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고생, 즐거운 고생
내가 시장에 자주 가는 것을 내 친구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마트보다 시장을 좋아하고 시장 풍경, 시장 물건을 좋아한다. 나를 찾을 때는 '시장 갈래?'가 인사이다.
시장에서 이것저것을 사고 집까지 걸어오는 것이 나는 재미있고 즐겁다.
그런데 문제는 장본 것들의 무게이다. 운전은 무서워서 못하고 운전을 못하면 가까운 마트에서 장을 보면
좋은데 그건 재미가 없다.
양 손에 까만 봉지와 장 바구니를 한가득 채워 집에 오는 나를 보면 우리 딸은
'엄마 팔은 언젠가 땅에 닿을 거야,원숭이 팔이 될 거야!'라고 놀리기도 한다.
실제로 팔이 늘어난 거 같기도 하다. ^^
남편도, 내 친구들도 사서 고생하나며 잔소리를 한다.
늦봄에서 여름, 이제 가을이 오고 있는데 그 사이 나는 시장을 더 부지런히 다녔다.
시장에 꼭 가는 이유, 또 하나 있다. 우리 둘째 아들 때문이다. 둘째는 피아노 치는 예고 학생이다.
올해 고3이라 고생이 많다. 코로나로 학교도 제대로 못 가고, 레슨 받으러 지하철 타고 갔다가 다시 연습실로
왔다 갔다 하는 아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짠하다.
피아노를 정식으로 시작했을 때 가난한 부모덕에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 레슨을 받고
그곳에서 예고 입시까지 봤는데 가고 싶은 예고에 합격한 것이다.
운이 좋아 선생님을 잘 만났고 늦게 시작한 만큼 본인도 많은 노력을 했다. 대견한 녀석. ^^
아이가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우연히 물어보았던 질문이 아들의 운명이 될 줄 몰랐다.
"아들, 넌 뭐가 하고 싶어? 관심 있는 게 뭐야?" 하고 물어보니 바로 대답한 게
"피아노, 피아노 치고 싶어!"였다.
맞다, 얘는 초등학교 때도 피아노를 좋아했고 음악을 좋아했지. 잊고 있었다.
"그래? 그럼 해봐! 이왕이면 예고 피아노과를 목표로 해 봐!"
이 말은 정말 그냥 하는 말이었다. 아이가 하고 싶다는 걸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할 거면 제대로 하라는
반 협박과도 같은 말이었다.
피아노를 전공한다는 말에, 이루고 싶은 꿈이 있음에 기쁘기도 했지만 들어갈 돈을 생각하니 막막했는데
아직까지 아이도, 우리도 잘 견디고 있다.
참, 내가 우리 아들 덕분에 시장에 가는 이유를 얘기하다 말았다.
시장에 수박 사러 간다. 둘째 아들은 수박을 정말 좋아한다.
올해 둘째 아들이 먹은 수박이 한 30통은 될 거다. 넘을 수도 있다.
알다시피 수박은 정말 무겁다. 운전도 못하는 내가 수박을 들고 오기란 쉽지 않다. 양 손에 번갈아가며 조금 쉬기도 하며 들고 온다. 수박 사 오는 날은 정말 내 팔이 땅에 닿을 만큼 길어졌을 거다.
고생 한 다음부터 수박을 싣고 올 카트를 가져간다. 바퀴 달린 카트에 넣고 굴리며 끌고 온다.
친구와 남편이 또 수박 샀냐며, 어떻게 들고 왔냐고 묻는다.
"이그~~ 굴리면서 왔지!" 하고 대답한다.
우리 집은 4층, 우리 빌라는 오래된 집이라 엘리베이터가 없다.
1층에서 수박을 꼭 안고 올라간다. 남들 보기엔 힘들어 보이겠지만 나는 그게 재미있고 즐겁다.
수박에게 말도 건넨다
"우 씨, 너, 왜 이렇게 무거워!"
수박을 씻고 반을 자르고 둘째가 먹기 좋게 썰어서 냉장고에 차곡차곡 넣어둔다.
밤늦도록 연습실에서 돌아온 아들이 씻고 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 수박을 먹는다.
맛있나 보다. 시원한가 보다.
초록잎을 먹고 나면 초록 똥을 싸는 벌레처럼, 초록 냄새나는 예쁜 벌레처럼
수박 먹은 우리 아들이 치는 피아노 소리도 그랬으면 좋겠다.
시원하고, 달콤하고, 상쾌해서 목마름을 날려주는 수박같은 소리.
우리 아들 피아노 소리는 분명 수박처럼 맛있을 거다.
그래서 노력한 만큼 가고 싶은 대학에 가길 바란다.
여름이 서서히 가고 있다.
오늘도 나는 시장에서부터 수박을 굴린다.
모래알