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운 나이 23살에 안동 양반집으로 시집온 이녀 어머님. 말 그대로 엄하디엄한 양반집 맏며느리로 시집와서 고된 시집살이를 견디며 2남 1녀를 키워내셨다고 하죠.
젊었을 때 어른들 눈치를 보느라 사랑하는 아내를 도와주지 못했던 아버님은 자신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는 것 같아 미안해하고 계셨습니다. 지금은 이녀 어머님 옆에 딱 붙어서 아내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 아버님. 진정한 로맨티스트의 모습을 보여주셨죠.
농한기를 맞은 안동에서 새끼줄 꼬는 법을 배울 기회가 생겼습니다. 아버님과 짚을 한가득 들고 와 앉자마자 고개를 드니 아버님은 이미 새끼를 꼬고 계셨죠. 그냥 손을 비빈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령이 필요했죠. 아버님의 현란한 손놀림을 뚫어져라 보다 보니 조금씩 따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아버님과 새끼를 꼬며 아버님의 인생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인생에서 생사가 오간 사건이 두 번이나 있었다는데요. 한 번은 40대 중반, 중풍으로 쓰러져 온 동네가 발칵 뒤집힐 정도였죠. 그때 이녀 어머님의 심정은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절망적이었을 겁니다. 겨우 건강을 회복했지만, 후유증으로 왼쪽 다리를 거의 못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큰 위기를 넘겼지만, 10여 년 전 오토바이 사고로 척추를 다치고 만 아버님. 온몸에 철심을 박는 수술을 하고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가장의 역할은 오롯이 이녀 어머님의 몫이었죠. 그 작은 몸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왔을까요. 몸이 망가진 지금도 이녀 엄마는 일을 놓지 못하고 계십니다. 그런 어머님이 걱정이었는지 아버님은 4년 전부터 스스로 부엌에 드나들기 시작하셨다는데요. 이제는 아내가 쉬는 게 소원이라고 합니다.
의사 아들이 왔으니 이제 걱정 마시라는 한 마디에 "정말 고마워요..."라며 두 눈이 촉촉해 지신 아버님. 씩씩한 이녀 어머님과 다정한 아버님이 서로 기대며 행복하게 사시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