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피시아 1868. 닐기리 퀄리티 2024 ~레몬 넣어 즐겨요~
한국에서 첫 녹차를 따는 봄이 되면 우전이니 세작이니 그런 봄차를 기다리기 마련인데 아직은 더위가 오기 전인 완연한 봄날에 만날 수 있는 닐기리는 막상 여름에 마시는 레몬티나 아이스티의 이미지어서 계절감이 애매한 어려움이 있다. 5월에 마시는 레몬티가 조금 이른 느낌이 들긴 해도 막상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면 만사가 다 귀찮고 좀 더 심플하게 차가운 아이스티를 찾기 마련이다. 가향차라던지 좀 더 청향이 있거나 녹차 쪽으로 넘어가서 냉침을 한다던지. 그런 의미에서 제철 닐기리는 또 한 계절 앞서가는 느낌으로 미리 마셔주는 게 제맛이다. 대놓고 레몬티로 마시세요~ 하는 닐기리 퀄리티 2024를 마셔보았다.
제목부터가 레몬티용 닐기리로 통신판매 전용으로는 밀크티 전용도 나오고 있으나 매장방문이라 그건 구하지 못했다. 올해는 레몬티용 닐기리만 마셔보는 걸로.
겐센시타 슌 노 니루기리 코차 오 레몬니 아우요니 부랜도 시마시따. 사와야카나 카오리또 아마이 아지와이가 미료쿠 데스.
엄선한 제철 닐기리 홍차를 레몬에 어울리도록 블랜딩 했습니다. 상쾌한 향과 달콤한 맛이 매력적입니다.
제철 닐기리를 이래저래 레몬과 잘 어울리는 잎들 위주로 모았나 보다. 닐기리 특선이 네다섯 종류가 있었는데 닐기리 퀄리티만 다원표기가 없다. 그러니까 여러 다원차를 모았다는 뜻으로 블랜딩이라고 해놨겠지. 그게 아니라면 넓게 보면 죄다 동일시즌 닐기리 홍차인데 블랜딩이라고 할 것 까지야.
봉지를 개봉해서 향을 맡아보면 카일베타 원터플러시와 같은 고소한 향이 치고 올라오진 않는다. 그래도 신선한 향이 듬뿍 담겨있다. 건엽을 덜어보니 브로큰이 예쁘게 담겨있다. 꽤 색이 짙다. 올해 차인데 발효가 이렇게까지 됐다고? 싶은 색이다. 하지만 의외로 향은 풀향이 미미하게 느껴질 정도로 신선한 향으로만 느껴진다.
6g, 300ml, 100도의 물에서 2.5분. 제철 닐기리다운 상쾌하고 그윽한 향이 벌써부터 흘러넘친다. 늦봄과 초여름에 뜨거운 태양볕으로 달궈져서 바람에 실려오는 푸릇한 산속 평원의 향기 같다. 홀린 듯이 킁킁거리며 마시게 된다. 전에 올린 카일베타에 비해서는 디테일이 조금 아쉬운 모양이지만 언급했던 닐기리의 특징들이 너무 훌륭하게 살아있다. 홍차다운 차맛, 깨끗함과 깔끔함, 닐기리향의 후운. ~Enjoy with lemon~ 버전이니 레몬을 곁들여본다. 레몬 슬라이스를 썰고 관리하는 게 은근히 귀찮은 일이라 레몬 잘 안 쓰는 편이지만 참라지 닐기리가 하나 더 있기 때문에 걱정 없이 레몬을 구입했다. 레몬과 함께하자 안 그래도 붉은 편이던 수색이 한층 밝은 색으로 살아난다. 닐기리의 풋풋한 민트향 같은 뉘앙스가 사라지고 은은한 레몬향이 돌면서 과육으로부터의 달달한 맛이 감칠맛처럼 감돈다. 뒤에 가선 혀가 움찔하며 침샘이 자극되는 게 차의 수렴성인지 레몬의 신맛인지 그 둘의 조화가 참 좋다. 아이스티로도 당연히 일품. 닐기리 아이스티는 언제나 감동이다.
레몬티로도 먹고 아이스티로도 먹고 레몬 넣은 아이스티로도 먹고 금방 다 먹어버린 닐기리 퀄리티. 제철의 닐기리가 주는 즐거움은 한창 여러 가지 홍차를 접하면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마셔보던 알아가는 즐거움 바로 그것이었다. 어떻게 마셔도 맛있는 제철의 맛이 이렇게나 차 마시는 즐거움을 다시 되찾게 해 주었다. 지난 늦봄 나를 신나게 만들어줬던 닐기리 퀄리티,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