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Tea #04 Assam Jamguri
작년 연말엔 아내가 뉴욕에 다녀왔다. 선물로 사 온 간식들과 이것저것이 있었지만 가장 메인이었던 건 바로 차 선물. 차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지만 어떻게 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쌈을 골라서 사 왔다. (아쌈이 뭔지는 모르고 사온 눈치) 단일 품종의 스트레이트 홍차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걸 고르라고 하면 단연 아쌈이다. 흔히 몰티 하다고 이야기하는 적당한 구수함과 쌉쌀함과 그런 점이 내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홍차의 이미지에 맞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제일 취향에 맞다. 아무튼 이걸 아내에게 이야기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나의 아쌈 취향을 알고 있진 않았을 텐데 이렇게 깜짝 선물을 사 오다니 정말 신기한 일이다. 정작 아내는 자기가 차를 잘 몰라서 이상한 거 사 오진 않았냐며 맛없으면 안 먹어도 된다, 바가지 쓴 거 아니냐 등등 걱정이 많았다. 전혀 해당사항이 없는 걱정인 것 같다.
뉴욕의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지나가다 사 왔다고 하는데 MissTea라는 브랜드가 뉴욕의 로컬브랜드이지 싶다. 뒷면의 기업소개를 보니 지역에서 수제로 포장판매 하고 있으며 여성기업인 것을 강조하고 있다. 수제 포장판매는 직접 원물을 블랜딩 해서 팔고 있다는 의미로 강조하는 것 같다. 한국에도 이런 소규모 기업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는데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해진다. 아쌈의 잠구리 다원 TGFOP1을 가져다가 판매하는 것으로 85g에 22달러의 가격이다. 나름 합리적인 가격대. 바가지 걱정하던 아내가 다시 생각난다. 올해 비싼 차 많이 구입해서 이제 차값에 대한 기준이 올라갔을까?
원통형 종이 케이스를 열어보자 진한 아쌈향이 느껴진다. 카페인향이 농도 짙게 느껴지는 기분이다. 덜어내서 자세히 건엽을 살펴보니 등급에 비해서는 골든팁이 보이거나 그렇진 않다. 큼직하게 컷팅이 되어있는 건엽이 보기 좋은 색으로 잘 익었다. 요즘 트렌드치곤 좀 푹 익은 감도 없지 않지만. 끝내 골든팁은 없다. 골든팁에 집착하는 건 아니고 유무에 따라 가격대가 달라지기도 하니까 확인차. 아쌈에 있는 다원들 중 대다수는 큰 회사들과 계약이 이미 되어있을 것이고 잠구리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TGFOP를 따오긴 했어도 FTGFOP라던지 뭔가 더 높은 등급의 차들은 이미 다른 곳에 납품되는 상황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를테면 마리아쥬에서 잠구리 다원의 빈티지를 낸다면 훨씬 더 엄선된 퀄리티와 엄청나게 엄선된 가격대로 만나볼 수 있었겠지.
망설임 없이 6g을 300ml, 100도의 물에서 2.5분 우린다. 팟을 옮겨 담는데 중국홍차와는 다른 결이지만 구수한 향이 퍼져 나온다. 너무 익숙한 향이라 아쌈향이라고 밖엔 표현이 안되는데 티피아쌈 특유의 부드러우면서도 깊이 있는 향이다. 한 모금 마셔보면 역시나 부드러우면서도 몰티 하고 살짝은 달달 한듯한 맛과 함께 풍미 짙은 홍차향이 돋보인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굉장한 퀄리티의 아쌈이다. 냅다 우유를 부어도 충분히 그 풍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이는 그야말로 탄탄한 차인데 차분히 향을 뜯어보자면 희미하게 다즐링스러운 머스켓 향도 머금고 있고 미세한 산미도 갖추고 있다. 결국은 대부분을 스트레이트로 마셨는데 마시는 재미가 상당한 차였다.
로컬샵에서 판매하는 아쌈이 이 가격에 이런 퀄리티라면 좀 감동이다. 우리 동네였으면 매일 들러서 차 마시고 갔을 것 같은 방앗간 느낌. 내가 살 땐 이런 거 없더니 이제야 이런 좋은 게 생기다니 너무 부럽다. 아니, 그땐 내가 너무 유명한 브랜드들만 찾아다녀서 보질 못했던 걸까. 세계문화의 중심인 뉴욕에서도 차를 만나는 건 어렵기만 했었는데 그런 선입견을 말끔히 씻어준 좋은 기회 었다. 역시 뉴욕인가 싶은 생각도 들지만 한국에서도 이런 로컬샵들이 생기고 있는 것으로 안다. 부디 좋은 결과로 이어져서 한국에서도 다양한 로컬샵을 통해 이런 좋은 차들을 만날 기회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뉴욕에서 온 아쌈 잠구리, 끗.
이 차를 마시는 영상 https://youtu.be/Cpr2JZpGL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