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피시아 5061. 실론 딤불라 OP
지난봄, 일본에 방문해서 루피시아 플렉스를 하려고 신차 뭐가 있나 보는데 실론 OP 시리즈가 주루룩 새로 나왔다고 떴다. 산지가 다양한데 한 번에 등록된 걸로 보아 올해 신차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실론을 시리즈로 마셔보는 것도 재밌겠다 싶어서 쭉 사 왔다. 보통 그럴 거라 예상되듯 누와라엘리야를 가장 먼저 마셨는데 어째 시음기 작성은 딤불라가 먼저가 되었다.
실론은 우바도 그렇고 딤불라도 그렇고 이미 시음기도 올린 적이 있는데 생각보다 자주 가져오는 것 같다. 휘뚤마뚤 편한 느낌이 있어서 그런 듯. 의외로 찻집에서 산지 딱 찍어서 주문하면 약간 비주류 느낌이 드는 실론이지만 어디 닐기리만 하겠는가. 그런 낯선 느낌에도 불구하고 실론은 어딘가 마음의 고향 같은 느낌을 준다. 생소한 이름의 차를 처음 시키던 그 흥분감 같은 게 기억나서 그런 걸까. 아무튼 소리 내서 읽어보면 이름도 독특한 딤불라의 OP를 마셔본다. 50g 봉입에 800엔으로 상미기한은 2년.
딱히 특별하지 않은 루피시아의 빨간 라벨디자인. 이렇게 보면 몬순노메구미 버전과 뭐 다를 게 있겠냐 싶기도 하다. 그래도 170엔 더 주고 OP면 꽤나 괜찮지.
덴토테키 메이산치 딘부라 노 죠시츠 나 후미 노 코챠. 미루쿠 야 레몬 오 쿠와에테 모 오이시.
전통적인 명산지 딤불라의 고급스러운 풍미의 홍차. 우유나 레몬을 넣어도 맛있습니다.
홈페이지에 보면 5024 몬순노메구미와는 다르게 아이스티나 밀크티 라벨이 안 붙어있다. 라벨은 붙이지 않았으나 설명에서 밀크티나 레몬티, 아이스티에도 어울린다고 부연해 놓았다. 조금은 스트레이트로 즐겨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아닐까.
봉투를 열어 향을 맡아보면 참기름 들기름의 뉘앙스가 살짝 가미된 고소한 홍차엽의 향이 짙다가도 순간 시원한 향이 한 번씩 지나간다. 멀리서 오는듯한 아련한 꽃향기 같은 향이다. 건엽을 덜어내자 정말 길쭉 큼직한 건엽들이 나온다. 보통 제철의 좋은 등급의 차들에서 흔히 나는 기름진 고소함을 딤불라에서 느끼게 된 것도 감동인데 이런 실한 건엽 또한 감동이다. 유독 딤불라는 BOP라고 써있어도 패닝스에 가까운 경우가 많고 이렇게 좋은 잎차를 만나기가 어렵다. 물론 구하려면 구하겠지만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딤불라들이 대부분 그렇다. 오랜만에 고오급 딤불라를 만나게 되어 신났다.
평소대로 6g의 차를 300ml, 100도의 물에서 2.5분 우렸다. 잔 밖으로 홍차향이 진하게 퍼져나간다.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라던지 각종 스트레이트에서 공통적으로 나는 전형적인 홍차의 향과 이미지가 있다. 그 향이 머릿속에 자리를 잡고 각인이 되면 홍차 고형분의 맛과 향이 자연스럽게 납득이 된다. 액체인 홍차가 어떻게 기체가 되고 고체가 되는지에 대한 이미지이다. 코를 가져다 대고 다시 향을 맡게 된다. 의외로 연하고 부드러운 향으로 바뀌면서 어렴풋하게 민트향이 느껴지고 단단한 홍차의 향이 느껴진다. 한 모금 마셔보면 아까 전에 민트향이라고 느꼈던 향이 상당히 우디한 나무향으로 느껴지면서 약간의 단맛과 함께 부드러운 홍차가 느껴진다. 차가 적당히 식어가면 우디한 느낌은 실론티 특유의 민트향으로 돌아오면서 기품 있게 그 빛깔을 뽐낸다. 딤불라의 담백 깔끔함을 정석으로 보여준다.
실론을 왕자님으로 의인화한다면 그건 딤불라라고 생각한다. 실론의 최고를 누와라엘리야로 뽑는 거에 이견이 있진 않고, 한 성깔 하는 우바 역시 몹시 좋아하지만 오늘에서야 확신이 든다. 스리랑카의 왕자는 딤불라다. 선명한 매력이 있다기 보단 두루두루 모든 스텟이 상위권인 딤불라야말로 왕자 포지션에 가장 잘 어울린다. 무난하기만 한 게 아니라 모든 상황에서 훌륭한 차인 딤불라의 매력을 충분히 느낀 한 잔이었다. 실론 딤불라 OP,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