로 2.5분 우려낸다. 수색이 홍차의 붉은빛보다 좀 더 노랗게 연한 색이다. 홍차 중에 밝은 색으로 치자면 최상위권에 들어가겠다. 찻잔 안에 실론 특유의 시원한 멘톨향이 머물러있어 들숨 가득 그 향이 비강을 채워주면 홍차향이 입안 가득 느껴진다. 아니, 그러면서도 굉장히 연하고 조용하고 차분해서 과장하다면 물맛이 그대로 느껴질 것 같이 투명에 가까운 홍차라 정말 집중해서 섬세하게 마셔야 누와라엘리야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성경의 열왕기상 19장 12절에 보면 엘리야라는 선지자는 세미한 소리를 통해 신의 음성을 듣는다. 물론 “누워라 엘리야” 하는 소리는 아니었지만. 사과맛이 난다고 하면 믿으려나. 사과조각을 홍차에 넣어 우려 보면 알겠지만 의외로 생과일을 차에 넣어서 우리면 맛과 향이 잘 우러나지가 않는다. 정말 희미하게 사과의 단맛과 향이 느껴지는데 누와라엘리아에서 느껴지는 과일향과 달달한 맛이 딱 그러하다. 연한 실론에 청사과 몇 조각을 같이 우린 것 같은 맛과 향이다. 난향이나 꽃향 쪽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아침부터 아이스티

아이스티는 급랭이든 냉침이든 다 잘 어울리는 편이다. 사진은 냉침이지만 역시나 내 취향은 급랭이 쪼끔 더 우세. 아이스로 마시면 단맛이 훨씬 살아나고 향도 엑센트가 강해진다. 급랭에선 수렴성도 덩달아 올라가는 건 덤. 워낙 부드러우니 수렴성이 좀 올라가도 상관이 없는 정도다. 핫이든 아이스든 티푸드는 가벼운 걸 곁들이는 게 좋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우리 엘리야 섬세한 아이라구요.

엽저의 향이 너무 좋다. 막 우려낸 뒤의 뜨거운 엽저에서 나는 짚불에 들어갔다 온 것 같은 뜨거운 향이 너무 만족스럽다. 조금 식도록 기다리면 젖은 낙엽의 가을가을한 향으로 돌아온다.

의외로 푸릇한 엽저

분명 산화가 많이 되었던 검은색의 잎이었던 것 같은데 삶고 보니 꽤나 푸릇하다. 고산지대의 산신령은 내면에 푸르름을 단단히 눌러두기라도 한 걸까. 생각해 보면 홍차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녹차스러운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다즐링도 그렇고 아무래도 요즘 홍차 쪽의 유행은 녹차에 가까운 느낌 아닐까. 백차류의 약진과 함께 생각해 보면 밀크티에 어울리는 진한 차에서 연하고 향 좋은 발효 적은 차로 스트레이트에 어울리는 차가 트렌드인 것 같다. 누와라 엘리야의 인지도와 인기도 예전보다 치솟은 느낌이다. 못 보던 사이에도 잘 지내고 있었구나, 여전하네. 누와라 엘리야, 끗.



차 마시는 영상 https://youtu.be/D54zCHTPeW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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